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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야기] 이정호 전 언론노조 정책국장

〈베토벤 바이러스〉는 초라한 현실을 딛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똥 덩어리 아줌마(정희연)와 경찰(강건우)는 딱 우리 일상에 닿아있다. 김수현 드라마처럼 부티나게 차려입은 사람도 없다. 다 그저그런 사람들이다. 대신 소재는 파격이다. 내 기억으론 음악을, 그것도 교향악단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처음이다.

파격과 현실이 혼재한 이 드라마의 작가는 홍자매(홍진아.홍자람)다.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소설가 홍성원의 두 딸이다. 6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전업작가로만 칠십 평생을 오롯이 밀고 간 소설가 홍성원의 장편에는 13살 소년 홍성원이 겪은 50·60년대 우리의 현실이 켜켜이 묻어있다. 비약과 파격이 들어설 한치의 틈도 없다. 장편 〈남과 북〉과 〈그러나〉, 〈먼동〉 어디를 둘러봐도 영웅은 없다. 그 흔한 선악의 대결조차 없다. 그럼에도 〈남과 북〉은 한국전쟁을 그린 최고의 소설이다. 홍성원은 절대선도, 그 반대도 없는 현실을 그렸다.

▲ 베토벤 바이러스 ⓒ MBC

그러나 단편으로 돌아가면 좀 달라진다. 단편집 〈주말여행〉은 파격이다. 치열하고 독특하다. ‘프로방스의 이발사’에선 인종 청소의 살인과 광기도 보인다. 장편의 평면적 인물은 단편에서 입체감을 더한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이런 아버지의 장·단편의 조화를 빼닮았다. 정희연(송옥숙)의 절규는 아버지의 단편 ‘사공과 뱀’의 주인공 중년 부인의 독백 속 해방과 희열감을 고스란히 담았다. 전작 드라마가 아님에도 쉽지 않은 배우들의 악기 다루는 손놀림도 무난하다.

그러나 뛰는 시청률 때문에 삼각관계의 뻔한 신파조로 변질되지 말았으면 한다. 배용기(박철민)의 에드립은 그만 하면 됐다. 두루미(이지아)의 크래커 먹는 장면은 있을 법하지만, 뛰어든 호수 바닥에서 10분이면 사망 아니면 뇌사다. 포디움(podium) 위의 강마에(김영민)의 양손이 지휘하는 내내 좌우 대칭인 것도 어색하다. 오보에 수석 김갑용(이순재)은 연주 때 리드(reed)를 너무 깊게 문다. 그렇게 하면 소리가 안 난다. 리드는 아래 입술과 닿아야 한다.

▲ 베토벤 바이러스 ⓒ MBC

관현악에서 오보에는 중심이면도 동시에 천덕꾸러기다. 마치 현실과 파격의 조화처럼. 높은 음의 목관악기라는 뜻의 오보에는 목관악기 중 음률조정이 가장 어려워 합주 때는 다른 악기가 오보에에 맞춘다. 리드의 길이가 조금만 달라도 반음 이상의 차이를 빚기 일쑤다. 모든 악기가 오보에에 맞춰 튜닝하니 관현악의 중심이다. 대신 독특한 음색은 합주 때 종종 다른 악기와 조화를 거부한 채 혼자 뚫고 나와 천덕꾸러기가 된다. 가슴을 쥐어짜는 오보에의 애절한 음색은 신의 소리에 가장 근접했다. 때문에 중세 교회에선 신의 영역을 범했다며 오보에를 퇴출하기도 했다.

오보에는 관현악의 중심이면서도 절제된 음색을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을 망친다. 오보에는 현실과 파격의 양날의 칼을 가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가장 많이 닮았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아버지의 작가정신처럼 끝까지 현실과 파격이 하나였으면 한다.

우리는 실패한 오보에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1960년 10월 〈사상계〉에 발표한 단편소설 〈이 성숙한 밤의 포옹〉에서 전후세대의 절망과 방황을 현실적으로 그렸던 작가 서기원의 오보에는 30년 뒤 KBS 사장으로 입성, 군사정권에 부역하면서 조화를 잃었다.

정확히 20년 전 ‘공영방송 제도’(신동아 1987년 8월호, 474-481쪽)란 글에서 공영방송의 첫째 기본원칙을 ‘독립성’이라며 “자유롭고 다양한 의견형성과 표현”과 “정부나 어떤 세력의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와야만 된다”고 했던 현 KBS 이사장 유재천의 오보에는 스스로 국가권력을 불러들이는 모순으로 깨졌다.

▲ 이정호 전 언론노조 정책국장

애당초 현실과 파격의 조화를 부정했던 수많은 오보에들도 정권의 향배와 함께 무더기로 방송사 CEO가 됐다. 그들에게 〈베토벤 바이러스〉는 시청률 올리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할 건 뻔한 삼각관계 밖에 없다. 왜냐면 그들은 퇴출돼야 할 ‘악성 바이러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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