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디어 리터러시 외면과 미디어 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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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34)]

▲ 고승우 박사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단시간 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급상승한 것은 인터넷 등을 포함한 정보산업의 덕택이다. 민주주의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빛의 속도로 날아다니면서 국민을 민주주의로 의식화시키고 있다. 얼마전의 촛불집회는 인터넷이 진원지가 되어 폭발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신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사이버 정치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 가고 있다. 정부 행정도 인터넷 세대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제대로 집행되기 어렵다. 오늘날 정부는 사이버 모욕죄 등을 도입해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옥죄려 하데 이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행정이라 하겠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미디어 보도와 논평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보수냐 진보냐의 노선 차이에 따라 그 결과물이 판이해서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바람직스런 측면도 있다.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공론의 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정상적인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 목소리 큰 쪽이 항상 이기는 그런 풍토였다.

미디어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크게 권장되어야 하지만 근거없는 주장, 비난 공세 등은 그렇지 않다. 미디어의 속성이나 정보 가공 작업의 특수성 등에 대한 오해, 이해부족으로 불필요한 잡음이 이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 교육이 일반화된 상황이라면 입에도 올리지 못할 무지한 주장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후진적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미디어와 그 사회적 기능 등에 대한 정확한 인식,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를 거미줄처럼 얽어 매고 있는 미디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디어 활용과 보급률이 세계적인 수준이고 자라나는 세대들의 여가활동에서 미디어  의존도는 매우 높다. 지나칠 정도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성장하도록 기성세대들의 노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 교육은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일부 사회단체들이 미디어 교육과 관련된 모니터 활동 및 시민강좌를 실시하고 있어 미디어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국가적 또는 범사회적 차원으로는 확대되지 못했다. 즉 깊이 있는 학문적 논의나 미디어 교육의 실시를 위한 제도의 도입 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다.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 교육이 제대로 정착치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언론자유를 탄압한 독재정치가 길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60년대 초부터 수십년간 지속된 독재정권은 언론을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 언론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는 짓밟았다. 서구에서 TV 리터러시 등이 정립된 70~80년대에 우리 학계는 그것과 담을 쌓고 지냈다. 독재의 독기가 지독한 상황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발붙일 공간이 없었다. 독재정권은 서구에서 실시되는 미디어 교육의 한국 도입을 행정적으로 억제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의 진면목을 꿰뚫어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언론을 통제, 조작해서 통치하려는 독재정권은 미디어 리터러시의 국내 도입을 직간접적으로 저지했다.

▲ 한국언론재단 언론교육원 홈페이지
국내 언론학자들도 외국에 나가서 학위를 딸 때 독재정권이 기피하는 분야인 미디어 리터러시는 외면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전공한다는 것은 실업자가 되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5공화국 때까지 우리나라에 미디어 교육은 황무지였다. 87년 6월 항쟁이후 민주화가 추진되면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련 단행본 한 권 없는 상황이 오래 계속되었고, 학계에서도 이 분야에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교육 당국은 대입시를 우선하는 중고교 교과 과정에 미디어 교육을 집어넣으려 하지 않았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달성되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면서 정책적으로 미디어 교육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결과 한국 언론재단에서 미디어 교육관련 도서를 발간했고 일선 중고교에서 뜻있는 교사들이 미디어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미디어 교육은 중고 과정에서 신문과 방송을 제작하는 쪽에 기울어져 있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교육은 거의 실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미디어 교육이 별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일반인 대부분도 미디어 리터러시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한다. 많은 사람이 미디어가 전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활용할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즉 미디어 문맹(media illiteracy)이 심각하다. 미디어 문맹은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속뜻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지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 등을 강조하는 컨텐즈의 이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미디어 문맹의 피해는 여러 가지지만 그 가운데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을 예방하지 못해 피해를 입게 되는 현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TV 등 영상 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본다. 이번 연재를 통해 영상미디어의 역기능적인 측면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았다.

미디어 문맹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여러 가지로 행해진다. 그 가운데 하나가 TV 프로그램 등급제도다. 어린이, 청소년 등 아직 지적으로 미성숙한 연령층은 TV 등 영상매체의 부정적 영향을 방지할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도입된 TV 프로그램 등급제는 수년전부터 실시되지만 아직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TV 등급제는 부모의 무관심과 방송 행정기구, TV 방송사의 외면 등으로 유명무실하다. 교육 당국도 학생들을 상대로 체계적으로 교육하지 않는다.

어린이, 청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해야 이 사회의 미래가 보장된다. 미성년자의 무분별한 TV 시청은 전 사회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다. 방송사는 TV 프로그램 등급제에 따라 미성년자가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프로 방영 전에 ⑦, ⑫, ⑲ 등의 표시를 내보낸다. 숫자로 표시된 연령층 이하 어린이나 청소년은 시청을 하지 말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등급제는 개개 가정에서 보호자들이 신경을 써 어린이, 청소년이 지키도록 해야 한다. 이 제도의 성패 여부는 가정에 달렸다.

등급제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TV의 부적절한 영향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학계에서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학자들이 조직적으로 나서면 그 영향력이 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TV사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득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인지 알 수 없다. TV 리터러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영상물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민사회단체에 편중된 기현상은 벗어나야 한다.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학계에서 발벗고 나서야 한다.

그러면 미성년자의 부적절한 TV 시청에 따른 책임은 방송사에는 전혀 없는 것일까? 방송사가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데도 그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노력이나 사후 대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신경한 태도로 보인다.

TV의 존재 의의는 시청자에 대한 방송 서비스다. TV 수용자에 대한 서비스는 방송사에서 앞장서야 한다. TV 리터러시를 위해 방송 공급자가 최선의 대책을 내놓는다는 발상이 일반화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방송사는 언론계, 학계, 학부모와 일선 교사들로 구성된 관련 기구를 발족, 가동시킬 체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방송사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당위성도 TV 리터러시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 외국에서는 방송사가 오래전부터 청소년 보호 등을 위한 시청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도 정보 강국의 TV답게 TV 리터러시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방송사, 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등급제부터라도 제대로 시행되도록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정보강국이면서도 TV 리터러시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 한국 TV가 진정 멀티미디어 시대에 걸맞는 대외 경쟁력을 갖추려면 소비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서비스를 극대화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민주화가 크게 진전된 상황인데도 독재정권이래 불변인 TV 리터러시 황무지라는 정보 환경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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