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가 카쉬프, 필 하모닉 그리고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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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가 카쉬프, 필 하모닉 그리고 서태지
[프로그램 리뷰] MBC ‘2008 서태지 심포니’
  • 원성윤 기자
  • 승인 2008.10.27 0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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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사에서 서태지는 언제인가부터 논쟁의 대상이 돼 버렸다. 그가 이뤄놓은 성과들과 별개로 그의 음악적 장르성과 관련해 선구자 혹은 수입자라는 꼬리표가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녔다. 이번 8집 〈Atomos Part Moai〉 새 싱글앨범도 마찬가지였다.

‘네이처 파운드’(nature pound)를 표방했다는 그의 사운드는 6, 7집에 비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전에 비해 사운드가 주는 묵직함이 덜 한 것은 드릴&베이스로 리듬을 분산시키며 들어가는 ‘모아이’(Moai)나 미디사운드로 곡 안에서 변주를 거듭하는 ‘휴먼 드림’(Human dream), ‘틱탁’(T'ik T'ak)은 좀 더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곡들의 정체성으로 인해 그가 여전히 미디음악의 미련을 못 버린다는 불만과 혹평도 따라왔다.

▲ 24일 MBC에서 방송된 〈2008 서태지 심포니〉
서태지가 어느 장르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에 그렇게 서게 된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정통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서태지의 소리는 여전히 편집증 환자마냥 그가 구겨 넣은 콩나물들이 온갖 분열과 번식이 일어나 번잡스럽기 그지없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음악성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서태지가 이번 활동 중간에 들고 나온 것은 바로 ‘클래식’(Classic)이었다. 의외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느 곡에서도 장르의 변주를 보여주는 그였기에 어쩌면 클래식의 선택은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TV에서 가출 청소년들의 고백가로 규정돼버린 ‘컴백홈’(Come back Home)이 갱스터랩 힙합(4집)에서 랩과 메탈이 뒤섞인 핌프락(6집), 그리고 둘의 조화에 클래식의 크로스오버로 제3의 ‘컴백홈’이 탄생하게 한 것은 서태지의 가능성과 상상력이 무한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 지난 24일 MBC에서 방송된 〈2008 서태지 심포니〉
언플러그드 사운드인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기계음의 이펙트가 잔뜩 걸린 록 음악과 접목시킨다는 것은 2000개의 난자를 쓰고도 성공하지 못한 황우석의 체세포핵이식만큼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악기의 숫자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컴퓨터로 조정이 가능한 사운드가 아닌 열려있는 월드컵경기장과 같은 공간에서 표현하고 싶은 대로 소리를 내는 것은 서태지가 아니면 시도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9월27일 공연 현장에서는 하울링도 나며 다소 아쉬웠던 사운드가, TV에 선보이는데 한 달 가량의 시간이 걸린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그럼에도 서태지가 공연 중간에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한 것도 그런 느낌의 표현일 것이다.

24일 MBC에서 방송된 〈2008 서태지 심포니〉는 다시 한 번 그의 존재의미를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서태지가 파트너로 지목한 이는 다름 아닌 톨가 카쉬프(Tolga Kashif, 1962)였다. 그는 영국 왕립음악학교를 나온 클래식 수재이자 변종이기도 하다. 로열 필하모닉, BBC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을 지휘자로 열연한 그는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U2, 그리고 퀸 심포니(2002) 음악감독을 역임한 가히 세계적인 인물이다.

▲ 지난 24일 MBC에서 방송된 〈2008 서태지 심포니〉
또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구성한 65인조 ‘서태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서태지 밴드, 혼성 60인조 ‘파주시립합창단’ 등이 무대에 오른 것은 그 모습만으로 서태지 마니아들이 혼절시키기에 충분했다.

플루트, 하프, 비브라폰이 몽환적으로 어우러진 ‘테이크 원’(Take one, 5집)의 서곡을 시작으로 ‘서태지 심포니’는 1시간30분(공연 1시간50분)간의 대서사시를 선사했다. ‘테이크 투’(Take Two), ‘인터넷 전쟁’, ‘모아이’(Moai), ‘죽음의 늪’, ‘틱탁’(T'ik T'ak), ‘헤피엔드’(Heffy End), ‘시대유감’, ‘영원’, ‘교실 이데아’, ‘컴백홈’(Come Back Home), ‘난 알아요’까지 서태지 밴드 사운드에 덧 입혀진 필 하모닉의 현과 쇠의 울림은 곡 안에서 분열과 변주를 반복적으로 해댔고, 폭발하는 60명의 합창단 코러스는 서태지의 목소리를 힘을 더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 지난 24일 MBC에서 방송된 〈2008 서태지 심포니〉
이번 MBC 〈2008 서태지 심포니〉는 기획과 제작에 있어서 시청자를 배려한 점이 눈에 띄였다. 임진모 음악평론가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마에스트로’를 꿈꾸는 배우 장근석이 프롤로그를 장식하며 심포니의 관람 포인트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줬다. 또한 각 곡마다 곡의 해석과 악기의 설명을 덧붙여 일반 시청자들이 생소하지 않게끔 해 돋보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F.M Business’ (F.M 비즈니스, 7집)가 심의 문제로 방영되지 못하는 불운은 아쉬운 점이었다. 그러나 서태지 마니아들에게는 포기란 없다. 이곡을 포함해 팬들은 공연실황 방송을 HDTV 중계와 고출력의 음향설비가 갖춰진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볼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또한 서태지는 8집에서 세포 분열한 2번째 싱글앨범 ‘버뮤다 트라이앵글’(BERMUDA[Triangle])로 또 다른 비상을 준비 중이다. 서태지와 팬은 이렇게 닮아있다. 이들의 상상력은 상호자극제이고,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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