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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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경계에서] 박봉남 독립PD
  • 박봉남 독립PD
  • 승인 2008.10.2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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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포스터.
독립PD 이충렬, 이 친구가 크게 사고를 쳤다. 그 친구의 작품 〈워낭소리〉가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PIFF메세나상 (다큐멘터리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흐흐, 그렇게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오랫동안 독립PD로서 방송 일을 꾸준히 해왔던 그의 최근 행보는 우리 독립PD들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우선 공중파 외주제작 담당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그의 잘못도 있다. 성격이 좀 부드럽지 못한데다가 자신의 주장이 매우 강했기 때문일 게다. 어느 때는 방송일 때려치우겠다고 특유의 염세적인 표정을 하기도 하고 문득 강원도 폐광지역에 가서 6개월을 있다 오기도 했다. 폐광노동자들의 후일담을 다큐멘터리로 담겠다는 것이 의도였다. 물론 방송은 나가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의 제작비 역시 고스란히 혼자 감당했음은 물론이다.

몇 년전 이 친구가 ‘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하겠다고 제작자를 구한다고 하면서 나를 만난 적이 있다. ‘소’ 이야기라면 나도 귀가 번쩍했지만 그때 나도 먹고 살기가 버거웠던지라 같이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나는 KBS 〈인간의 땅〉제작에 2년째 매달려 꼼짝 못하고 이 일만 하고 있던 차에 그런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워낭소리〉를 봤다. 75분짜리 HD다큐멘터리 영화. 아! 나는 75분 내내 숨을 죽이고 이 영화를 봤다. 아!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다. 최근에 본 그 어떤 공중파 다큐멘터리, 그 어떤 극영화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아! 이충렬이가 이런 내공과 뚝심을 숨기고 있었구나. 이 작품은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팔순의 최 노인과 그의 가장 오랜 친구인 나이 마흔이 넘은 늙은 소에 관한 이야기다.

▲ 영화 〈워낭소리〉 주요장면.
다리도 불편하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최 노인은 어느 봄날 애지중지 자신의 소가 1년을 넘기지 못 할거라는 사형선고를 듣고 안절부절한다. 이 영화는 그 시점부터 1년 후 늙은 소가 최 노인의 눈물을 뒤로 하고 숨을 거두기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눈물겹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감독의 의도가 이렇게 적혔 있다. ‘유년의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라고.

이 영화는 내년 1월에 극장 개봉을 한다고 한다. 한번 보시기를 권한다.

근데 정작 하고픈 이야기는 이런거다. 만약 이 작품을 공중파에 모든 판권을 넘기고 팔아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단연코 손해였을 게다.〈워낭소리〉같은 좋은 작품을 우리 독립피디가 만들었다는 것이 기쁘지만 한편으로 이제 이 친구가 방송 일을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할까, 이런 사례를 보면서 후배들은 더욱 분발하려고 할까, 아니면 힘겨운 방송 외주제작 여견을 탓하며 30대 후반이 되면 전업을 고려하게 될까? 올해는 독립피디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다. 이충렬PD 외에도 이승준 PD는 〈신의 아이들〉을 전주국제영화제에 냈고 한중일피디포럼에 출품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박봉남 독립PD
40대 초중반의 독립PD들이 헤쳐가야 할 길은 험란하다. 나는 그리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열악한 외주제작비를 탓할 생각도 없다. 차츰 나아지겠지. 다만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금과 같이 공중파와 계약을 하면 모든 저작권을 다 넘겨야 하는 일반적인 관행이라면 우린 더 이상 공중파에 목을 매려고 하지 않겠지.

방송인으로서 공중파 일도 열심히 하고 때론 자신만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고, 이런 독립PD들의 층이 두툼해지려면 저작권을 제작사가 보유하는 시스템의 개혁이 절실하다. 나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고 방송 일을 접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사람 일을 어찌 알 것인가? 내 주변에도 좋은 인력들이 벌써 많이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있음을….그래서 두렵다.

* 코너 ‘경계에서’는 독립PD들의 칼럼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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