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논리에 매몰된 드라마, 투자나 지원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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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강현 KBS 드라마1팀 PD

지난 월요일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는 방송사 출입 기자단과 드라마PD협회 간에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드라마PD협회 간사들은 한 목소리로 최근의 드라마 제작 환경을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폭등한 연기자 출연료의 감축을 통한 제작비의 절감과 함께 외주 제작 의무 비율 적용과 같은 드라마 외주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참석한 한 기자분의 질문: (아까) 예를 든 회당 수천만 원씩 하는 연기자의 경우 전작이 잘 되지 않았다면 다음 작품은 출연료를 내려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드라마 PD: …….
다른 분의 질문: 과연 외주 정책이 변한다고 지상파 드라마 PD들의 경쟁력이 살아날까요?
드라마 PD: ...!!
또 다른 질문: 예전부터 문제가 있었을 텐데 광고 시장이 어려워지고 경제 위기가 생기니까 이제야 문제 제기 하는 거 아닌가요?
드라마 PD: …….

▲ KBS <못된사랑>

방송 산업이 위기라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드라마가 제일 심각하다고 한다. 지금 제작 일선에 있는 드라마 PD들의 상황은 이렇다. 채낚기 배에 몸을 싣고 바다 한가운데 나가 낚싯줄 하나를 붙잡고 외로운 작업들을 하던 차에, 어느 날 한류라는 대형 참치가 낚싯줄에 걸려 대박이 났다. 드라마라는 장르가 갑자기 블루오션을 맞아 화려한 각광을 받게 되자 사람들이 너도 나도 채낚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개중에는 돈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남의 돈을 끌어다가 썼고 낚싯대나 미끼 정도만 확보한 채 달려든 사람이 많았다. 고기를 잡기도 전에 해외에 수출할 계획부터 세우고 달려들었고, 당국은 산업인프라 부양이라는 미명 아래 아무에게나 조업 허가를 내주었다. 그러다 점차 고기가 잡히지 않게 되었고 이리저리 고기 떼를 쫓아 헤매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도처에 빙산이 널려있고 세찬 파도를 맞아 어선들이 침몰하는 레드오션이란 위기 상황을 맞은 격이다.

‘한류’ 블루 오션 뛰어들고보니 레드 오션

제작 현장에서 열심히 개별 프로그램에 몰두해 있는 PD나 제작자는 마치 눈앞의 낚싯줄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정작 자신이 탄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위기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거시적인 국면에 대처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책 당국자나 방송사 경영진 내지 전문가 집단에서 방송 환경과 드라마 제작 시장의 변화 추이를 잘 살펴보고 분석하여 위기를 맞기 전에 냉정하고도 합리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했던 것 아닐까?

근본적으로 현재 드라마의 위기는 우리나라 방송 산업의 구조적인 특성과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문화적 성격은 간과한 채 지나치게 산업적인 논리로 방송과 드라마를 접근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 시발점은 외주 의무 비율 강제 적용 등과 같은 외주 위주의 정책, 지상파에 대한 비대칭적 규제 등 제도적 역차별, 그리고 통신 산업 자본 등의 무차별적 접근 등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차라리 시장논리나 산업 논리로 접근한다면 경쟁력 없는 업체나 콘텐츠는 퇴출되거나 진입을 제한하여야 한다.

▲ MBC <태왕사신기>

그러나 극히 일부 스타급 연기자를 확보한 매니지먼트사는 눈먼 자본들을 통해 예기치 않은 성공을 거둔 ‘한류’라는 괴물을 꿈꾸며 불나방같이 모여든다. 자본이나 제작 능력 또는 노하우도 없이 기존에 기획되어 있는 기획안을 돈으로 사서 편성을 따내고 해외 수출을 노리거나 협찬이나 간접 광고로 수익 창출에나 골몰하다가 지자체의 예산들을 확보해 오픈 세트장 건립이란 땅장사 내지 건설공사를 통해 이익을 챙기고는 코스닥에 우회 상장하여 회사를 팔아치우고 이 분야를 훌쩍 떠나버린다. 드라마와 영상 산업에 대한 가치를 보고 장기적인 투자와 육성을 시도할만한 건전한 산업 자본도 부족하고 드라마 연관 분야 및 차세대 성장 발판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나 의지도 없다.

