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케인, 카메라와 오바마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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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후보TV 토론, 상징과 이미지 대결

지난 9월 26일 방송된 미국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는 일단 오바마가 우세하거나 비등했던 것으로 주요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날 토론의 주제가 맥케인의 전문분야인 외교 안보였기 때문에 오바마의 선전은 주목할 만하다.

주 종목에서도 맥케인이 기대한 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이유는 많은 곳에서도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이미지와 상징의 측면에서 이번 미국 대선 후보 TV 토론회를 다루어 보겠다.

맥케인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것은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경험이다. 토론 가운데에서도 30여년의 상원의원 임기 동안 아프가니스탄이나 조지아 등 주요 분쟁지역을 예로 들며, 자신이 직접 가보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에 비해 오바마는 겨우 4년차 애송이 상원의원에다 상원 입문 직후부터 대선에 올인 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 맥케인은 이런 강점을 부각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너무 많은 경험과 자만이 일을 그르쳤다고나 할까?

▲ <조선일보> 9월29일자 5면
우선 너무 많은 것을 나열하려고 했고, 가르치려고만 들었다. 토론의 형식상 질문 이후 5분간의 직접 토론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맥케인은 항상 사회자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자인 짐 레러가 “직접 말하시지요?”라고까지 말했고, 이에 오바마가 “존”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은 “짐, 이 사람은 내가 못 들은 줄 아는가 봅니다” 하는 간접 대응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쭉 단 한번도, 오바마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메모를 보며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는 것이 카메라에 계속 잡히곤 했다. 이런 점은 토론 다음 날 아침 CBS에서 전 FBI 수사관을 데려다가 분석을 할 정도로 두드러졌다.

게다가 카메라를 직접 보지도 않았다. 대부분 짐 레러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짐 레러를 보면서 토론했다. 이런 면에서는 맥케인은 전혀 직접 토론을 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오바마는 카메라를 바로 응시하면서 이야기를 자주하고, 또 맥케인을 ‘존’이라 부르면서 계속 공격했다. 이런 차이점이 맥케인에 대한 평가에 불리한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CBS는 이러한 맥케인의 태도가, 오히려 자신없어 피한다는 이미지를 남겼다고 분석했다. 또 한 보수 블로거는 “카메라와 오바마를 봐라, 짐 레러를 보지만 말고”라고 주문했다. 카메라는 국민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느낌을, 오바마를 보고 하는 것은 대결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가 중요한 포인트를 카메라를 보고 조목조목 짚어 설명한 것이 더 대통령 같은 이미지를 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맥케인이 주로 쓴 “이건 오바마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말야…”는 식의 말투는 자신의 경륜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쓰면 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고, 또 젊은 세대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에 피해 오바마의 펀치라인은 “잘못된 판단”이었는데, 비록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맥케인과 부시 대통령을 이라크전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시청자들은 반응했다.

오바마도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 중 두드러지는 것은 이라크전 전사자 대목이다. 매파로 언제나 이라크전을 지지해왔던 맥케인은 토론 중, 한 전사자의 부모가 자기 아들의 군대 팔찌를 주면서 이 전쟁을 승리로 끝내달라고 했다고, 이라크전 문제를 감정적으로 접근했다. 이에 오바마는 “나도 팔찌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대신 이 부모는 전쟁을 빨리 끝내달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겉으로 보면 아주 계산된 공격을 역으로 잘 받아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맥케인은 이 병사의 이름과 소속부대를 아주 명료하게 기억했지만, 오바마는 이름부터 틀려서 다시 발음하는 등 실수를 했다. 결국 계산된 반격이 이런 실수로 인해 오히려 오바마의 군사 부문에서의 상대적 약점을 부각시킨 것이 돼버렸다. 물론 나중에 매케인이 이란 대통령의 이름을 잘못 말해 손실을 만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바마의 손해이다. 그냥 보면 대통령에게는 이란 대통령의 이름이 한 병사의 이름보다 휠씬 중요하겠지만, 후보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유권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 <한겨레> 9월29일자 14면
이런 이미지의 대결은 다른 곳에도 많았다. 오바마는 미국국기 핀을 꼽고 있었고, 맥케인은 아니었다. 최근까지 미국국기 핀을 안 꼽고 다녀 비난을 받았던 오바마는 핀을 하고 나와서 항간의 불안을 없애야 했고, 전쟁포로로 애국심을 입증할 필요가 없는 맥케인은 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 오바마는 “존”이라고 퍼스트 네임을 부르면서 맥케인과 동격이 되려고 애쓰는 반면 매케인은 “상원의원”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면서 ‘같이 놀려고’ 하질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 토론회 자체가 이런 정치 사회적인 함의로 가득차 있다. 이 토론회가 열린 곳인 미시시피 주립대학은 1962년 흑인 입학을 둘러싸고 폭동이 일어나 2명이 죽고 100여 명의 연방정부 직원들이 총상을 입은 곳인데, 이제 흑인 후보가 후보토론을 위해 단상에 선 것이다.

이런 이미지나 '바디 랭귀지'가 얼마나 중요할까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영상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이의가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선거 역사에서는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최초의 텔레비전 토론인 케네디 대 닉슨의 1960년 토론에서 케네디는 얼굴이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고, 닉슨은 병원에서 갓 나온 것 같은 창백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케네디의 활발한 움직임은 케네디가 대통령감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아버지 부시가 클린턴과 토론 중 손목시계를 계속 보았고, 앨 고어가 부시와의 토론 중 한숨을 쉬어서 점수를 많이 잃었던 경우가 있다.

이런 장면들은 긴 토론 중에 재미있는 요소이고, 또 토론의 전체 역할을 단 몇 초에 잘 정리하기 때문에 방송사들은 이를 토론 후에도 주요 장면으로 계속 방송한다. 그러니 이런 이미지의 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은 토론 전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 중의 주요장면(미국에서는 이걸 사운드 바이트(Sound bite)라고 한다)을 기억하는 것이다. TV로 전달된 이런 이미지는 곧 바로 시청자/유권자들의 정치적 의견에 반영된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 중 특히 후보 TV 토론은 이미지와 상징의 싸움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후보의 주름살 하나까지도 다 볼 수 있는 HDTV 시대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이 현대의 유권자가 올바른 지도자를 고르는데 일조하는 지는 의문이다. 이미지에 묻힌 진실을 찾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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