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별노조 건설, 이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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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노조는 지난달 열린 대의원 대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방송사 노조로는 처음으로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할 것을 결의했다. 는 언론산별노조 건설에 앞장서고 있는 KBS 노조로부터 산별노조 건설의 의의를 들어봤다. <편집자>언론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단일노동조합의 틀로 묶는 산업별노동조합 건설의 장정이 KBS노동조합을 필두로 시작된다. 방송노동자를 축으로 진행될 이번 산별노조건설투쟁은 방송시장의 개방과 디지털시대의 개막으로 예상되는 방송산업 내 무한경쟁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전개되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유지상주의의 불평등 경쟁이 팽배한 사회를 자유와 민주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사회로 바꾸어내는 작업에 방송종사들이 깃발을 들고 나선 것이다.방송사 노동조합의 산업별 단일 노동조합으로의 재편은 몇 가지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준다.먼저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기존 대중문화전선의 첨병이었던 프로듀서를 포함한 일단의 방송제작집단에게 다시 한국사회의 역사를 바꿔낼 수 있는 선두에 서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마냥 부럽게만 쳐다보던 서유럽의 민주주의와 복지제도의 시작은 바로 산업별노동조합의 건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람이 중심에 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건설이 우리에게 마냥 꿈만이 아닌 실천의 과제로 다가오는 것이다.프로듀서가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의 건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과제의 실천을 통해 이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분명 산업별노동조합의 건설은 프로듀서 사회에 직접적인 실천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산업별노동조합의 건설은 방송종사자들에게 사용자와 정부의 정책과 대등한 위치에서 방송산업이라는 큰 틀에서 고민하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프로듀서는 직업상 미세지향적이고 텍스트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방송 속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이런 경향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실제 방송의 구조를 정하는 것은 정책이 몫이다.그 정책이 단위 방송사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그 구조가 단위 프로그램과 방송종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이런 연쇄를 생각했을 때 프로듀서를 포함하는 방송 현업자들의 방송정책결정 참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기존의 기업별노동조합에서는 온전히 정부와 사용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하나의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전체 방송의 틀을 만들어내는 일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결정하는 일이다. 노태우 정권의 상업방송 허용과 김영삼 정권의 지역민방과 케이블채널 허용으로 지금 방송산업은 방송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혹사 수준의 근로조건 악화, 방송산업의 수직적 착취구조의 심화, 대자본 상업성을 무기로 한 외국 미디어 자본의 한국시장 진입, 산업일변도의 방송정책 등 지금 우리의 앞에는 개선이나 개혁보다는 왜곡의 치유를 요하는 과제들이 산적해있다고 할 수 있다.이것들은 기업별노동조합의 과제로는 부적절한 것이나 산업별노동조합의 건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택은 몇 가지를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길을 놓고 고민하는 것이다.고민을 위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그저 서유럽과 다른 산업분야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뿐이다. 단 우리의 특수성과 현 단계의 고민을 담아내면서 모두가 함께 가는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해 불가능한 몰상식들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의 단초가 산업별노동조합의 건설이라니, 옛날 80년대 노래의 한 구절이 연상된다. "무엇이 두려우랴 출정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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