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 후진성과 21세기형 TV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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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32)]

▲ 고승우 박사
미국 대선이 끝났다. 버락 오바마의 승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충격적인 ‘흑색 혁명’이었다. 그러면 미국 언론은 선거 기간 동안 어떤 모습을 보였나? 지금까지 미국 TV 등이 대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부당하게 지지해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은 제기되지 않고 있다.

오바마는 대선 유세기간 동안 24시간 뉴스 전문 TV 매체인 CNN을 시청하지 않고 스포츠 채널을 보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아직 그의 설명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뉴스의 속성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뉴스는 언론에 의해 가공된 것으로 정치 그 자체는 아니다. 언론이 제 4부라는 말이 있듯이 언론은 제 시각에 따라 정치 등 객관적 세계를 바라보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골라 대중에게 전달한다.

청와대 한나라당, 방송사에 ‘코드인사’ 앉혀야 한다는 의식 팽배

현실을 보는 시각은 언론과 정치, 경제, 사회 등 제 분야가 동일하지 않다. 이런 차이 때문에 모든 뉴스에 대해 정치 등 뉴스 대상들은 불평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보도 또는 논평에 대해 ‘대 만족이다’라고 말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는 것도 뉴스의 특성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오바마가 대선 정치 관련 뉴스를 보지 않은 것은 정치와 언론은 그 영역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 정치와 언론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파악할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언론은 대소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표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논평을 통해서 지지 여부를 밝힐 뿐 사실 관계에 대한 보도는 철저히 언론의 일반적 보도원칙을 준수한다. 우리나라의 일부 매체가 사실관계 보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언론은 공급자가 아닌 언론 소비자가 최종 판단을 하도록 한다는 원칙만은 굳게 지켜야 한다.

언론을 정확히 이해하는 정치나 경제, 사회 전문가들은 언론을 탓하지 않는다. 보도는 매체의 속성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중들은 자신들의 방식에 의해 정보를 취득하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사실을 파악한다면 언론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돌리는 등의 어리석은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언론이 두드러지게 잘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언론을 무기로 휘두르는 경우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 YTN노조는 구본홍 사장이 '날치기 주총'을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된 7월 18일부터 출근저지투쟁에 돌입했다. ⓒPD저널
오늘날 미디어의 특성을 다매체 다채널 시대라고 한다. 특히 정보 강국인 우리의 경우 첨단적인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방송장악이라는 무척 후진적인 시도가 갖가지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방송을 장악해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시민사회의 광우병 우려가 더 이상 발생치 않고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사라질 것이라는 미신이 정치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방송사에 코드 인사를 앉혀야 여권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논리가 청와대, 한나라당 쪽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집권층이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거나 그것을 남에게 전가하기 위해 지금 ‘TV, 인터넷 탓이야’ 하는 정치적 쇼를 하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허망한 쇼가 비싼 세금으로 움직이는 청와대, 검찰, 경찰, 국회의원들이 주역이 되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대중적인 미디어 교육이 부재했던 탓도 크다. 우리나라도 미국 등 서구처럼 TV 등 미디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 비판하는 교육, 즉 미디어 리터러시가 일찍부터 실시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후진적인 정치적 쇼가 벌어질 수 없을 것이다. 미디어를 정확히 파악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군사정부가 기피했던 전통이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악취를 내품고 있다. 미디어와 사회와의 관계, 즉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보편화되어야 잘못된 미신을 근절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론과 정치가 지난 수십년 동안 어떤 관계였는가를 살피면 방송장악 시도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87년 6월 항쟁이 발생한 것은 방송이 민주시민을 부추겼기 때문인가? 97년 헌정 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방송사 등 언론매체라는 변수에 의해 이뤄졌나?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인 것인 언론 탓인가?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참여율이 매우 저조한 것도 방송이나 신문 탓은 아니다. 언론이 선거 참여를 독려해도 시민들이 외면하고 있다. 이는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심각한 문제제기, 또는 거부 반응이라 하겠다. 정치가 바꾸지 않으면 기존 정치에 등을 돌린 시민사회의 정치혐오 현상을 개선하기 어렵다. 정치가 제대로 되면 언론이 뭐라 해도 민심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참여정부의 청와대가 짝뚱 언론을 직접 가동했지만 민심을 얻지 못한 것 아닌가? 

다수 시민들, 다양한 매체 통해 정보 습득 … ‘방송장악’ 무의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지 수 개월이 지났고 그 동안 광우병 쇠고기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촛불과 MBC <PD수첩>에 대한 공권력 맹공이 행해졌지만 미국산 쇠고기 시중 판매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정부가 아무리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미국산 쇠고기가 좋다고 홍보를 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안심해도 좋습니다’고 말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다수의 시민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미국 현지의 쇠고기 생산과정에서 광우병 발병 예방 조치가 미흡하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의 주요 정보 취득은 신문이나 방송이 아닌 인터넷에서 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특정 신문, 방송이 전달하는 정보는 그들에게 참고사항일 뿐이라 한다.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방송을 장악하려고 낙하산 인사를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언론 현업에서 강력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보 강국인 이 나라에서 언론을 정권의 나팔수쯤으로 격하시키려는 행위를 수수방관할 언론인이 어디 있겠는가? 언론이 제 4부로써 언론답지 않으면 언론이라는 상품이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언론인 스스로 제 영역을 정치적 오염으로부터 수호하려는 행위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기방어 행위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TV 리터러시 쪽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 사회 최첨단 미디어가 인터넷 등 다양하지만 이들 신종 미디어가 진화하는 과정을 보면 주로 TV와의 결합을 통해 이뤄진다. TV의 기능이 생략되는 뉴미디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TV 리터러시에 대한 방송 현업의 인식 재고도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TV 등 미디어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의 한류가 동남아, 중동, 남미까지 그 영역을 넓히는 것처럼 다매체 시대는 세계화와 어깨 동무를 한 모습으로 전진하고 있다. 지역, 민족간 문화적 차이나 특수성의 경계선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새로운 현상은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개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 생산물이 국경을 넘나드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그에 따른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개념 또한 국경을 넘어 지구촌 전체를 품에 안는 쪽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한류가 수년전 돌출한 것은 TV 등이 포함된 우리의 미디어 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그런 발판을 토대로 미디어의 자율적 노력에 의한 미래 발전 전략의 추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 술수가 기생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방치되는 상황에서 이 나라 언론이 세계화의 시대에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방송 장악이라는 극히 후진적인 현상이 집권층에 의해 벌어지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방송 장악이라는 시도부터 후진적인 것이며 방송 장악으로 미디어 본연의 기능이 훼손될 경우 세계 속의 미디어로 발돋음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선진적 개념에 의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눈높이 수정이 필요하다.

TV 방송 현업의 노동자들은 TV 등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객관화시켜 이해하고 비판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의 생산물을 객관화 시켜 보는 것이다. 문화 산업이 세계를 무대로 전개된다는 현실과 더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시해서 TV의 사회적 역할을 좀더 광범위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파악해야 한다. 그런 작업은 21세기에 걸맞는 문화와 미디어에 대한 이해의 눈높이를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다. 지금은 우리 TV 등 각종 미디어가 21세기의 첨단 문화 미디어 생산과 공급을 목표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공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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