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먼저 석유를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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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008 지구의 해 특별기획 3부작 호모 오일리쿠스 (Homo oilicus)

석유를 먹고 입고 쓰며 살아가는 현대인류를 지칭하는 ‘호모 오일리쿠스’. 이 말은 우리 제작진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신조어다. 석유를 다루되 석유를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생각이 제목에 반영됐다.

3부작 ‘호모 오일리쿠스’는 다가올 피크 오일의 문제를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 석유 생산의 정점을 뜻하는 피크 오일. 우리가 만났던 수많은 전문가들은 2008년 올해 피크 오일이 왔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미국 에너지정보청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석유 생산은 2005년부터 3년 동안 늘지 않고 정체상태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KBS 2008 지구의 해 특별기획 3부작 호모 오일리쿠스 (Homo oilicus) ⓒKBS

피크 오일의 실체를 밝혀야 하지만 제작진으로서도 중동 산유국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사우디아리비아를 제대로 취재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현지 대사관 관계자는 유전근처에도 간적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접한 쿠웨이트로 방향을 돌렸고, 다행히 세계 2위의 부르간 유전을 취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쿠웨이트도 취재를 허가했지만 제한적이었다. 취재도 쿠웨이트 석유 공사가 내준 차량을 이용해야 했고 안내를 맡은 현지 가이드의 감시가 뒤따랐다. 취재의 핵심은 대형 유전의 노후화 가능성이었지만 인터뷰도 힘들었고 촬영은 주변만을 맴돌았다. 결국 약속된 촬영 장소 외 다른 곳도 가이드를 제외하고 우리끼리 가보자는 것이었는데 촬영 5분 만에 제작진은 현지 경찰에 연행돼서 무려 7시간을 붙잡혀 심문당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정해진 촬영시간을 아무것도 못하고 다 허비해버린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새로운 시설을 보여 달라고 간청한 끝에 그들은 뜻밖에 부르간 유전지역의 수처리 공장을 보여주었다. 2002년에 완공된 부르간 유전지대 4개의 수처리 공장들은 유전이 노후화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 KBS 2008 지구의 해 특별기획 3부작 호모 오일리쿠스 (Homo oilicus) ⓒKBS

비슷한 시기에 유전을 개발했고 인접한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세계 1위의 가와르 유전도 맷 시몬스의 분석처럼 이미 노후화되고 있을 가능성은 농후했다. 실제로 미국 스태니포드 박사가 만들어낸 가와르 유전내 석유층이 줄어드는 시뮬레이션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다가올 세계 석유의 부족분을 중동의 산유국들이 메울 수 없다면 피크 오일은 벌써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크 오일 대책을 총괄하는 미국 포틀랜드시 한 국장은 다가오는 피크 오일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단언했다. 세계 1위의 석유 소비국 미국에서 인구 60만의 대도시 포틀랜드는 정말 별종이었다. 자동차중심의 도로교통체계를 확립했던 다른 미국 도시들과 달리 포틀랜드는 도심의 도로를 갈아엎어 지상철을 놓고 케이블카도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양복입고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헬멧을 들고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이곳에선 ‘쿨’(cool)하다고 생각한다.

▲ 윤진규 KBS PD
이들은 자전거를 타면서 더 건강해지고 도시농장을 통해 이웃사람들과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잘 준비만 한다면 도시를 혁신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는 것이다. 실제로 8일 동안 포틀랜드를 취재하면서 손형식 카메라감독은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면 보통은 사람들이 짜증을 내는데 이곳 사람들은 짜증은커녕 항상 웃으며 반겨줘 촬영하기가 정말 편했다고 귀띔했다. 석유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음을 포틀랜드 사람들의 얼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피크 오일은 우리에게도 공포이지만 잘 준비하면 희망이 될 수 있다.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가올 공포의 실체를 잘 알고 미리 대처할 수 있다면 그 공포에 미리 떨 필요가 없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국제 에너지기구(IEA) 파티 비롤박사의 경고처럼 석유가 우리를 떠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석유를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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