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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PD의 터닝포인트] 교과서 개편 논란을 보며

▲ 이채훈 MBC PD
뜬금없는 ‘정통성’ 논란

10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교과서 논란’과 관련, “(일부 교과서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해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며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사 제쳐놓고 총공세에 나온 가운데 정두언 의원이 “금성출판사 역사 교과서는 북한 교과서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금성출판사 교과서 저자 김한종 교수 사이에 오간 말.

정두언 : (말을 끊으며) “(북한의) 지침 때문에 쓴 것인가, 아니면 본인 소신인가?”
김한종 : “어떤 부분인지(어떤 부분이 북한 책과 똑같은지) 말해 달라.”
정두언 :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북한 역사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김한종 : “......”
정두언 : “교과부의 수정 요구안에 대해서 응하지 않으면 교과서가 폐지될 수 있다.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있을 텐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
(김기협, “뉴라이트는 ‘교과서’를 불쏘시개로 아는가?” - 프레시안 2008. 10. 10에서 인용)

질의, 응답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 놓고 윽박지르는 모습이다. 마치 80년대 공안 검사가 간첩 심문하는 현장 같다. 지난 3월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의 이른바 ‘대안 교과서’가 나온 뒤 상공회의소, 국방부, 통일부, 서울시 교육감, 한나라당이 줄줄이 특정 검정 교과서의 개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섰다.

▲ 경향신문 11월28일자 8면.
“대한민국 민주화, 산업화가 성공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비판적, 부정적으로 써 놓고, 오히려 북한의 사회주의가 정통성 있는 것 같이 돼 있는 교과서가 있는데, 있을 수가 없는 사항이 현재 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고 바로 평가하겠다.”
(10월 8일 재향군인회 회장단, 임원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대통령)

이 말에서 보듯, 교과서 개편을 요구하며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다. 특정 검정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함으로써 자라는 세대에게 그릇된 국가관을 주입할 우려가 있고, 따라서 해당 내용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중 25군데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다. 뉴라이트, 상공회의소 등 민간단체와 각 정부 부처에서 들어온 교과서 수정 요구는 모두 253건이고, 이 중 실질적인 검토사항은 100여건이다.

이 내용에 대해 일일이 시비를 따지는 것은 학자들의 일이므로 언급을 자제하겠다. 이 많은 대목을 지적한 이유는 구체적인 ‘사실’(fact)이 아니라 역사 기술의 ‘관점’을 고치라는 것이다. 특히 해방 정국, 그 뒤 이어진 남쪽의 독재체제에 대한 서술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좀 더 잘 설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수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국 역사교사 모임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이 요구하는 개편 방향은 △북한 체제에 대한 적대감 고취 △사회주의 세력의 독립운동 폄하 및 해방공간에서 민중의 저항 축소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 강조 △독재자의 과오 은폐, 이상 네 가지로 요약된다. 더 상세한 논의는 생략하고, 핵심 단어인 ‘정통성’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려 한다.

정통성의 고전적 개념

▲ 한겨레 11월29일자 사설.
국가의 정통성(legitimacy)은 소박하게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막스 베버 이래 많은 정치학자, 사회학자들이 이 정의에 대체로 동의했다.

정통성은 국가 권력에겐 통치의 명분과 기반이 되며, 국민에겐 그 정당성에 대한 신뢰의 바탕이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국민으로 구성된 것이고 국민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인 만큼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없이는 국가 권위를 유지하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러한 국가 권력의 정통성에는 정권 획득의 합법성과 윤리성, 국제 사회의 인정 등이 포함되며, 넓게 보면 경제력과 민주주의의 수준, 평등과 평화와 상생을 위한 국민 의식 수준도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북측에 정통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94년 이후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었고 아직도 기아 위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북측 정권은 정통성을 잃었다. 이러한 재앙이 “미국의 악랄한 경제 제재 때문”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북측 정권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정통성 얘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뜬금없고 불필요한 일이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어느 대목이 “북측 정권에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말인가? 

