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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5)] 기로에 선 지역방송 어떻게 할 것인가

책꽂이 한 편에 지난 20여 년 동안 먼지 뒤집어쓴 채 색만 바래가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살면서 누구라도 한두 번쯤은 그러하듯이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빌미로 사들였다가 서문 몇 장 정도만 읽고는 난독증에 빠져 던져 놓는 미지의 컬렉션 중 하나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정말 무슨 내용인지는 모른다. 요즘 같은 “시장”의 시대에 딱히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없다. 단 제목이 주는 강렬한 선동적 선정성(?)으로 인해 삶이 팍팍해질 때 마다 제목만 빌려다 쓰고 마는 1901년산 유물인 것이다.

▲ 지역방송의 전국 방송 창구인 MBC수퍼스테이션 MBC NET.

기로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비단 지역, 혹은 지역방송만이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2008년 한국사회 전체가 선택의 기로에서 서로에게 가는 길을 묻고 있다. 선택의 상황에서 인간은 갈등한다. 그러나 그 갈등은 선택의 대상이 가지는 가치가 동등하거나 적어도 비슷할 경우에 해당된다. 현재의 상황은 갈등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모’아니면 ‘도’인 상황이다. 해서 어떻게 할까라는 선택의 답은 이미 자명하다. 대신해서 본 기고의 제목을 “기로에 선 지역방송, 무엇을 할 것인가?”로 슬쩍 바꿔본다. 블라디미르선생을 다시 불러내 보는 것이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이 시대에 지역방송은 무엇을 할 것인가?
간단하다. ‘콘텐츠’를 하면 된다. 방송과 통신을 한데 어울러 제 3의 산업적 시너지를 창출하는 핵융합의 원료인 ‘콘텐츠’를 ‘잘’하면 되는 것이다. 참 말은 쉽다.

오늘 이 시간, 한국문화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지역문화는 이미 박제가 되어 있고, 지역이라는 공간은 박물관이 되어 있다. 지역을 떠나고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 곧 성공을 위한 선제조치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은 곧 소외와 좌절의 공간이고 우리 내부의 거대한 식민지인 것이다. 그러나 일국의 경쟁력은 지역이 결정한다.

지역은 그 자체로 국가경쟁력의 잠재적 원천으로서의 주체와 내용을 안팎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존중받는 지역들이 제대로 모여야 잘 선택된 국가를 이룰 수 있다. 적선하듯 또는 기만하듯 던져주는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선언이나 구호는 더 이상 약발이 없다. 지금쯤에서야 비로소 수도 서울과 대등한 주체로서의 지역에 대한 가치평가와 그 존중의 구체적 실천을 현현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는 느낌이다. 지역은 또한 자존(自尊)해야 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높여야 한다.

제 각각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인정한다. 다만 이 땅의 5천여 지역방송인들은 그 자존적 실천의 단초를 바로 ‘지역방송’, ‘지역방송의 콘텐츠’에서 찾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역방송인들은 “지역은 전국으로 소통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사회적 담론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내부의 힘을 모아가고 있다. 지역이 더 이상 희화나 열등의 소재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중심이 되서 전국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바라보는 제대로 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국제사회의 선언적 의제를 헛된 구호로 끝나지 않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시도이며 이 과정이 결국 국가균형발전과 지방자치제도의 성숙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지역방송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확신하고 있다. 수도 서울의 하늘아래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코앞이다.

▲ 이동민 지역MBC정책연합 콘텐츠팀장

지역방송 역시 디지털 전환을 위해 수조 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지역방송, 과연 수조 원을 쓰고도 네트워크 기능에만 한정된 디지털중계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유형, 무형의 지역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유통시키는 디지털콘텐츠기지가 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답은 자명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 역시 너무나 쉬워서 싱겁기까지 하다. 가히 성스러운 단순(Sancta Simplicita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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