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의 쾌락 다시 끌어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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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의 쾌락 다시 끌어 오를까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인들의 단상
  • 미국=이국배 LA통신원
  • 승인 2008.10.15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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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가 금융과 실업, 은퇴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다”
뉴욕타임즈 10월 11일자 경제면 헤드라인이다. 미국인 그 누구도 이 같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최근 미국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평생을 일하며 차곡차곡 은행에 모아둔 내 돈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 순간, 은퇴를 위해 젊은 시절부터 투자해온 주식과 연금은 자고 일어나니 반으로 줄었다. 정말로 열심히 일해 왔건만 직장의 책상은 날아가 버리고,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들어가려 했던 직장이 간판을 내렸다. 은퇴 후의 계획을 다시 세워 보지만, 그동안 대출을 거의 다 갚은 집은 차압이 들어와 어떤 일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다.

현재 이 같은 걱정과 공포에서 자유로운 미국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지나치게 비대해진 미국의 금융자본은 지속적인 체중 증가를 위해 아예 21세기 모든 사람이 사는 법을 스스로의 방식대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나이 먹어 그 어떤 대책도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그저 서민들은 그것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그 세상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했고, 이곳저곳 쪼개어, 심지어 빚을 얻어 열심히 투자했다. 그것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법이라고 모두들 말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무리 보아도 무엇인가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무엇이 해결책인지도 보이지를 않는다.

“내 재정상황은 집에 불이 난 것과 같다. 불이 꺼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신문을 접고 TV를 꺼버린 한 미국인의 이야기다. 왜 7000억 달러인지 세부안도 불분명한 구제금융안이 희망의 불빛처럼 깜박이지만, 그 돈 역시 내 빚으로 남는다는데, 내가 또 일해서 갚아야 한다는데, 이것을 찬성하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 정치권은 시종일관 갑론을박이다. 하원 일각에서는 각 지역의 기간산업을 구축해 고용을 창출하는 1500억 달러의 경제자극지원법안을 내놓는가 하면,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것이야 말로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바로 거부해 버린다.(CNN 10월 13일)

이번 대선은 십수년만에 가장 많은 시청률을 올릴 만큼 토론회가 인기였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양쪽 모두 “이런 사태는 당신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참동안 비난만 해대었다. 공화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것이 민주당이 저소득층 주택대출을 용이하게 한다며 만들어낸 사기상품”이라고 몰아쳤고, 민주당은 “지난 8년간의 공화당 집권기간 동안 월가의 규제를 모두 풀어 놓은 관리부재의 결과”라고 맞받아친다.

▲ 미국=이국배 LA통신원/ KBS America 편성제작팀장

어느 대선 후보는 그 동안 내가 부어온 401K 연금을 벌금 없이 중도에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산층 구제방안중 하나라며 한 표를 호소한다. 이미 그 벌금의 몇 배가 없어졌는데 말이다.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경제화. 전 지구적 차원에서 거품의 쾌락을 함께 즐기고, 거품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진실로 ‘평등한’ 세상. 이제 곧 또 다른 거품이 끌어 오르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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