정통성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우리 나라에서 유독 ‘정통성’이 논란이 되는 것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해 온 게 반세기를 넘었다. 세계도 동서로 양분되어 한쪽을 편들었다. 이제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졌고, 남북 대결 또한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우리만 옳다고 주장하며 제3자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이제 “나 옳고 너 틀렸다”는 식의 흑백 논리를 극복하고, 국제사회 그 누가 보아도 수긍할 수 있는 통일 한국의 새로운 정통성을 만들 때다.

▲ 한겨레 11월28일자 1면.
중요한 것은, 정통성은 고정불변의 가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 필연적으로 함께 변화하는 ‘생물’이다. 결론을 요약하면, 해방 직후에는 상대적으로 북쪽에 정통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통성이 거의 완전히 남쪽으로 넘어왔으며, 이 정통성을 만든 주체는 다름 아닌 남쪽의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6~70년대 피땀 흘려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으로 민주주의를 확장시켜 온 남쪽의 국민들이 역사의 주인이다. 지금은 남과 북 어느 쪽에 정통성이 있는지 따질 때가 아니다. 남측 국민들이 오랜 노력으로 이룬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통일 한국’의 새로운 정통성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나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연출하고 북측의 역사에 대한 새 다큐를 구상하면서 ‘정통성’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전문 학자들이 보면 매우 어설프겠지만 널리 양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그 동안 생각한 바를 요약하려고 한다.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시면 언제든 배워서 고칠 준비가 돼 있다. 정통성이 변화하는 ‘생물’이라는 전제 아래 시대 순으로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분단 시대의 정통성, 그 변화

1. 1945~1950, 북측에 상대적으로 정통성이 있던 시기 (미군정~이승만)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말은 굳이 부인할 이유가 없지만, 항일 무장투쟁의 경험이 있는 북측 정권을 무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짜 김일성론’이라는 거짓말에 의존해서 북측 정권을 폄훼, 남측의 자신감 부족을 드러낸 것일 뿐이었다.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것은 사실과 다른, 남측의 주장일 뿐이다. 정확히 따지면 ‘UN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의 유일한 합법정부’일 뿐이었다.

남북 정권의 수립과정과 주민들의 태도, 국제 사회의 시각 등을 종합하면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발발 직전까지는 상대적으로 북측에 정통성이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반쪽짜리 정권인 것은 남북이 똑같았다. 남측이 먼저 총선을 치르고 정부를 수립했지만 먼저 정부를 세운 것은 정통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규정은 남측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현실과 거리가 있다. 통일 한국의 헌법 조항이라면 말이 되겠지만.

북측도 마찬가지였다. 남측 인민대표자를 소집하여 한반도 전체에서 선거를 치른 것인 양 모양새를 갖추려 했지만 반쪽 정권을 면할 수 없었다. ‘국토완정론’을 내세우며 한반도 전체가 자기 영토라고 했지만 이 또한 일방적인 주장이었다. 국제 사회도 동서 양 진영으로 갈라져 여론이 양분되어 있었다.

북측의 수상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지도한 것은 사실이었다. 남측의 대통령 이승만은 외교적인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미국에서 개인 비리로 이미 지탄받은 인사였다. 북은 토지 개혁, 평등 입법, 친일 청산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이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에 남쪽은 폭력과 테러, 유혈극의 연속이었다. 김구, 여운형 등 존경할 만한 지도자들이 권력에서 철저히 배제됐고 급기야 암살당했다.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채 해산됐다.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제주 4.3, 여순사건 같은 비극이 끊이지 않았고, 전쟁 발발 초기에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민주주의는커녕, 주민을 적대시하고 인명을 경시하는 생지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북측은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반면 남측은 국민을 거의 적대시했다는 점에서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이 점은 북을 ‘소련의 꼭두각시’라고 폄하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남쪽도 결코 북측 못지 않은 ‘미국의 꼭두각시’였으니까. 최근 북측이 기아 사태로 정통성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남측은 자기 국민을 너무 많이 죽였으므로 정통성이 모자랐다.

