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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닷컴] 김현민 JTV 전주방송PD

▲ 김현민 JTV 전주방송PD
이런 시가 있다. 제목은 ‘바람 부는 날이면’ (황인숙 저)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 벌판을 뒤흔드는 /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 가슴 위까지 치솟아오르네 / 스커트 자락의 상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안도현 시인은 이 작품에 대해 ‘시를 앞에 놓고 심각한 척 무게 잡는 법이 없고’ ‘오히려 무게 잡는 일이 우습다는 듯 야유와 조소를 보낸다’고 했다. 이 시를 본 남자 동료PD들 왈,  ‘음...음...이건 남자들이 알긴 좀 어렵긴 하지’

그럼 그렇지.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날, 종아리 굵기 망각하고 치맛자락 날리며 독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여심(女心)을 어찌 바지가 알리요. 만약 남자가 벌판을 뒤흔드는 거센 바람 앞에 서있다면 ‘팔뚝을 치켜들고 바람에 저항하는 투사’가 되거나 ‘바람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모른 척 달관한 도인의 포즈를 취하거나’ 할 거라고 남자 안도현도 이실직고했다.  스커트 자락의 상쾌를 느낄 수 없는 바지를 가련해하면서.

이 시가 참 좋다. 당당하고 솔직한 것이 꽉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것 같다. 속 시원한 날보다 답답한 날이 더 많아 그런가보다.  2008년 가을 대한민국, 지역방송이라는 홑겹 스커트에도 삭풍이 몰아친다. 최근 지역 광고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 민영미디어랩 도입 이후 지역의 생존 대안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어떤 언론학자도 지역방송의 향후에 대해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민이 스스로 중지를 모아보자고 모였으니 의미가 깊은 자리였다.  그런데 막상 모임을 진행해보니 방송사 관계자든 광고회사든 교수든 할 것 없이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한숨만 내쉬다가 모임을 마쳤다. 누가 대안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지역 언론 문제만큼 골치 아프고 답도 없고 학자들이 기피하는 주제가 있을까. 이게 뭐 하루 이틀 일인가? 그런데 설상가상, 현 정부의 대언론 정책은 간단명료하기가 그지없다.  참으로 대단한 능력이시다.  

대한민국 지역방송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철학의 부재에서 온다는데 나는 공감한다. 서울에 거의 모든 유무형의 인프라가 집중되는 것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긴 나라.  뉘앙스 묘한 ‘지방’ 사람들은 말(馬)도 아닌 사람이니까 서울로 서울로 앞다투어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TV를 켰고, 강호동과 유재석이 그나마 위안을 줬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예인 안 나오는 지역방송을 보기엔 지방 사람들도 너무나 ‘세련’ 되어졌다. 지역 대학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사 홈페이지에 문 닫으라며 도배를 한다. 삭풍이 분다. 지역방송은 과연 무엇인가?

아, 스커트 자락의 상쾌여.  그래, 나 치마 입었다. 어쩔래? 들이대며 벌판 언덕에 올라가고 싶다. 날려버릴 듯 거대한 삭풍 앞에 서서 거추장스러웠던 바지는 벗어 날려버리고 싶다. 우리는 솜 덧댄 누비바지가 아니라 얇디 얇은 홑겹치마를 입었으니 보란 듯 맨살 시리게 내놓고 싶다.  서울 따라기 그만하고 싶다. 더욱더 촌스럽게, 촌스럽게, 촌티 나는 방송, 그래서 지역민에게 이쁨 받는 빨간 내 살 같은 옷을 입고 싶다. 무게 잡는 바지들에게 야유와 조소를 보내려면 나 자신부터 가벼워져야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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