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 권리’가 곧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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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알 권리’가 곧 인권
[언론과 인권] 최성주(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 최성주(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 승인 2008.10.21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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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주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인권이라는 말에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내가 오로지 나 개인의 정체성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자유로움, 너를 위해 나를 절제함, 나를 내어줌, 그렇게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다면 너 또한 오로지 온전한 존재로서 너일 수 있어야 한다는 약속이 들어있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 약속은 내 주변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맺어진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며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모든 관계에 공고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한 순간 누군가 그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왜곡하더라도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절대적인 명제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언론인이라는 이름으로 보통사람들에 비해 “한 가지 더”를 요구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자나 PD라는 이름의 그들은 능력 있는 사회인이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과 창의력을 인정받으며 맡은 일을 하는 평범한 생활인,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는 성실한 가장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자신의 몫을 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삶에 애정과 관심, 그리고 책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의 생활이 어려운지, 누군가 소외당하는 사람은 없는지, 무엇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더불어 삶에 대해, 공동체의 지향점에 대해 다른 이들에 앞서 고민합니다. 그 책임감은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론의 본질이 사회의 고통에 시선을 두는 것이기에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인은 자주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큰 몫을 요구받으며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PD저널〉에 언론(방송)과 인권에 관한 글을 부탁받으며 무언가 요구하기보다 오히려  먼저 언론인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 안으며, 눈에 보이는 보상도 없이 힘들고 외로운 길을 묵묵히 가는 언론인들을 만나면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아름답게 하는지 자문해보곤 합니다. 사명감으로 이 일을 택했든 자신의 성취를 위한 선택이었든 언론인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의 어깨에 우리 사회의 변화와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진실에 대한 열망만큼 사회정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의 아름다움만큼 우리 사회의 공동선도 자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또 누군가는 그 빈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인권과 언론권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국민들의 알권리, 언론권이 곧 인권이지요. 올바른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 지나친 관심을 절제하기 위해, 소외당하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차가운 관찰자로만 남아있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냉철한 이성을 요구받지만 이웃의 아픔에 눈감지 않는 뜨거운 가슴을 기대합니다.

당신들은 사랑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아니 이미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최성주 / 언론인권센터(http://www.presswatch.or.kr/)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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