2. 1950~1960, 북측에 심각한 문제점이 싹텄지만 아직 정통성 유지했던 시기 (이승만)

김일성은 국제정세를 오판한 채 남침을 감행했고, 이 시점부터 정통성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의 원인과 성격과 책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첨예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생략한다. 한 가지,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든, 어느 쪽이 승리를 주장하든, 엄청난 참화를 불러 온 남침 자체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북측은 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소련, 동구권의 원조로 전후 복구에 성공했다. 북측 주민들은 단결된 힘으로 폐허에서 다시 일어났다. 국제적으로 북측은 중소 등거리 외교로 실익을 추구하는 한편 제3세계 동맹외교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기간 중 김일성 일인 숭배와 가혹한 정적 숙청이 이뤄졌다. 1956년의 5.25 교시는 김일성에게 절대 권력을 준 조치로, 그 뒤 이어진 우상화의 출발점이었다.

북의 경제는 순조롭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인 숭배가 심해지면서 경제가 정체될 조짐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뒤 오랜 세월 우상화와 경제 침체는 악순환을 겪었다. 경제가 어려우면 우상화가 심해졌고, 우상화가 심해지면 경제가 더 침체됐다. 배고픔을 신앙으로 이겨내려 했지만 신앙에 매달릴수록 경제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 악순환은 이미 50년대에 싹튼 것이었다.

이 기간, 남쪽은 이승만의 독재와 부패에 저항 한번 못하는 ‘무덤 같은’ 사회였다. 집권층의 부패와 정적 숙청이 계속 횡행했다. 국제사회에서 남쪽은 미국에 예속된 세계 최빈 국가였다.

3. 1960~1987, 남과 북이 여러 방면에서 정통성을 겨루던 시기 (박정희, 전두환)

남쪽은 4.19 혁명으로 정통성 회복의 첫 발을 내딛었지만, 5.16 쿠데타로 다시 후퇴했다. 박정희 정권은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기준으로 보면 정통성과 거리가 멀었지만 집권 이후 경제 성장에 주력, 70년대 북의 경제력을 추월함으로써 정통성 회복의 물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 토대 위에 민주주의를 세워 정치적 정통성을 더했다면 1980년에는 남쪽이 정통성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 학살과 전두환 군부독재의 등장으로 남쪽은 박정희 시대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북측은 1972년 김일성이 주석으로 승격되고 김정일이 권력 중심에 들어왔다. 1980년에는 부자 세습의 기반을 마련했다. 20세기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왕조’가 성립된 것이다. 경제 규모와 1인 소득은 남측에 추월당했지만 아직 주민들이 헐벗고 굶주리지는 않았다. 남측 주민들이 극심한 빈부격차와 철권통치에 시달렸다면 북측 주민들은 ‘봉건적 사회주의’ 체제에서 서구 사회와 격리된 채 나름대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남과 북의 어느 한 쪽이 정통성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과도기요, 혼전의 시기였다. 

북측은 아직도 경제력이 남측보다 우위에 있던 1960년대, 다시 무력 도발을 꿈꾸었다. 1968년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은 그 절정이었다. 미국이 월남전의 수렁에 빠진 틈을 타서 제2전선을 형성하려 했던 것. 그러나 여의치 않자 남북 대화를 시도한다. 본격적인 남북 체제 경쟁이 시작된 것. 이후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이 체제 경쟁의 저울은 남측으로 기울게 된다. 양측 모두 극단적인 독재체제였지만 경제력에서는 남측이 북측을 압도하여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4. 1987~2007, 남측이 정통성을 갖고 통일을 주도하는 시기 (6월항쟁~현재)

▲ 경향신문 11월29일자 27면.
남쪽이 정통성을 확고히 한 사건은 87년 6월 항쟁이었다. 경제력은 이미 북을 훨씬 앞섰고, 여기에 시민 민주주의가 꽃핀 것이다. 물론 후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병폐가 수두룩하게 남아 있고 시민사회에 ‘상식’과 ‘톨레랑스’가 부족하여 전체적으로 천민자본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다원성이 보장되는 민주 사회로 훌쩍 성숙했다. 그 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민주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노태우 정권이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88올림픽과 북방외교를 통해 국제적 위상도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반면에 북은 1989년 소련 붕괴 후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1994년 김일성 사망과 대규모 기아사태로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김정일의 지도 아래 ‘고난의 행군’으로 어느 사회주의 국가보다 질기게 연명할 수 있었다. 김정일과 김일성을 동일시하는 ‘유훈통치’, 그리고 주민들의 끝없는 인내심 덕분이었다. 체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자 미국과 협상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핵무기 개발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는 동안 1인 숭배와 경제 마비의 악순환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북측은 작금의 분단 시대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남측에 기대야만 살 수 있는 빈사 상태가 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문제는 통일 한국의 새로운 정통성을 세우는 일이다. 2000년의 남북 정상회담과 6.15 선언은 남측 국민이 쌓아온 민주주의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북측을 포용, 평화통일을 향해 함께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었다. 통일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동북아 평화의 허브가 되어서 국제사회의 평화 공존에 기여함으로써 진정한 정통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실어주는 우리의 ‘정통성’

