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의 비애(悲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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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의 비애(悲哀)
[풀뿌리 닷컴] 김욱한 포항MBC PD
  • 김욱한 포항MBC PD
  • 승인 2008.12.08 11: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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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사 사정이 어떤 줄 알만한 사람이…’
‘꼭 이런 게 필요한거야?’
‘다음 개편 때 한번 검토해 보자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아마 이번 가을 개편을 거치면서 많은 PD들이 이런 대화와 비슷한 상황들을 거쳐 오지 않았을까? 특히 살인적인 제작비 삭감과 구조조정이라는 이중의 파도를 넘어야하는 지역사의 어려움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제작비를 두고 늘 반복되는 개편의 풍경이기도 하지만 이번 개편은 방송 대내외적인 어려움이 중첩되면서 제작비에 관한한 거의 백지 위임장을 데스크와 경영진에 넘기다시피 포기한 PD들이 많았으리라. 그리고 혹자의 PD는 제작비가 삭감당하는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을 것이고, 또 그 한편에는 어쩔 수 없이 제작비 삭감을 주도해야하는 가해자의 입장에 선 PD들도 있었을 것이다.

▲ MBC 지역계열사들은 이번 가을개편에서 제작비를 삭감하는 등 사실상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세속의 삶이라는 것이 많은 부분 돈을 가운데 두고 벌어지는 욕망의 경연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세속의 시각으로 볼 때 제작비만큼 PD들을 신파의 주인공으로 전락시키는 요소도 없을 것이다. 데스크와 경영진을 상대로 회유와 협박(?)을 동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가끔씩은 읍소로 제작비를 지키려는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고, 또 없는 제작비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출연자와 외주 업체에 한 없이 비굴한 웃음을 팔기도해야 하니 말이다.

이쯤에서 PD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제작비’의 정체와 본질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제작비의 정의는 무엇일까? 제작비가 말 그대로 ‘방송을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정의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을게다. 그렇다면 자동차회사의 자동차 제작비는 곧 그 회사의 모든 경비를 뜻하듯이 방송제작비는 바로 방송사의 모든 경비를 이르는 말일 수 있다. 방송을 만드는 곳이 방송사이기 때문에 이 논리는 적어도 3단 논법에서 큰 결점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회사 경비를 줄이자는 말 보다 제작비를 줄이자는 말들이 늘 먼저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저의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제작비’라는 하나의 프레임을 만듦으로써, 제작비는 마치 PD들이 개인의 욕망 혹은 의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쓰이는 돈이라는 거짓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잘못된 관행들의 답습…그리고 그 결과물로 각 부문별 예산을 경쟁과 대립으로 몰아가기 위한 의도들….

아마도 모든 PD들은 주위 동료들의 마뜩찮은 시선들을 한 번 쯤은 느껴봤으리라.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월급이 깎이는데 그렇게 제작비를 많이 쓸 필요가 있나?’하는 시선으로 PD를 바라보는 방송국의 동지들을 대하는 일은 안타깝고 참담한 경험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부문의 비용 지출을 보면서 ‘저런 장비를 꼭 지금 사야하나’하는 시선을 던졌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들을 우리 모두는 아무 고민 없이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다시 밝히지만 ‘방송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비는 제작비이다!’ 기술 경비가 따로 있고 보도 경비가 따로 있고 제작 경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비용들이 결국은 좋은 방송을 만들어서 시청자들에게 서비스하기 위한 애타는 노력과 뜨거운 신념의 재료일 뿐이다. 어려운 때 일수록 흩어지는 가지가 되는 것 보다 하나의 줄기로 뭉치는 지혜가 필요하다.

▲ 김욱한 포항MBC PD

여담으로 제작비 정산에 지친 PD들에게 한마디 보탠다. 제작에 지치고 정산에 지쳤을 때 책상위에 나뒹구는 세금계산서를 유심히 보시라. 오른쪽 상단을 보면 본인이 속한 방송사의 법인명이 보일 것이고 그 아래쪽을 보면 ‘업태’와 ‘종목’란이 보일 것이다. 우리의 업태와 종목이 무엇인지 늘 새롭게 확인하고 힘을 내는 짧은 각성의 시간이 되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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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하 2009-01-20 11:16:00
등을 뜻하지 회사의 인건비와 기술비 등 모든 비용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무제표를 보시면 금방 알 수 있을겁니다.
"제작비=회사의 모든 경비" 라는 등식을 만들어낸 것이 회사에서 제작자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셨는데, 비용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셔서 하는 말 같으며, 오히려 제가 보기엔 지극히 제작자 중심의 사고방식인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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