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은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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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은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
[e-야기] 고재열 시사IN 기자
  • 고재열 시사IN 기자
  • 승인 2008.11.26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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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열 시사IN 기자
11월24일, 언론노조 20주년 기념식장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다 해직된 YTN 조승호 기자와 현덕수 기자와 마주쳤다. 그들은 언론노조에서 수여하는 ‘민주언론상 본상’을 수상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둘의 얼굴이 어두웠다. 조승호 기자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그러나 그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에게 일어날 일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낙하산 사장의 수족이 된 편집국 간부들에게 항의하다 회사 직원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고 들려나오던 그는 “내 발로 걸어나가겠다”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는 그 길로 잠적했다.

‘YTN의 뚝심’으로 불리던 그를 동료들은 믿었다. 며칠 뒤 그는 자신을 믿는 동료들 곁으로  돌아왔다. 뭔가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차’, 말이 헛나왔다. 입이 방정이었다. 묻지 않아도 될 것을 물었는데 고지식한 조 선배는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을 대답했다. “등산도 가고 … 도서관에도 가고….”

‘시사저널 파업’ 때가 떠올랐다. 파업 기자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편집권 독립 투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투쟁 없이 형식적인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될 무렵, 혼자 ‘IMF놀이’를 즐겼다. 산에도 가고 공원에도 가고, 술 사줄만한 선배에게 전화해서 신나게 찾아가고…. 그때 최대의 적은 봄햇살이었다. 화창한 봄햇살을 받으며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 ⓒPD저널
파업은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유인물을 나눠주다 거부하는 행인의 손짓에서 ‘됐거든, 알고 싶지 않거든’이라고 말하는 속마음이 읽히면 자존심은 한없이 무너진다. ‘시사저널 파업’ 때 잘한 일 중 하나는 ‘파업 조끼’를 입지 않은 것이었다. ‘파업 조끼’를 입으면 편집권 독립을 위한 우리의 싸움이 단순한 노사문제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파업 조끼’를 입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파업 조끼’를 입고 안입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의 파업에 무심했으니까.

‘지금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라고 YTN 노조원들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참 어중간한  말이고, 무책임한 말이다. 이 시기를 버틴다고 뚜렷이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말하게 된다. 끝이 보이면 오히려 쉽다. 끝까지 역산해서 버티면 된다. 문제는 끝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이 터널의 초입인지 중간인지 끝자락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시사저널 파업’ 때 우리가 거쳤던 파업 집단심리 곡선을 토대로 분석해보면 YTN 노조원들은 지금 ‘울화기’를 지나서 ‘잠적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징계를 당하고 인사 조치를 당하고 소송을 당해 집에 내용증명 우편물이 쌓이면 울화가 치민다. 그러면 회사 간부나 직원들과 뒤엉켜 드잡이를 하게 되고, 흉한 꼴을 당하게 된다. 멱살을 잡히고 ‘죽고 싶냐’는 말을 들어본 것이 다섯 번이었다. 다섯 번째 멱살을 잡은 용역직원에게 나지막이 ‘죽여라’라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멱살을 풀었다.

‘울화’를 다스리기 위해 하나 둘씩 잠적하기 시작한다. 혼자서 삭히는 것이다. 정신과를 찾아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산이나 공원에서 ‘IMF 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 존재의 무의미함을 참기 어려워, 없는 돈에 서점에서 상식책을 사들고 집에 갔다. 그리고 문제만 맞추면 2천만원을 준다는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보기 좋게 ‘퀴즈 영웅’이 되어 어렵게 우리의 파업을 알릴 수 있었다. 드물게 쳐 본 내 인생의 굿바이 홈런이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24일 오후 6시부터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언론노조가 언론민주화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민주언론상 본상은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YTN 노조가 수상했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YTN을 응원하는 언론계 선배들은 그들이 ‘울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각종 상을 몰아주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정동익)는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주었고 언론노조는 ‘민주언론상’을 주었다. 우리들도 받았던 동업자들의 ‘위로주’였다. 이변이 없다면 YTN 노조는 ‘한국기자상 특별상’도 받을 것이다. 상이 YTN 기자들의 배를 불려줄 수는 없겠지만 투쟁에 지친 몸을 녹일 뜨끈한 화톳불을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승호 선배를 위해서 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벌였다. ‘YTN 해직기자 조승호 후원회(문의 gosisain@gmail.com)’를 조직한 것이다. 물론 해직기자 중에 조승호 기자만 따로 돕는 것은 아니다. 조 기자를 돕기 위해 해직기자와 정직기자와 다른 징계 기자를 함께 돕는 것이다. 과 선배인 그를 위해 과 동문들에게 전화와 이메일로 사발통문을 돌렸다. 과 출신 기자들이, PD들이, 언론학 교수들이 속속 참여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파업 한파’에 시달리게 될 조승호 선배의 겨울을 따뜻이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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