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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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MBC 이채훈 PD

▲ MBC 이채훈 PD ⓒMBC
최근 국방부가 제주 4.3을 '대규모 좌익세력 반란'으로 규정해 교육과학기술부에 교과서 수정을 요구했다. 전두환의 강압통치를 미화하는 내용도 곁들였다. 얼마 전 ‘불온서적’ 목록을 발표해 출판계를 즐겁게 해 준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참고 서적은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이 지난 3월 펴낸 ‘한국 근현대사’. 전두환 얘기는 일단 제쳐두자. 이미 여러 언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제주 4.3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

제주 4.3에 대해 상식적인 수준만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참고로 나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첫 회인 ‘제주 4.3’(1999. 9. 2 방송)을 만든 PD다. 당시 나는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한 주요 자료들을 열심히 읽어 보았고 두 달 가량 제주에 머물면서 이 사건의 희생자, 목격자, 토벌대 등 주요 관계자들의 증언을 적지 않게 들었다. 방송된 프로그램 뿐 아니라 녹화된 증언과 영상 모두 MBC에 보관되어 있다.)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 ‘한국 근현대사’의 잘못된 점

▲ <한국일보> 9월23일자 6면
‘한국 근현대사’에 참여한 12명의 필진 중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으니 생략하자. 제주 4.3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144~145쪽인데, 첫 문장부터 틀렸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정치 세력은 대한민국의 성립에 저항하였다.”(?) 남로당 뿐 아니라 김구, 김규식 등 우파 정치인들도 분단을 고착화하는 남측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친일파 청산을 요구하고 미군정 수탈 정책의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저항했다. 남로당뿐이 아닌 것이다.

둘째 문장도 틀렸다. “남로당은 정부수립 이전인 1948년 4월3일에 제주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다(제주4.3사건).”(?) 제주도는 남로당 전남도당 관할이었는데, 당시 남로당은 봉기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주모자 김달삼은 남로당원이었지만 전남도당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봉기했다. 봉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1947년 3.1절 집회에 대한 발포로 6명이 사망했고 서북청년단 출신이 경찰에 대거 투입되어 도민들을 괴롭혔다. 사람을 하도 심하게 때리니 한라산으로 피신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앉아서 맞다가 죽느니 총 들고 싸우다 죽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1948년 4월 봉기의 정치적 목표는 5.10 단독선거를 저지하자는 것이었다. 남로당은 예기치 않은 제주도민들의 봉기에 당황했고 ‘무모한 봉기’, ‘좌편향의 오류’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어쨌든 봉기가 일어났으므로 뒤늦게 지원하려 했지만 이승만 정부의 혹독한 탄압에 조직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남북 정권 수립 이후 북측 정권은 뒤늦게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제주도민의 영웅적 투쟁”이라고 찬양했지만 봉기 자체를 계획하고 지시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국토완정론’도 견강부회다. 145쪽을 보자. “김일성의 '국토완정론'은 처음에는 남한 내부에서의 공작이나 무장봉기를 통해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제주 4.3사건, 여수.순천의 국군 제14연대 반란, 빨치산 활동 등은 이 노선에 따라 일어난 것이었다.”(?) ‘국토완정론’이란 말은 북측 정권이 수립된 1948년 9월 9일 이후에 생겨났다.

제주 4·3, 과연 ‘좌파의 반란’인가

▲ <경향신문> 9월23일자 1면
따라서, 이보다 5개월 앞서 일어난 제주 봉기가 이 이론에 따랐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제주의 소리’가 이러한 오류를 지적하자 집필 당사자인 김일영 교수(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는 오류를 인정하고 2쇄에서는 이 문장에서 ‘제주 4.3’이란 말을 삭제했다. 그러나 제주 4.3을 ‘좌파의 반란’으로 보는 시각은 고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피땀어린 진상규명의 성과를 부정하고 제주도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장 하나하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그만 두자. 김 교수는 제주도민들이 입은 막대한 피해를 언급, ‘균형을 갖추었다’고 주장한다. 그 대목을 보자. “사태가 악화되지 미군정청은 군대를 제주도에 투입했는데, 군은 유격대가 은신한 제주도 산간지대를 대상으로 가혹한 진압작전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약 9만 명의 이재민과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좌익 반란’이었으므로 ‘진압은 불가피했다’는 전제에 변함이 없다. 제주도민의 희생을 인정하는 듯한 문장을 끼워넣어 더욱 교묘하게 다듬었을 뿐이다. 남편 대신 아내를 죽이고,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욕보이고, 여자에게 죽창을 줘서 남자들을 찌르게 하고, 젊은 사병에게는 ‘살인 경험’ 시키는 차원에서 아무나 쏴 죽이게 한 숱한 만행은 철저히 은폐됐다. ‘좌익’을 잡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허용된다는 야만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1948년 당시는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이 첨예했고, 남쪽 내부에서도 소통과 타협과 화해와 공존이 어려웠던 시대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4.19혁명, 5.18항쟁, 6월항쟁을 겪으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체험했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다원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상과 의견이 달라도 서로 존중하며 공존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21세기에 다시 냉전적 사고방식을 유포하는 조중동과 뉴라이트, 거기에 장단 맞춰서 교과서를 퇴행시키려는 국방부의 시도는 제주 4.3과 같은 비극적 학살을 다시 불러올 위험천만한 짓이다.

어렵게 밝혀낸 진실, 백지화시키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말자

이 정부와 극우 세력은 이미 했던 말을 자꾸 또 하게 만든다! 뉴라이트는 얼마 전만 해도 그냥 무시해 버려도 좋을 비지성적 단체였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잠잠해지고 이명박 정부가 ‘급진적 반동’의 본색을 드러내자 이 단체는 이른바 ‘시민단체’를 자처하며 극우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뉴라이트는 조중동과 더불어 21세기 한국 민간 파시즘의 근거지가 됐고 그 해악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몰상식, 파렴치’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와 그들은 환상의 콤비다. 이 악성 종양이 확산되는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 그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역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충분치 않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친다면 언젠가 바른 역사를 다시 한 번 가르쳐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2000년 1월 12일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됐고, 2003년과 2006년에는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2005년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 선포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미워도 잘한 일은 잘한 것이다. 2002년 1월에 나온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오랜 세월 여러 사람이 땀 흘려 밝혀낸 진실이 압축돼 있다. 제발, 어렵게 밝혀낸 진실을 모두 백지화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길! 학살을 미화하면 또 다른 학살이 일어난다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은 ‘살인 방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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