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록’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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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시민주권찾기]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공공기관에서는 끊임없이 기록이 생산되고 있다. 각종 대책문건, 세계동향정보보고, 상황보고서 등 수없는 기록들이 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시민들은 이런 기록에 접근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역할을 해주는 곳이 바로 언론이다. 언론이 심층 있는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기록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은 기록자체가 무엇인지, 기록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기록을 어떻게 입수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예상외로 이 과정을 모르는 언론인들이 많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언론인들이 스스로 기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던져주는 기록(제보)만을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기록을 찾는 것보다 기사를 제보할 사람을 찾는 것이 익숙해져가고 있다.

▲ 정부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정보공개청구 행정소송도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를 상대로 한 임대아파트분양원가 소송은 10건이 집계됐는데 모두 주공이 패소했다. ⓒ KBS
언론인들에게는 제보도 매우 중요하지만 공공기관에 수없이 생산되는 기록을 찾아서 보도하는 훈련도 매우 중요하다. 더군다나 제보는 ‘제보자 보호’라는 엄청난 난관을 뚫어야 하고, 그 정확성을 입증하는데도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이런 이유로 요즘 한국언론재단에서는 정보공개청구를 이용한 보도, CAR 보도 등을 언론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가장 기초적인 문제로 기록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언론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번 컬럼에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고 다음에 기록의 존재여부와 기록을 입수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필자가 전공한 기록관리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기록’과 ‘도서’의 차이이다. 처음 교수님이 ‘기록’ ‘도서(책)’ 의 차이를 작성해서 리포터로 제출하라는 말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도서’도 기록의 일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일반시민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우리는 기록이라는 말을 너무나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 정보공개 청구는 매년 신장해왔고 2006년에만 30만건이 넘는 정보공개 청구가 이뤄졌다. 하지만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만족도는 약 62%밖에 되지 않았다. ⓒ KBS
그러면 ‘기록’과 ‘도서’ 도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 정답은 ‘도서’는 생각의 결과이고 ‘기록’은 행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기록은 유일본이고, 도서는 동일본이 수없이 생산된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 사과축제를 연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어떤 기록이 생산되는가? 사과축제에 대한 행사기획안, 예산요구서, 실행계획안, 예산집행안, 결과보고서 등의 기록들이 생산될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과축제를 주관했던 담당자가 이 축제를 마치고 난 다음 기록들을 검토하거나 본인의 경험을 정리해서 쓴 것을 정리하여 단행본으로 내었다면 이것은 도서가 되는 것이다. 이 도서는 최소 몇 천부를 발행하게 되지만 검토한 기록의 원본 및 진본은 그 지역에 유일하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차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기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 공무원이 어떤 업무에 대해서 기록을 생산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그 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정치인과 공무원의 중요한 차이이다. 정치인은 말로 일을 하지만 공무원은 기록으로 일을 하는 직업이다.

얼마 전 필자는 어떤 현안과 관련되어서 모 공공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답변내용은 “관련 기록 부존재” 라는 답변이었다. 전화를 해서 문의를 했더니 공무원 반응이 “꼭 기록을 해야 일을 하는 것입니까?” 라고 항의를 하는 것을 들었다. 이거야 말로 공무원의 의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답변이다.

공무원은 ‘공문’으로 표현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공무원들의 기록 작성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무원의 역할을 규정한다면 공공의 일을 집행하고 그 집행한 것을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기록관리학에서는 기록의 정의를 “업무의 결과로 생산되는 것”이라고 요약해서 정의한다.

또한 이런 기록의 특성 때문에 기록을 불편부당(가치중립)하다고 말한다. 생각과 주장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결과를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업무의 결과를 생산하는 것에 가치가 부여될 자리는 없다.

▲ 전진한 사무국장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기록은 그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독재정권 때 생산되었건, 민주정권에서 생산되었건 기록은 다 소중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생산하는 수많은 기록들은 몇 년 후, 또한 몇 십 년 후 이명박 정부를 평가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현재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이때에도 기획재정부는 수많은 대책문건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 기록들은 이명박 정부가 차후에 얼마나 이 위기 속에 잘 대응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자료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록은 어떠한 경우에도 생산되어야 하고, 후세들을 위해 소중하게 보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www.opengir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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