10월 22일자 경향신문은 주진오 상명대 교수와 김동원 교과부 교육과정 기획과장의 대담을 실었다. 교과서 개정에 반대하는 주진오 교수는 “교과부장관 등이 이미 ‘좌편향’이라고 규정한 상태에서 정부 주도의 중립적 수정이 가능한가” 의문을 제기한 뒤 “정치적 환경에 따라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 같은 인상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것이 역사학계와 교사들이 수정 논의에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반면 김동원 과장은 “근현대사 교과서 6종은 ‘사실' 표현에는 문제가 없으나 ‘해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며 “교과서 간에 큰 차이가 있다면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가 수정안을 제시하는 것이 검정 제도의 장점인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가 교육과정이 제시하는 내용을 다양하게 표현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두에 인용한 국정감사장의 살벌한 풍경에 비하면 훨씬 더 ‘이성적’인 대화여서 다행이다. 김동원 과장은 교과서 수정이 필요한 이유로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체계적으로 심어주자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취지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어떤 점에서 자긍심을 발견할 것인가? 북측에 대한 적대감을 불어넣고, 민중의 저항 운동을 폄하하고,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조하고, 독재자의 과오를 은폐하면 될 일인가?        

아니다. 경제성장을 위해 피땀 흘린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 그리고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키워 온 남측 국민의 힘, 그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룬 힘이며 통일 한국을 만들 기본 동력이다. 국제무대에서 남과 북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친미 동맹과 제3세계 동맹 등으로 각축해 왔지만 이제는 남측이 국제무대에서도 훨씬 더 영향력이 크다. 이러한 사실을 잘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에게 충분히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부끄러운 과거를 감춘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어두운 과거를 과감하게 인정해도 정통성을 주장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남측은 경제와 민주주의 등 모든 면에서 북측을 압도하고 있다. 과거의 아픔을 솔직히 인정하고 올바른 전통을 쌓아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태도 아닐까?

누가 정통성을 훼손하는가?

국가의 정통성을 가늠하는 요소는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 그리고 넓게 보아 경제력과 민주주의의 수준, 평등과 평화의 성숙도, 그리고 공존과 상생을 위한 주민의 의식 등이라고 앞서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온갖 비리 의혹이 여전히 남아 있고 국민을 속인 혐의가 있지만 어쨌든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됐으니 일단 ‘합법성’은 인정하자. 대화와 설득으로 국민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 정부는 ‘정당성’을 획득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완고하게 거꾸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지난 정권이 해놓은 모든 일을 부정하더니 한술 더떠 20여 년 전, 6월 항쟁 이전의 독재체제로 돌아가려 한다. 국민과의 ‘소통’을 원한다더니 촛불 민심을 ‘소탕’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에게 ‘법치주의’를 강조하더니 스스로 법을 외면한 채 언론 장악을 밀어붙인다. 라디오로 ‘정례 국정연설’을 한다며 일방통행, 자기합리화에 열심이다. 이제는 뉴라이트, 국방부, 통일부, 교육감, 한나라당, 그리고 대통령이 앞 다투어 교과서 수정을 외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거꾸로 흔들던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대를 역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이 모든 행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자연스레 국민의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만들어 온 주체인 국민, 그리고 이를 훼손하려는 이명박 세력의 싸움이 곧 일어날 것이다. 피곤한 일이고 국력의 낭비지만 불가피한 싸움인 듯하다. 그들이 원하는 국가 정체성이 ‘반공 파쇼 국가’라고 한다면 논리적 일관성이라도 있지…. 국제 사회의 눈길을 생각하면 자꾸 부끄러워질 뿐이다.

※ 이 글은 이채훈PD 개인의견이므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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