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칼럼]편성규약이 방송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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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칼럼]편성규약이 방송을 살린다
  • 승인 200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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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방송 프로그램을 사이에 두고 방송 제작자와 경영진이 상반된 판단을 내렸을 때 누구의 판단을 따라야 하는가? 그
|contsmark1|상반됨의 정도가 커서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가지고
|contsmark2|있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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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불행히도 법률이 보장하는 기준과 절차는 가지고 있지 못하고, 다행히도 그 초석이 될만한 노력의 성과는 분명히
|contsmark6|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새 방송법이 편성규약의 제정을 의무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법 제4조 4항
|contsmark7|에 "종합 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 편성을 행하는 방송 사업자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
|contsmark8|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 편성 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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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그렇다면 편성 규약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 방송법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또 "편성"이라는 용어가 넓
|contsmark13|게 쓰느냐 좁게 쓰느냐에 따라서, 어떤 문맥에 쓰이느냐에 따라서 워낙 뜻이 달라지는 포괄적인 용어라는 점도 명
|contsmark14|확한 합의를 어렵게 하는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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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하지만 규약의 목적으로 "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 보장"을 명시한 것을 보면 방송 시간대 편성과 같은 제한된 의미
|contsmark18|의 편성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서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할 기획, 취재, 편집, 좁은 뜻의
|contsmark19|편성 등 각각의 프로세스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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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그렇게 본다면 편성의 독립은 방송의 독립이고, 그것이 없으면 사회비판과 환경감시를 주업으로 하는 우리 방송
|contsmark23|제작자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독립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모든 외압과 내압
|contsmark24|으로부터 독립이다. 권력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외압, 관료적 체제로 구축되어 있는 사내 명령조직의 내압이다. 외
|contsmark25|압도 외압이지만 내압의 비중이 점점 더 큰 걸림돌로 대두되고 있다. 외압의 행사도 "세련"되어서 전날처럼 직접적
|contsmark26|으로 내려오기보다는 내압의 회로를 거쳐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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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더구나 "디지털"과 "벤처"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는 이 경쟁력 지상시대에 시청률과 수익성의 최전선으로 내몰리는
|contsmark30|열악한 상황도 임박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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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여기서 우리는 "편성권은 경영진 고유의 권한"이라는 익숙한 목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
|contsmark34|을 던질 때가 되었다. 과연 편성권은 경영진의 고유한 권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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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7|그러한 발상은 편성 또는 편집을 경영권의 일부로 여긴 데서 나오는 것이다. 방송이 가지는 힘은 결국 국민이 맡
|contsmark38|긴 권한이라는 점을 망각한 상태에서야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편성은 어느 한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대상이 결
|contsmark39|코 아니다. 소수의 경영진이 독점할 수도 없다. 시청자 국민이 위임했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하여 경영진과 제작
|contsmark40|진, 노와 사가 공유하는 공공의 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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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3|"편성권"이라는 말 자체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용어조차 없는 권위주의적 허상이라는 연구자들의 지적에 귀기울
|contsmark44|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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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7|70년대 자유언론실천운동과 80년대 이후의 언론 노동운동이 일궈낸 언론자유의 소중한 실마리가 방송법에 의거한
|contsmark48|편성규약을 통해 제도적인 틀로 구체화된다는 데에 결정적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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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1|이제까지의 성과도 대단한 진전이었지만 대부분 노사간의 협약 수준이라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경영진이 지키
|contsmark52|기도 하고 안 지키기도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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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5|이제 방송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할 편성규약은 그래서 중요하다. 절대로 안 지켜서는 안 되는 규약이어
|contsmark56|야 한다. 사람의 유동적인 판단에 따라서가 아니라 엄정한 원칙과 조항, 즉 제도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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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9|제대로 된 편성규약이 방송을 살린다. 요란하지 않게 진행되는 일이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contsmark60|참된 방송을 위한 백년대계로 여겨 신중한 판단과 뜨거운 관심으로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contsmark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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