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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지용 / 프랑스 통신원

한국 시청자들이 몰래 카메라에 익숙해진 것은 아마도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일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훔쳐보는 재미를 적당하게 자극하면서 인기를 끌던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쇼 라는 장르의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적당하게 훔쳐보는 것에는 성이 차지 않는 시청자에게 더 이상의 주목을 끌지 못하게 됐다.

몰래 카메라는 프랑스 방송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반적으로 고발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취재 대상에 대한 정상적인 섭외나 접근이 불가능할 경우 사용되는데 일반인 촬영 대상에 대한 모자이크는 필수다. 반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사건의 주인공이나 흉악범에 대해서는 몰래 카메라이건 일반적인 촬영 영상이건 가차 없이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점이다.

프랑스 공영방송 F2의 <잠입자들>

이달부터 방송된 프랑스 공영방송 F2의 새로운 프로그램 〈잠입자들(Les infiltres)〉은 F2의 가을 개편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F2의 8시 메인 뉴스 앵커인 다비드 퓨자다스(David Pujadas)가 진행을 맡고, 프랑스 사회의 숨겨진 문제들을 짚어 본다는 이 프로그램은 방송 초기부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잠입자들의 취재는 기자나 PD가 철저하게 신분을 속이고 다른 신분으로 취재 대상 기관이나 단체에 잠입해 일을 하면서 몰래 카메라로 촬영을 한다. 영국과 독일에서 기자가 신분을 위장하고 취재를 한 잠입 르포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잠입자들 〉과 같은 프로그램이 정규편성 된 경우는 프랑스에서는 처음이다.

지난 달 22일 방송된 〈잠입자들〉 양로원 편에서는 여기자가 한 양로원에 간호업무 보조원으로 위장 취업해서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인들의 충격적인 일상을 몰래 카메라로 촬영해 방송했다. 촬영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었고 문제가 된 양로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밝히지 않았다. 잠입자들 양로원 편이 방송된 후 노인복지부 장관이 문제가 된 양로원의 조사를 위해 양로원 이름과 주소를 알려줄 것을 제작진에게 요구 했지만 제작진이 우리는 경찰보조원이 아니라며 거절하자 자체적인 조사를 통해 문제의 양로원을 찾아내 조만간 폐쇄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이 프랑스 사회에서 커다란 논쟁을 일으킨 이유는 노인들에 대한 양로원 측의 무성의한 대우와 방치의 현장 그리고 그와 같은 현실 속에서도 추하게 죽음을 맞지 않겠다는 한 할머니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만들어낸 이유도 있지만, 더불어 과연 잠입취재를 위한 몰래 카메라의 사용이 어느 선까지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 파리=이지용 통신원/ KBNe 프랑스 책임프로듀서
〈잠입자들〉과 같은 르포 프로그램은 예외적인 상황과 문제들을 아주 예외적인 취재 방법으로 제작되는 만큼 자칫 선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과 문제의 현장이 분명 존재하는데 정상적인 취재 방법으로 문제제기가 힘든 경우 취재자의 신분위장이나 몰래카메라의 사용은 정당화될 수 있고,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TV의 특성상 이와 같은 취재 방식은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 초대된 〈잠입자들〉의 진행자 다비드 퓨자다스는 불법고용, 사이비종교, 불법체류자 등 프랑스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취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고 프랑스에서 최대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연예전문 주간지 〈클로저(Closer)〉에 〈잠입자들〉의 취재진이 기자로 취업해 연예전문 언론들의 제작 메커니즘에 대한 고발 취재가 진행중이냐는 질문에 연예전문 언론에 대한 취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취재자의 보호를 위해 대상 언론사는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때문에 연예전문 신문, 잡지사들이 가짜 기자 또는 위장 취업 기자 색출에 나서는 등 현재 프랑스는 〈잠입자들〉의 몰래카메라 공포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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