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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와 장관의 인터뷰

기자: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많은데 자랑스러우신가요?
장관: 무슨 질문이 그렇습니까? 조금 전에 장관임명을 받았는데 축하부터 해 주셔야죠.
기자: 일각에선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라고 하는데 (장관 된 게) 자랑스러우시냐고요.
국회의원: 그냥 다음질문 하세요.
기자: 아직 제 질문에 답 안하셨어요.
장관: 경력과 능력을 보고 임명한 대통령과 국민에게 모욕적인 말 하지 말고 다음질문 하든지 아니면 이 인터뷰 그만 하겠습니다.
기자: 협박하는 겁니까?

영국의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터뷰 광경을 과장 없이 우리나라 TV로 가정해 옮겨봤다. 스튜디오와 현장을 연결한 생방송이다. 질문을 하는 기자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야 말겠다는 시선으로 인터뷰이를 노려(?) 보면서 거침없이 질문을 퍼붓는다. 장관 또한 절대 말려들지 않겠다는 기세다. 둘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은 K1을 보는 느낌에 견줄 만하다. 그러나 힘의 균형은 기자 쪽에 실려 있다.

▲ 공격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제레미 팍스만 기자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인터뷰하고 있는 장면. 사진제공=BBC

그렇다. 영국의 방송 인터뷰는 종종 한편의 청문회를 보는 듯 신랄하기도 하고 격투기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때로는 싱겁게 무승부로 끝나기도 하지만 입심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기자나 앵커들도 쩔쩔매기 일쑤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사안에 대해 변명을 하기란 쉽지 않은 법. 작정한 듯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표정으로 무장한 채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인터뷰이에게 기자는 아홉 번, 열 번씩 똑같은 질문을 끈질기게 반복하기도 한다. 서로 뜯고 비틀다 마이크를 떼버리고 박차고 나가는 상황은 인터뷰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여기서 재미라 함은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재미를 의미한다.

영국의 인터뷰나 토론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궁금한 게 생긴다. 저렇게 망신을 당하면서 왜 인터뷰에 응하는 걸까? 또 고관대작들을 식어버린 밥쯤으로 취급하는 언론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래도 명색이 장관이고, 국회의원인데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그런 종류의 의문을 가지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국이 어떤 나란가? 흔히들 민주주의의 발상지라고 하지 않던가. 민주주의가 뭔가? 소통이 아닌가. 모든 국민은 평등함으로 자유롭게 소통을 하고 그 소통을 통해 합의하고 질서를 찾고,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뭐 그런 거 아니던가.

소통을 피하고, 소통을 통제하는 나라를 가리켜 우리는 ‘독재’라 하고, ‘파쇼’라 하지 않던가 말이다. 그러니 독재자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망신을 각오하고라도 나와야 하고,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올바른 소신을 갖춰야 하고, 그런 소신을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있게 설파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거다.
또 하나, 토론이나 인터뷰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영국방송은 공론의 장으로 제 역할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심하다 생각이 들 정도로 기죽지 않고 덤비고 비트는 언론에 맞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당당히 표현하는 고관대작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소통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언론이라는 공론의 장으로 나온 이상 높고 낮음은 없다. 높은 사람은 체중을 낮추고, 낮은 사람은 체중을 높여 대등한 체급이 되어 공정한 경기를 벌이는 거다. 공론의 장인 방송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국회의원은 편파적인 방송에 출연해 소리 높여 방송의 편파성을 지적할 수 있다. 언론인은 국민을 대신해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준엄히 꾸짖고 추궁할 수 있다.

▲ 런던=장정훈 통신원/ KBNe-UK 대표

그렇게 방송은 ‘소통의 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편파적이다 하여 응하지 않고, 통제하려 들고, 권력에 대한 예를 갖춘답시고 언론의 역할을 저버리는 방송은 소통이 없는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 영국 방송을 보면서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미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고 자란 티를 내는 것에 다름이 아니리라. 전적으로 내 탓은 아닐 게다. 난 선거만 민주적인, 소통부재의 독재국가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은 대한민국 사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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