드라마가 가진 문화적 특수성이나 문화 할인율을 포함한 장르의 특성은 무시 한다고 해도 이제는 적절한 인프라 구축에 실패한 나머지 공멸이라는 레드오션에 내던져진 꼴이다. 물론 이러는 과정에서 지상파들의 오만함과 안일한 대처, 그리고 상업주의도 한몫 거들었다. 고액 연기자 출연료의 경우 이름난 한류스타라 해도 직전 작품에서 실패를 했다면 그에 준해서 출연료의 삭감이나 조정을 받아야 경제논리에 적합하다. 그러나 한번 올라간 출연료는 떨어질 줄을 모른다. 내린 적이 없다.

그러고도 여전히 몇몇 외주 제작사들은 빈약한 기획과 내용의 콘텐츠로 ‘연기자 장사’나 시도하려고 비슷한 돈을 주고 일본 등 해외 선판매를 노리고 이 방송사, 저 방송사를 기웃거린다. 방송사나 제작사의 수익은 상관없이 스타급 연기자들은 선 계약된 고액 출연료를 확보하면 그 뿐이다. 외국처럼 사전 제작을 통해 선투자를 하고 제작 권리나 판권을 확보할 생각은 않고, 사전 기획과 사전 제작의 리스크는 전혀 감수하려 하지 않은 채 방송사 편성을 등에 업고 드라마 장사하러 다니기에 정신이 없다.

공적기금 투자돼야

시장과 산업논리에 철저하다면 옥석을 가리도록 해야 하고 향후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단막극, 주간 시추에이션물, 특집극 등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투자 재원이 부족하다고? 방송발전기금은 방송발전에 얼마나 쓰이고 있는가? 한류 발전기금과 문화콘텐츠 기금 등 공익적 기금이나 또는 건전한 산업자본이 투명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드라마펀드나 제작사, 특정 드라마 프로젝트에 투자될 수 있는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적어도 공영성 지수에 드라마에 대한 투자항목, 단막극 편성 비율 등의 지표도 산입하여 차후 방송사의 재허가 심사 시 활용해야 한다. 아니면 공익적 목적의 단막극이나 특집극 등의 자체 제작 드라마만이라도 외주제작사에 허용하는 수준 정도의 협찬과 PPL 등을 허용해야 한다. 굳이 많은 비용과 예산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찾으려 한다면 부지기수다.

또한 산업논리를 적용하려면 철저히 건실하고 분명하게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는 곳에 수익이 돌아갈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방송, 특히나 드라마라고 하는 콘텐츠가 갖는 문화적 가치와 차별성을 감안한 적절한 보호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정책 당국자의 혜안과 방송관계자의 의지, 개선 노력 그리고 시청자를 포함한 사회 각계의 지원과 감시와 격려가 있어야만 드라마의 위기도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 이강현 KBS 드라마1팀 PD

현재 고액출연료 등 우리의 경제 여건과 산업기반 규모를 초과한 거품의 문제, 외주 의무 비율 강제를 포함한 외주 제작 시스템의 문제, 에이전시법 등을 통해 매니지먼트 사업과 제작 사업의 분리를 통해 거대 매니지먼트사에 의한 시장 왜곡 해소, 문화산업전문회사 모델  등을 통해 제작 재원 마련 및 제작비 집행과 결산의 투명성 확보를 통한 투자의 활성화, 스타 연기자뿐만 아니라 작가, 제작사, 스태프 등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인센티브 시스템 구축 등등이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갖고 풀어 나가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숙제들을 누가 해줄 수 있을까? 드라마 PD 모두가 낚싯줄을 팽개치고 조타실로 달려가야 하나? 드라마를 책임지고, 드라마를 사랑하며, 방송정책을 세우는 모두가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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