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작기] MBC스페셜 ‘잃어버린 나의 아이’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그렇지만, ‘잃어버린 나의 아이’는 특히나 애증이 교차하는 프로그램이다. 막상 이번 주에 방송한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7월에 이미 편집은 끝났었고, 이후 방송이 연기되면서 수정, 또 수정을 하다 보니 그림이 익숙해진 것을 넘어 무덤덤해진 탓도 있는 듯하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영국의 163번째 vCJD(변형 크로이츠펠트-야곱 병, 일명 인간광우병) 사망자인 앤드류 블랙과 그의 어머니 크리스틴 로드 사연을 중심으로 지난 20년간 광우병, 인간광우병 파동을 선행해서 겪은 영국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조명해 보고자 했다. 5월 기획되어 6월 3주간 촬영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큰 우여곡절이 있었다.

▲ 크리스틴 로드와 앤드류 블랙 ⓒMBC
첫째, 크리스틴 로드가 지난해 9월부터 투병 중인 아들 앤드류를 직접 촬영한 테이프를 제공해 주기로 했는데, 영국에 촬영 떠나기 직전 갑자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했다. 대신 지난 5월 영국에서 방송된 BBC 방송 원본에 들어간 내용을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안된다고 버티다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무척 아쉬웠다.

둘째는 6월 말 촬영을 마치고 귀국해보니 미국 쇠고기 협상 문제를 지적한 〈PD수첩〉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촬영 원본을 놓고 크리스틴 로드를 설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MBC 내에서도, 〈PD수첩〉 논란이 진행되는 가운데 영국 인간광우병 아이템을 방송해야 하는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심지어는 나도 두 가지 길 앞에서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정면 돌파하여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투쟁’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논란의 추이를 보면서 방송 시점을 이후로 미룰 것인가…. 어느 것이 이 프로그램이 방송될 수 있게 하는 선택이 될 것인가…. 결국 후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2~3번의 시사와 더불어 방송은 두 차례 연기됐다. 맞는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광우병 논란 와중에서 영국 정부도 두 가지 길에서 선택했다. 과학적으로 그 위험이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은 병이 발생했을 때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느낄 혼란을 막기 위해 그 병의 위험성을 최대한 작은 범위로 한정하여 대중들에게 알리고 대책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그 병이 현실화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대치의 위험성까지 대비하여 예방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길에서 과거 영국 정부는 전자를 선택했다.

이후 영국에선 공식적으로 18만여 마리 소에 광우병이 발병했고, 164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2000년 광우병 조사위원회(일명 필립스 위원회)가 4000여 쪽이 넘는 ‘BSE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그간 영국 정부의 광우병 통제 정책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과학적으로 그 위험이 증명되지 않은 병이라도 정부가 적극적인 사전 예방 정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두 가지 길에서 영국 정부가 선택한 결과가 너무나도 참담했던 것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었다.

이제 나도 두 가지 길에서 선택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참담하기만 했다’라는 결과가 나오질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