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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복진오 독립PD

지난 5월 촛불집회가 수 십 일간 진행되면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느 날 나도 웬일인지 아내와 7살, 9살 먹은 두 아들을 시청에 한번 데려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대규모집회가 예정된 어느 일요일, 가족에게 촛불집회 가자고 의견을 물으니 뜻밖에 아주 흔쾌히 따라 나섰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보수언론인 조중동을 제외하고 대체로 방송과 언론은 촛불집회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도했기에 아내와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따라 나섰다.

▲ 지난 5월과 6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된 촛불집회
수만명이 모인 시청 앞에서 아내와 아이들은 전혀 불안하지 않았고 광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처음 접한 대규모 집회를 신기해하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난생처음 보는 야간 집회와 수 만개의 촛불을 보고 혹여 당황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잘 적응(?)했다. 이날 난 우리 아이들에게 광우병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을 전혀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함께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이 왜 이곳에 모였는지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광우병 소 문제를 이해하기 힘든 아이들임을 알면서 촛불 광장에 데려간 이유는 ‘저항’ 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아이들에게 ‘저항’이란 단어와 그 의미는 더 어려운 문제임을 알면서 난 촛불광장에서 아이들에게 저항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항권’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계기로 이 거창한 단어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친 적은 없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생각이었다. 단지 나의 바람은 아이들이 중고등 학생이 됐을 때 아니면 대학생이 되어서 이 단어를 교과서 어딘가에서 보고 혹여 한번쯤 물어와 준다면 그때 비로써 헌법에 있는 국민저항권을 말해주며 “너 어릴적 시청에서 본 촛불의 모습이 저항권이란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 경향신문 12월9일자 11면
내가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은 저항권,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이런 국민의 저항권을 부여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는 헌법 전문이 말해주듯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란 의미는 말 그대로 부당한 권력과 통치에 대해서 국민이 저항할 수 있고 저항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즉 국민저항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 헌법의 가치는 무너졌다. 교육부에서 만든 한국현대사 동영상 자료는 4.19혁명을 데모 참가자들의 시위로 표현했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헌법이 권력에 의해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도 무시한 채 한 순간에 헌법이 ‘헌~법’이 됐다. 총강도, 1장도 2장도 아니고 헌법전문이 파괴된 일이 벌어졌다.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싸우다 희생당한 사람들은 졸지에 데모꾼으로 매도됐다.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한 이 교육부의 자료 때문에 나중에 역사문제를 놓고 부자지간에 진진한 대화를 나누려던 순진한 바램은 졸지에 부자지간에 역사문제를 놓고 큰 소리가 오가는 설전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한편 이를 보도한  KBS 〈뉴스9〉는 나에게 걱정 하나를 더 주었다. SBS와 MBC뉴스는 이 사안을 기자들의 리포트로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지만 KBS 〈뉴스9〉 경우는 메인 앵커가 30초짜리 기사를 스트레이트식으로 읽는 것으로만 처리했다. 각 방송사별로 그날 뉴스 취재내용이 각각 차이가 있어 그 보도내용도 다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날 4.19관련 KBS보도는 최근 KBS사태를 지켜보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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