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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PD의 터닝포인트]

▲ 이채훈 MBC PD
한국타이어 노동자가 또 죽었다. 대전공장 직원 한명이 지난 6일 폐결핵이 의심되는 증세로 병원에 실려 갔다가 10일 진료 중에 숨졌다는 것.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직업적인 요인이나 작업환경과는 관련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로 볼 때 이러한 설명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대전ㆍ금산공장과 연구소에서 2006년 5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노동자 15명이 연쇄 사망했으며 이 회사 근무경력자 가운데 1996∼2007년 사망한 93명의 사망 원인은 암 30여명, 심장질환 14명, 기계압사 12명 등으로 나타났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하 2580)은 작년 11월 4일과 25일, 올해 1월 13일 세 차례에 걸쳐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사망 원인을 추적한 바 있다. 당시 사망자 15명 가운데 7명의 사인이 심근경색이었다. 전문가들은 작업장의 고무 분진과 솔벤트는 각종 중독을 일으키고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생존 노동자들도 유기용제 중독과 말초신경 마비 등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고 있어 유해 작업장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 2008년 1월13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2580>
그러나 한국타이어는 당시도 지금처럼 ‘개인적인 병’이라고 주장했다. 진상조사와 보상을 검토하긴 커녕, 감시 카메라로 직원 동향을 감시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산재신청을 방해했다. <2580> 취재팀은 노동자들이 사측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통에 인터뷰가 무척 어려웠다고 했다. 이 회사는 산재 사건을 3년 동안 무려 183건이나 은폐한 게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니 어떻게 한국타이어 측의 설명을 믿을 수 있겠는가.

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고 한국타이어 헝가리 현지 공장도 현지 언론과 환경 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발암 물질을 사용하는 이 회사는 노조 설립을 이유로 2명의 헝가리 노동자를 해고했고 비자 없이 입국한 한국인 30여명을 편법으로 취업시켜 망신을 자초했다. 이런 후진국형 노조 탄압은 “유럽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먼저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한국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 대전일보 11월11일자 6면
<2580> 방송 후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시민대책위가 발족했고, 정치권도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작년 11월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이 역학조사를 할 때는 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조사 일주일 전부터 한국타이어는 대대적인 청소를 했다. 직원들에 따르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먼지를 말끔히 닦아냈고 환기 잘 되게 덮개 비닐을 제거했고 솔벤트통도 교체했다는 것. 노동부가 한국타이어에게 조사에 대비할 시간을 준 것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조사 과정도 석연찮았다. 솔벤트를 많이 쓰는 데에서 고무 분진을 측정하고 분진이 많은 곳에서 솔벤트를 측정했다. 시료 채집도 산업안전공단 대신 사측에서 했다. 살아 있는 환자들은 아예 면담도 안 했다. 조사 결과는 “작업장 유해 요인을 찾을 수 없었으며, 화학 물질은 관련 없다”는 것. 인터뷰에 마지못해 응한 대전지방노동청장은 사측을 두둔하는 인상이 역력했다.  

<2580>팀은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심장질환 사망률이 일반 국민의 5.6배나 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되물었다. 취재는 여기까지였다. 뒤늦게 한국타이어 문제를 다룬 국정감사는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가 보여준 태도로 볼 때 작년 취재 이후 작업장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됐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1년, 노동자가 또 죽었다. 다시 말해, 이대로 두면 노동자들이 또 죽어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사인 금호타이어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는 없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조금만 투자해도 온갖 의혹과 불신을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동안 유족들의 항의와 오열은 잊혀져 가고 있다.

선진 사회의 언론은 사회의 지도층에게 더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의 지적처럼 이 나라 언론은 한국타이어의 집단 돌연사보다는 대통령 아들이 이 회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더 중요한가보다. 대통령 친인척이라 해서 더 날카롭게 보도해야 한다고 굳이 주장하지 않겠다. 반대로, 대통령 친인척이라 해서 쉬쉬 덮고 넘어가도 안 될 것이다.

한국타이어는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한 덕분에 이윤을 좀 더 남겼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 회사 부사장 조현범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다. 그가 장모에게 선물했다는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이 노동자들의 원혼과 오버랩 되면서 눈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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