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매체 ‘공멸’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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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영수 지역MBC정책연합 경영전략팀장

이명박 정부의 산업화 논리 속에 방송계는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에 쌓여있다. 현 정부는 방송장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한편으로 대기업의 미디어 소유규제 완화, SO와 PP의 겸영제한 완화, 신방 겸용 허용, 민영 미디어렙 도입 추진 등을 담은 방송구조 개편(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일방적이고 소통 없는 정부의 방송정책 발표에서 이 나라 방송의 앞날을 생각하는 진정성이나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방송이 산업적 측면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의제기능과 문화적 가치 등을 구현하는 수단임을 감안할 때 이 중 어느 일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나무만을 보는 우를 논하기에 앞서 그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방송계를 휩쓸고 있는 여러 현안의 한 가운데에 민영 미디어렙 도입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학계와 시민단체,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을 중심으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은 결국 방송이 자본(광고주)으로 예속되는 결과를 낳아 프로그램 경쟁력이 약한 취약매체의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해 왔다.

▲ 지난 9월 22일 '민영미디어렙 도입 반대' 시위에 참석한 종교방송과 지역방송 노조원들이 선전물을 흔들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10월 10일 재경부는 ‘KOBACO 독점인 방송광고대행 시장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되, 구체적인 방안은 각계 의견을 들어 2009년 말까지 마련한다’, ‘특히, 종교방송, 특수방송 등 취약매체에 대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사전에 강구한다’ 등을 담은 제 3차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사실 우리 방송계에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점차 축소되는 지상파 광고시장의 파이를 키워 방송 본연의 임무인 공익성과 공공성을 실현하는 콘텐츠 제작 재원을 마련해 주자는 선의에서 그 논의가 출발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시장 만능의 경제성, 효율성에 파묻혀 그 선의는 왜곡되고, 합리적인 절차와 의견수렴 과정도 무시된 채 우는 놈에게 우선 떡 하나 주자는 식의 땜질 처방과 밀어붙이기만이 횡행하고 있다.

정부가 밝힌 바대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강행한다면 방송사는 광고주의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 제작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시청률 경쟁에 휘말려 들어가 방송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뿐만 아니라 중앙 메이저 방송사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실리 사이에서 미디어렙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며, 광고요금 자율화로 인해 광고단가가 급상승하게 되는 부작용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광고주들의 낙점을 못 받는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을 필두로 한 취약매체의 경우 상시적인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방송광고제도 재편이 가져올 효과가 이렇게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굳이 서둘러서 추진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숨을 고르고 제도 도입의 목적부터 방향성, 파급효과, 또 다른 대안, 피해매체에 대한 보전방안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의제들을 공론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찬찬히 곱씹어가며 다뤄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민영 미디어렙 도입이 최선 또는 차선으로 결판난다면 그 때 가서 추진해도 늦지 않을뿐더러 절차적으로도 마땅한 일이다. 그래야만 하부구조인 광고제도를 통해 방송을 쥐려한다는 불필요한 오해와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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