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드라마의 개혁개방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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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의 개혁개방 30년
[글로벌] 북경=이재민 통신원/ 북경대 박사
  • 중국=이재민 통신원
  • 승인 2008.10.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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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중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두 가지 키워드 중 하나는 올림픽이다. 전 세계인의 시선을 모았던 올림픽은 수많은 감동의 살아있는 드라마를 남겼고,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자리를 잡았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개혁개방 30주년이다. 지난 30년 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중국인들은 지난 시간을 반추하면서, 새롭고도 치열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바쁜 숨을 고르고 있다.

지난 9일부터 베이징에서는 공산당 17기 3중전회가 열렸다. 전체회의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것은 1978년 11기 3중전회라는 역사적 회의에서 제기된 개혁개방의 외침을 어떻게 진정한 발전의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미래의 방향설정이었다. 이에 앞서 진행됐던 사전작업은 지난 30년간 격변의 세월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것이었다. 개혁개방 30년 동안 중국은 상전벽해라는 성어가 제대로 걸맞을 만큼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드라마도 변화를 거듭해왔다.

▲ <베이징 사람, 뉴욕에 가다>
개방 시대 초기인 1978년~1989년까지 중국은 문화혁명 시기 처참히 부정됐던 두 가지 사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서방으로 대표되는 외국의 문물이었으며, 또 하나는 문혁 이전, 더 나아가 공산당 집권 이전 시기 중국에서 꽃피워졌던 백화제방의 문화였다. 이러한 조류는 드라마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이 시기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 중 하나는 그동안 막혀있던 드라마의 수입물결이었다. <안나 카레리나>, < The Man From The Bottom of Atlantic>와 같은 서양 드라마와 <곽원갑>, <사조영웅전>으로 대표되는 홍콩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문혁 기간 혁명을 위해 제작된 드라마에 ‘시달려’ 왔던 중국인들은 단순히 오락과 휴식을 위한 혹은 인간의 본성 탐구라는 근본적 문제를 다른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특히 1984년 <사조영웅전>이 방영되던 시기 중국에는 아직 TV 수상기를 소유하지 못한 가정이 많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이웃집 안방을 가득 메운 것은 물론이고, <상록수>에 나오는 학생들처럼 창밖에 매달려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1986년경부터는 갖가지 이유로 문혁시기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명작소설이 다시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다. 고전물 <홍루몽>과 <서유기>가 인기몰이를 했고, 공산당 집권 이전 시기인 1930~40년대에 쓰여진 <사세동당>, <뇌우>와 같은 작품들이 속속 드라마로 제작됐다.

이처럼 수입드라마나 기존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었던 이유는, 막 문혁을 마감한 시기 중국 드라마의 독자적 제작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천안문 사건 이듬해인 1990년~2000년까지는 드라마 창작기법이 발전하면서, 드라마 제작을 위해 쓰인 대본이 브라운관을 통해 실현된 시기였다. 초창기에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드라마는 <갈망>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는 마치 우리나라의 <아씨>를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 전개를 갖고 있었다. 가엽고도 선량한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대가족의 인생사가 전개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세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갈망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많은 이들을 웃고 울렸다.

이 시기는 또 드라마와 영화에서만 보던 서방세계에 중국인들이 발을 딛기 시작하던 때다. 이 시점까지 외국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이었으며,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위해서 여객선에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일부 계층의 사람들은 많은 이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인기를 끌었던 것은 <베이징사람, 뉴욕에 가다>라는 드라마였다. 낯선 환경에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은 시청자들의 동정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바도 있었으나, 보다 깊은 곳에 자리잡은 심정은 동경과 부러움이었다. 이밖에도 오락성이 짙은 무협드라마도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드라마를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황제의 딸>도 이 시기부터 제작됐다.

2001년부터는 중국 드라마의 다원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20세기 말부터 사회 전체에 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해진 것에 대한 반발 심리로 혁명/군사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덩샤오핑의 선부론의 결과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두었으나, 말 그대로 일부 계층이 먼저 부를 축척하도록 한다는 사상은 빈부격차 확대, 소외계층 출현 등의 결과를 빚어냈다. 결국 일부에서는 중국이 철저한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다 같이 가난했지만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됐다.

▲ 북경=이재민 통신원/ 게오나투렌 중국투자자문 이사, 북경대 박사
그 중에서도 <사병돌격>은 많은 이들의 인구에 회자되면서, 지금까지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또 하나의 현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국드라마의 중국 상륙이다. 수입드라마라면 서양이나 일본의 것만 인식하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수교를 통해 한국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한국 콘텐츠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특히 이 시점에 시청자들의 가족드라마, 청춘 멜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로 시작된 드라마 붐은 ‘한류’라는 단어를 사회에 널리 전파시키면서, 제2, 제3의 인기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대장금>의 방송을 기점으로, 중국 방송인들의 경계심이 확산됐고, 한국드라마의 ‘질질 끌기’에 식상해진 중국인들은 점차 채널을 돌리고 있다.

지난 30년의 개혁개방 기간 동안 중국 드라마는 끊임없는 변화를 거쳤으며, 지속적인 두 자리 수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제작진들의 창작능력도 괄목할만하게 상승했다. 최근 들어 중국 기업의 해외진출 노력도 강화되면서 방송콘텐츠 수출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향후 10년, 20년, 30년, 중국의 방송은 또 어디로 향해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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