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버린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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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버린 ‘지방’
[풀뿌리닷컴]
  • 이동유 CBS대구 보도제작국 PD
  • 승인 2008.11.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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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결국 수도권 규제를 완전히 풀 모양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수도권에 대기업 공장 몇 개를 신·증설하도록 하는 효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지역’, 아니 ‘지방’은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는 고마워해야 할 일도 있어서 그 얘기를 한 번 해보자.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서 시사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방송 원고를 쓸 때마다 ‘지역’과 ‘지방’ 중에 어떤 표현이 좋을까 꽤나 고민했는데, 이제 실용정부가 그 찜찜하던 퇴고(推敲)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알다시피 ‘지방’이라는 말에는 당사자를 격하하는 묘한 뉘앙스가 있다. ‘지방대학생’, ‘지방공무원’, ‘지방방송’ 등 사람이나 대상의 정체성 혹은 히스토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이런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래서 가능하면 방송에서는 ‘지방’이라는 단어 대신 ‘지역’(Local)이란 말로 그 어감을 지워보려 했던 내 강박을 이명박 정부가 풀어준 셈이다.

국토를 둘로 쪼개서 수도권은 경쟁력을 갖춘 세계 일류로, 지방은 거기서 나오는 약간의 교부금으로 알아서 먹고 살라니 이 얼마나 속 시원한 결론인가. 사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지역발전을 포기한 정부는 없었다. 비록 립 서비스일망정 “지방이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도와줄 테니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가지고 와봐라.” 했던 게 지난 정부들의 태도였다. 물론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플레이였지만. 그러던 것이 실용정부에 와서 드디어 속마음과 행동이 하나로 모아졌다. “너희들이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나라 발전에 발목만 잡았지. 대표 주자를 하나 내세울 테니 너희들은 구경이나 하고 떡고물이나 챙겨!”라는 그 속마음 말이다.

역시 MB정부의 미덕은 이리저리 재지 않는 솔직함과 그 추진력에 있다. 이렇게 확실히 지방을 서울·수도권의 내부 식민지로 규정해주니까 지방 사람들도 자기를 이해하는 게 훨씬 편해졌다. 한 마디로 2류 국민! 지방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니 살려면 아득바득 서울·경기도로 이사 오던지 아니면 닥치고 그냥 살라는 얘기이다. 특히 대구·경북 사람들은 TK출신 대통령이 나오면 과거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환상을 품어 왔는데, 그 환상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견고하던 환상에 이제 정말 실금이 가고 있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것은 꼭 나쁜 면으로만 볼 일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벌어진 작은 틈 사이로 지방 사람들의 자각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낼 날을 이명박 정부가 앞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고 있다지만 아직 지방에는 서울·수도권에 버금가는 인구가 살고 있다. 이쯤 되면 선거판에서 ‘경제만 살려다오’하며 단순하게 나오던 지방 사람들이 앞으로는 ‘우리(지방)한테 진짜 뭘 해 줄래’라며 까다로운 주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먹고 사는 게 다급해진 지방 사람들에게 지역감정이니 보수·진보 따위의 이념대립은 한가한 소리에 불과하다. 그만큼 지방의 경제적 이해가 한국의 정치판을 뒤흔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이동유 CBS대구 보도제작국 PD

과연 이래도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때까지 지방 사람들이 이 가혹한 시련을 견뎌낼 지가 관건이지만 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어쩔 건가. 하지만 혹독한 시절은 결국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고, 그 순간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세력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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