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저울은 누구에게로 기울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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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저울은 누구에게로 기울어지는가
[프로그램 리뷰]SBS 프리미엄 드라마 ‘신의 저울’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8.10.29 00: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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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이 있다. 오른손엔 칼이, 왼손엔 천칭저울이 들려 있다.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칼은 정의를 실현할 힘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려진 여신의 두 눈은 정의를 심판하는데 있어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상징이다.

정의의 여신이 뜻하는 바대로, 법치국가에선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법이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천칭저울은 늘 강자에게로 기울고, 칼은 권력과 자본 앞에서 솜방망이로 변한다. 그래서 약자들은 법 앞의 평등이란 원칙을 냉소한다. 하지만 호소도, 읍소도 통하지 않아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찾게 되는 것이 또한 법이다. 그래서 이 물음은 아직 유효하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같은 물음에서 시작한 작품이 지난 24일 막을 내린 SBS 프리미엄 드라마 〈신의 저울〉(연출 홍창욱, 극본 유현미)이다. 법은 과연 공평한가에 대한 질문은 곧 법이 공평하지 않다는데서 비롯된다. “법 앞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획됐다는 〈신의 저울〉은 이런 현실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정의가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도 놓지 않았다.

▲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과연 공평한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SBS 프리미엄 드라마 '신의 저울' ⓒSBS
우빈(이상윤)은 정의로운 검사 김혁재(문성근)의 아들이다. 2년 전 사법고시에 합격한 날, 선배의 자취방을 잘못 찾았다가 우발적으로 은지(임효선)를 죽게 한다. 자수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만류와 법조인 가문의 명예 때문에 포기했다. 이 때문에 우빈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은지의 연인이었던 준하(송창의)가 누명을 쓰고, 그의 동생이 대신 옥살이를 하게 된다.

애초에 자수했다면 정당방위로 무죄를 인정받았을 우빈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거짓 속에 갇혀 점점 더 큰 거짓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또 다른 형벌이다. 결국 그는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무죄를 선고받은 뒤, 준하와 그의 동생으로부터 용서를 받음으로써 죄를 씻었다. 저울은 신이 들고 있지만, 저울을 기울이거나 바르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인 셈이다.

〈신의 저울〉은 법의 피해자였던 준하가 결국은 법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과 그 자신이 법의 집행자였던 우빈이 법의 단호한 적용을 받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법의 가능성과 신이 든 저울의 균형을 시험해 보였다. 법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했지만, 드라마는 결고 법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사법연수원생 학범(송영규)은 “법이야 쫀쫀하고 촘촘하지. 그걸 집행하는 인간들이 문제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법의 집행자라는 인간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준하로 인해 결국 수정된다. 법을 믿고, 정의를 믿는 검사 준하는 신이 아닌 인간이 들고 있는 저울의 실질적인 균형을 맞출 희망인 것이다.

▲ 정당방위를 감추려다가 준하(송창의, 오른쪽)의 동생을 옥에 보낸 우빈(이상윤)이 용서를 비는 장면. ⓒSBS
방영 내내 10%대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신의 저울〉은 요즘 보기 드물게 뚝심 있고,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일부 전형적인 설정과 전개 등 디테일한 단점이 없진 않았지만,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진정성은 힘이 셌다. 현실을 보는 날카로운 시선도 돋보였다. 정치권과 검찰의 고위직 인사들이 포진한 로펌 ‘신명’은 우리 사회 마지막 성역으로 남은 ‘김앤장’과 닮은꼴이고, ‘신명’이 개입해 국민주가 투입된 은행을 부실은행으로 둔갑시켜 외국계에 매각한 사건은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떠올리게 했다.

현실이 그렇듯이, 드라마 속에서 ‘신명’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준하는 포기하지 않는다. 10년, 20년, 30년이 걸리더라도 부패의 온상은 꼭 뽑아낼 거라고 의지를 불태운다. 현실에서 준하 같은 인물을 찾을 수 없기에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드라마의 후반부. 김혁재는 북한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공평해야 하지만, 법조인의 마음 속 저울은 공평해선 안 돼. 약자한테 좀 더 배려해야지. 그게 실질적인 평등이거든. 가난한 사람한테는 법에서도 뒷문을 열어줘야 해. 그게 진짜 공정한 거야.” 그리고 기울어진 저울이 엔딩을 장식한다. 사회적 약자를 향해 기울어진 저울. 그것이 드라마 〈신의 저울〉이 전하고자 한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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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흠 2008-10-29 17:21:28
워낙 좋아했던 드라마이고
리뷰도 맘에 들어
미니 홈피에 퍼가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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