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 그리고 2008년 한국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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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경진 /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
2008년 겨울, 우리 언론계에 불어 닥친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매섭고 차갑기만 하다.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침체가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하겠지만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무차별적으로 감행된 ‘낙하산’ 인사파동, 이른바 ‘언론의  쓰나미’ 현상과 보복성 인사조치 그리고 비상식적인 미디어 관계법 입안 등과 같은 반민주적 행위가 바로 작금의 한국 언론계를 꽁꽁 얼어붙게 한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정부권력이 언론자유를 대폭 보장하기 시작할 때만하더라도 한국사회의 언론계는 희망에 부푼 듯 했다. 다시는 과거의 언론탄압이나 언론통제와 같은 구시대적 잔혹사가 한국사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우 불행하게도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결국 정의롭게 진화하고 진보한다고 인류는 믿어왔고 또 역사의 진리는 그렇게 지속적으로 증명되어 왔다. 물론 진리와 정의를 가로막았던 불순한 시도가 부단히 출몰하곤 했지만 사필귀정의 가르침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결코 거스르지 못했다. 설령 그러한 온당치 못한 시도가 일시적으로 성사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정의라고 규정짓지 않았다. 우리는 이를 반역사적 행위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로 기억한다. 같은 반 학우들과 함께 얄팍한 주머니를 털어 당시 광고탄압에 신음하던 동아일보에 그 때 돈으로 몇 만 원짜리 아주 작은 쪽 광고를 낸 적이 있었다.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민주언론이 광고탄압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던 암울한 시절, 비록 고등학생이었지만 반민주주의적 행위가 어떤 것이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반역사적 오류는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또 꿈꿨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꿈은 한낱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2008년 대한민국의 언론계는 또 다시 반민주적 반역사적 오류로 점철된 한 해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정치적 정략에 매몰된 인식으로 가득한 인사들이 언론사 요직으로 공수되고 또 그들은 자신들을 보은 인사한 정권에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은할 것이 자명하다. 한국의 언론 상황을 잘 아는 독일의 한 언론학자는 이를 두고 이탈리아식 포스트 파시즘이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반역사적 오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반민주주의적 언론관계법들이 정권 실세들에 의해 획책되고 있다. 재벌에 지상파 방송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개정안을 내놓은 발상은 민주주의적이라기보다는 분명 반민주주의에 더 가까운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재벌기업과 같은 사회적 강자를 감시 비판해야할 언론 본연의 책무가 재벌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과연 누가 이를 두고 민주주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현 정권의 미디어 정책가들 주장대로 ‘미디어 산업이 새 시대에 맞게 새 옷을 입고 시장경제를 활성화 시킨다’고 가정하자. 재벌의 언론 독과점으로 인한 여론 독과점과 그 사회적 병폐는 불 보듯 자명한 일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최우선으로 갖추어야 할 공공성은 도대체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 지 참으로 암담하기만 할 뿐이다. 

혹독한 한파를 이겨낸 땅은 그 어느 때보다 넉넉한 수확량으로 농부에 보답한다고 한다. 살을 에는듯한 한파와 시련을 겪은 후 언론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는 더욱 굳건히 수호될 것이며, 역사적 진리에 위배되는 정의롭지 못한 시도는 단호히 척결될 것이다. 민주언론을 수호하려는 언론인은 물론 강단에서 언론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 역사가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언론 민주언론을 갈망하는 민주시민들은 작금의 미디어 정책의 오류를 엄중히 심판할 것이다. 정의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던 교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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