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미디어정책과 닮은 ‘사르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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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미디어정책과 닮은 ‘사르코지’
교차소유 완화, 반독점 규정 폐지 등 친시장 정책 추진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 승인 2008.10.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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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인터넷과 무료신문에 의해 독자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누가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가이다. 프랑스에서는 기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변화의 주체로 자임하고 나섰다.

정부의 신문사 ‘손질’ 계획은 지난 달 11일 ‘미디어와 디지털’(lesmedias et le numerique)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마련됐다. 이 보고서는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기업분야 담당위원 다니엘 지아찌에 의해 작성되어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제출됐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미디어 분야에서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으로 반독점 규정들을 폐지하기 위한 34개의 제안사항을 담고 있다.

▲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프랑스에는 다원주의의 보호라는 원칙 아래 한 그룹의 미디어 장악을 제한하기 위한 법안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한 신문이 전체 종합지 발간부수의 30% 이상을 발행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금지해 놓고 있다. 

또한 소유 구조에서도 법적인 제한이 있는데 한 그룹이 전국단위의 텔레비전 방송과 라디오 방송, 신문사 세 가지를 동시에 거느릴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지아찌 보고서는 특히 이 규정을 폐지해 거대 미디어 재벌의 출현을 촉진시키려 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자인 지아찌는 10월 3일 France 2 의 아침 뉴스에서 현재 신문사들이 “등에 돌이 든 가방을 맨 체 파도치는 바다를 수영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비유하며 신문사들을 민영화해야 경제적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신문사가 민영화되어 영리를 추구하게 되면 기자들의 고용도 안정될 것”이라며 기자들의 이해를 바랐다.

하지만 파리에 본부를 둔 세계적 통신사 AFP(Agence France-Presse)의 기자조합을 중심으로 기자들과 신문사들은 지아찌의 보고서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AFP가 총대를 메게 된 것은 이 보고서가 명시적으로 AFP를 민영화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19일 발표한 성명에서 AFP의 기자조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혹은 경제적 그룹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며 “민영화 방안은, 편집권 독립성 유지를 보장하는 AFP의 지위를 팔아 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AFP는 연합군의 파리 수복 이후인 1944년 9월 30일, 비시 정권의 ‘프랑스 정보 사무소’를 대체하는 정부기구로 설립되었다. 이후 1957년 1월 10일, 많은 노력 끝에 AFP는 법에 의해 독립을 보장받게 되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AFP측의 입장에서는 지아찌의 보고서로 인해 50여년 만에 독립적인 지위가 흔들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고서가 제출된 직후, AFP의 기자 조합은 모든 직원들에게 “1957년에 얻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위협에도 대응하자”고 호소한 것도 그 때문이다. AFP의 최고경영자인 피에르 루에트(Pierre Louette)는 자사의 9월 19일자 기사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AFP의 독립성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독립성은 AFP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라고 단언했다.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정치학 석사과정
그러나 문화부 장관 크리스틴 알바넬(Christine Albanel)은 9월 22일자 피가로(Le Figaro)지에서 “매해 정부지원금 2억 8천 3백만 유로가 신문사에 들어간다”며 정부가 신문사 개혁에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다. 그녀는 한술 더 떠 “바로 정부권력이 정보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논쟁 가운데 사르코지 대통령은 10월 2일 ‘언론사 삼부회’를 소집했다. 언론사 등 4개의 관계단체로 구성된 이 회의는 2달 동안 신문시장의 미래에 대한 검토를 하고 정책제안을 하게 된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취임 이후 프랑스 정부는 미디어의 변화를 요구, 아니 강요하고 있다. 이번엔 신문에 메스가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메스가 도려낼 것이 과연 신문사들의 돌덩이 가방일까, 신문의 독립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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