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아가야, 우리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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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아가야, 우리가 미안해”
  • 김현정 CBS 〈김현정의 뉴스쇼〉 PD
  • 승인 2008.10.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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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가야,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데 못 사줘서 엄마가 미안해”
얼마 전 광주에 사는 2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이혼 후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였다. 아이들이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데도 사줄 수 없었다는 그의 유서를 보자니 어느 정도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렸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 켤레에 1-2만원이면 살 수 있을 운동화 한 켤레를 못 사주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식당일을 하며 한 달 70만원 남짓을 받았던 이 엄마는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갈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등졌다.

#2. “하루 종일 폐지모아 3000원 받아요”
길을 걷다보면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마주친다. 어떤 할머니는 자신의 키보다 큰 종이 더미를 낑낑거리며 밀다가 지쳐 주저앉기도 하고 어떤 할아버지는 리어카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참을성 없는 자동차들의 경적에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도대체 이 분들은 얼마나 받을까? 하루는 종종 부딪치는 한 할머니를 잡고 조심스레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놀랍게도 3000원이란다. 1kg에 150원을 쳐주는데 그나마 지난해까지 50원을 쳐주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상황이란다. 갑자기 6000원짜리 설렁탕을 먹으러 가던 길이 미안해진다. 이 할머니에게 그 6천원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정녕 개인의 이런 측은지심만으로 해결될 일인가. 가슴이 먹먹하다.

#3. 경기침체로 모두가 어렵다지만 가장 빨리 극한으로 내몰리는 건 극빈층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지 않느냐고? 물론 여러 가지 제도는 있다. 하지만 허점투성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자가 536만 명(11.1%, 2006년 기준)에 달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는 국민은 현재 154만 명(3.2%)에 불과하다. 이혼한 전 남편에게 재산이 있기 때문에, 월소득은 50만 원이지만 8천만 원 지하 단칸방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평생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이지만 자식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세금이 허투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중삼중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정말 받아야 할 사람들이 숭숭 빠져나가는 구멍은 그대로 남겨놓은 채 이중삼중 쳐놓은 그물이란! 

▲ 김현정 CBS 〈김현정의 뉴스쇼〉 PD

또 다시 겨울이 온다. 새 신발을 사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엄마의 외침이 시리게 들려온다. 정작 그 신발은 우리 사회가 사줘야했던 건 아닐까.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과연 안전한가? 아가야, 우리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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