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를 향한 열망과 조기투표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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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를 향한 열망과 조기투표 열풍
[박건식 PD의 미국 리포트(3)]
  • 박건식 (미국 미주리대 탐사보도협회 연수)
  • 승인 2008.11.04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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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 이곳 미주리주의 콜럼비아는 난리가 났습니다. 바로 제가 공부하는 미주리대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연설을 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미주리 주가 대표적인 경합지역(Swing state)여서 전략적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연설 시간은 밤 9시 30분이었지만 오후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서 한없이 인파가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언론인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레츠 신문(www.haaretz.com)의 잭 코리(Jack Khoury) 기자도 그 중의 한명인데,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이 그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잭 코리 기자는 이스라엘의 아랍인입니다. 즉, 공직에 취직할 수도 없는 ‘2등급 국민’인 셈입니다. 그래도 본인은 언론인이어서 이스라엘 내 다른 아랍인들보다는 사정이 훨씬 좋은 편이라며 자기는 이스라엘 내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미주리주 연설 장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주던 잭 코리 기자는 지긋지긋한 중동의 불행을 끝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과거 클린턴 정부 때처럼 중동 평화조약을 체결해서 중동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미국 대선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한반도의 평화 문제로 오바마의 당선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남미 역시 그러한 입장이고 아시아,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그동안 부시 정권의 무력을 동반한 일방주의에 희생을 강요받아온 약소국의 국민들에게 오바마는 하나의 구세주로 각인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오바마가 과연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까요?

오바마를 향한 열망은 미국 내에서, 특히 흑인들 사이에서도 강렬했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100여m 떨어진 ‘변화를 오바마 랠리’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인파는 끝을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이미 좋은 자리를 잡기는 어려운 듯 했습니다. 사실 저의 목적은 오바마가 아니라 그 연설을 듣는 미국 국민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어서 IRE(탐사보도회) 사무실에 있다가 밤 9시쯤 연설장으로 향했습니다. 밤 9시가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인파는 끊어질 줄 몰랐습니다. 오죽하면 오바마의 연설 첫마디가 “와 이 엄청난 군중들 좀 봐!(What a crowd!)”였겠습니까? 저는 연설을 듣는 미국인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한 가지 차이점을 깨달았습니다.

▲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미주리주 연설 장면
‘백인들은 머리로 오바마를 듣고 있지만, 흑인들은 가슴으로 듣고 있구나!’ 연설을 듣는 흑인들에게 오바마는 바로 ‘21세기의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우리에겐 꿈이 있어요’라는 연설을 한 지 45년만에 오바마가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까요? 그들은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한 방안으로 조기 투표(early vote)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조기 투표’는 왜 하는 것일까요? 조기투표는 선거 당일의 혼잡을 피하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일 이전에 직접 투표하는 제도로 현재 미국 32여개 주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미국 투표용지와 불안한 전산 장치를 보면 미국이 왜 이 제도를 도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투표 용지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미국은 대통령만 뽑는 게 아니라, 주지사, 연방 상하원의원, 주 상하원의원, 교육감, 순회판사 등 무려 10가지 직군 이상을 한꺼번에 뽑습니다. 거기에다가 주 헌법을 바꾸는 문제가 5개 정도가 나옵니다. 문제를 읽는 것만도 벅찹니다. 미주리의 경우, 영어전용사용문제, 빗물처리장 정비 문제 등 투표장에서 금방 생각하기 어려운 법안들이 많이 걸려있습니다. 이곳 연구원에게 투표 한 번 하는데 얼마나 걸리냐니까  ‘30분이면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한 사람이 30분씩 걸리면, 전체시간은 많이 소요될 수 밖에 없습니다. 투표당일 대혼잡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2004년에는 평균 10시간씩 기다렸다고 하는군요.

▲ 미국의 투표용지
그리고 컴퓨터 집계 시스템이나 유권자 명부 파악 등이 아직도 부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투표 당일 현장에 가면 갑자기 투표 장소가 다르게 되어 있거나 투표 명부에 빠져 있어서 투표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유는 공화당의 조직적인 투표 방해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2004년 BBC2의 <News Night>은 미국의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이 조지 부시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한 흑인과 젊은층의 투표를 저지하기 위한 비밀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 했습니다. 공화당측은 사설탐정을 고용하여 흑인 유권자 수천 명을 감시하고 이들의 투표 자격 박탈을 위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 전과기록이 전혀없는 흑인유권자는 중범죄자로 몰려 투표권을 상실당했고, 미혼의 젊은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여서 한 젊은 여성은 투표 지역이 역시 수백 마일 떨어진 곳으로 신청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은 조기투표 운동으로 유권자 권리 행사를 위해 나섰고 지미 카터 前  대통령은 UN 감시하의 국제선거감시단 파견을 주장했습니다. 즉, 조기 투표 운동은 선거 당일의 돌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흑인들의 유권자 운동의 일환인 셈이죠.

'조기 투표'는 보통 선거일 한 달전부터 할 수 있습니다. 또, 왜 자신이 조기 투표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댈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편리성과 오바마에 대한 열망 때문에 이번 조기투표율을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 줄지어 선 채로 조기투표를 하는 시민들
이에 따라서 대선 캠프의 선거 전략과 미디어의 보도 전략도 수정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72시간 전략’으로 선거전 마지막 3일간을 치열한 고지다툼을 벌이는 식이었습니다. 마지막 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720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오바마 진영으로 조기 투표에서 확고한 우세를 점한 다음 남은 기간 부동층의 표심을 잡아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전략, 즉 ‘대세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바마는 조기 투표에 총력을 펼쳤습니다. 방송으로 조기투표를 독려하고 젊은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안에도 조기투표를 독려하는 광고를 집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번아웃 파라다이스>의 게임 속 도로에는 오바마 후보의 이미지와 조기투표를 장려하는 문구가 담겨 있는데, 오바마는 게임속 광고에 대략 4만5천달러를 집행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역시 과거와는 다르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조기투표정보센터( http://www.earlyvoting.net/blog)에 따르면 유권자의 30%이상이 조기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대선후보 토론도 더 당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송 편성도 조기 투표자를 겨냥해서 만들어야 할 것 같구요. 방송 광고 역시 다음 대선엔 조기 투표를 독려하는 이미지 광고나 조기 투표자를 겨냥하는 광고가 늘어날 것 같습니다.

▲ 조기투표를 강조하는 게임 내의 광고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관건은 조기투표 결과가 대선투표에 영향을 끼칠 것인가, 끼친다면 얼마나 끼칠 것인가 하는 점이겠죠. 오바마는 이러한 연관효과에 기대를 걸고 조기투표에 총력을 기울이며 대세론(bandwagon)을 밀어붙이고 있고, 매케인은 은근히 브래들리 효과나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 약자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한편 폭스(Fox) 뉴스는 여론 조사 신뢰성의 문제점을 연일 질타하며 언론의 공정성을 꾸짖고 있습니다. 폭스는 ‘뉴욕 타임스’를 ‘ 오바마 타임스’로 부르며 공정성과 균형성(Fair and balanced)의 회복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 폭스의 사주 루퍼트 머독은 “오바마가 당선되면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공공연한 협박을 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기 투표제도는 한국에도 도입해 볼만하다는 생각입니다. 투표 당일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중요한 다른 일이 있어서 투표를 하지 못하는 것은 유권자 권리에 심각한 훼손입니다. 유권자의 권리는 개인의 참여에 의해서 확보가 가능하지만, 그 참여를 가능케하는 제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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