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36)]

▲ 고승우 박사
시장에서 자유 경쟁이 장기간 벌어지면 거대 자본에 의한 과점 또는 집중 현상이 생기는 경향이 많다. 어느 상품이든 그렇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다수 공급자가 품질과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이 이로운 측면이 많다. 독과점 상태가 되면 가격, 품질이 공급자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이다.

미디어 시장은 어떨까? TV나 신문 시장에 자유경쟁 시스템이 도입되면 거대 자본이 몽땅 소유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언론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면서 시장경제 논리를 금과옥조로 여기지만 대도시에서의 방송과 신문의 겸업은 허용치 않는 원칙을 지킨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방송, 신문 겸업 금지를 해제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다가 그것이 상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한미공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한나라당은 이달 초 미디어 소유 집중을 허용하는 요지의 언론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법 개정안 △신문법 개정안 △언론중재법 개정안 △인터넷 멀티미디어 개정안 등 총 7개 법률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 가운데 가장 관심이 집중된 것은 신문과 방송 겸업 허용, 대자본의 방송진출 문턱을 낮춘 것 등이다. 한나라당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다가 미수에 그친 미디어 소유 집중 논리를 도입하려 한다. 미디어 시장을 자본의 손아귀에 쥐어주겠다는 발상은 미디어의 자본 예속을 의미한다. 참고 삼아 미국이 지난 봄 미디어 소유 집중을 저지한 사례와 한국의 경우를 다시 되짚어보자.

▲ 미디어행동과 야당들은 지난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과 신문사로 하여금 지상파 방송 등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한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률 개정안을 규탄하고 있다.
미 상원, 신방 겸영금지 완화 FCC 결정 무효화

미국 상원은 지난 5월 신문·방송 겸영 금지를 완화하기로 했던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지난해 12월 결정을 무효화했다. 미 상원은 20개 대도시에서 신문·방송 겸영 금지의 완화를 허용하는 FCC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등이 주축이 되어 미디어 소유 집중을 초래할 FCC 결정을 저지한 것이다.

미 상원이 미디어 집중을 저지한 지난 5월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석달째 되던 시기다. 당시 국내에서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신문 방송 겸영 허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맹렬히 제기되고 있었다. 그런데 미 상원이 FCC 결정을 백지화 시키자 조중동은 그 보도조차 외면했다. 국내 보수세력은 미 상원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미국에서도 신문 방송 겸영이 허용될 결정이 임박했다면서 세계적인 추세가 미디어 겸영 허용 쪽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그러면 미 상원의 결정이후 국내에서 방송 신문 겸영 허용 주장이 잦아 들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은 미 대선이 끝난 후인 지난 11월 12일 “신문들의 공중파 방송 진출을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공중파 방송을 신문들이 완전 소유해 경영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당장은 이를지 몰라도, 일정 비율의 출자허용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몇 퍼센트까지 진입을 허용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여론 독과점 우려에 대해 그는 “언론환경이 다매체 다원화된 상황인 데다, 신문도 과거처럼 특정 몇 개 신문이 여론을 독과점하는 상황도 아니고, 인터넷 신문들도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느냐”며 “신문·방송 겸영이 여론 독과점을 가져온다는 말은 옛날 이야기”라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이 이뤄지면 미디어 산업 개방도 불가피한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만 신문·방송 교차겸영이 안 될 경우, 국내산업에 대한 역차별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산업발전이나 시너지 효과 면에서도 사실상 겸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언론도 시장논리로 가야한다는 ‘신념’ 강해

고 위원장의 견해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주장을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도 시장논리의 경영방식으로 가야한다는 미국 뉴라이트의 주장을 아직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뉴라이트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이다가 결국 오바마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뉴라이트 정책은 금융위기 등 미국내외적 위기 상황을 초래해 미국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부시의 대자본에 의한 미디어 집중 또한 미국에서 거부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에서 실패로 끝난 뉴라이트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흐름’ ‘한미 FTA 비준 이후 대비’ 등과 같은 부적절한 근거를 서슴없이 언급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대자본이 지배하는 기업 종속적 미디어가 어떻게 계급구조를 은폐하면서 엘리트 지배의 신화를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강조하는지를 폭로한다.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는 특정 사회의 지배적인 신념 및 가치 체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미디어가 문화를 정치적으로 보이게 하고 정치가 문화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허구를 폭로하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익히게 되면 대중사회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알 수 있다. 대자본이 지배하는 미디어는 자본의 미덕을 강조하는 비현실적인 메시지를 양산하는 반면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은폐하는 성향이 강하다.

미디어 소유가 거대 자본에 집중될 때 많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상식이다. 시장을 독과점하는 거대 미디어는 시민사회의 이익보다 광고주나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속성을 지닌다. 그 결과 시민사회는 다양한 주장이나 여론을 접하지 못하게 된다.

미디어 소유가 거대 자본에 집중되거나 방송 사업이 대자본에 허용될 때 많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시장을 독과점하는 거대 미디어는 시민사회의 이익보다 광고주나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속성을 지닌다. 그 결과 시민사회는 다양한 주장이나 여론을 접하지 못하게 된다.

소수 자본가나 권력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디어는 공공성이나 공익성이라는 기본적인 사회적 책무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거나 시민사회에 그것을 전달할 기회는 적어진다. 미디어 시장이 소수 거대 자본에 의해 과점 상태로 지배될 경우 미디어간 보도 경쟁은 사라지고 신문 대금 등의 가격 인상이 쉬워져 미디어 소비자들의 부담만 늘어난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11월26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가 지상파 방송 등에 진출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은 자산총액 10조원 미만으로 완화하는 것을 뼈대로 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려 하자 “족벌신문과 대기업의 발 아래 방송·언론을 두려는 술수”라며 “개정안이 강행될 경우 총파업 등 전면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진입 규제 대폭 완화, 미디어 소유집중 가능성 높아져

방송사업에 대한 대기업 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경우 미디어 소유의 집중 가능성이 높아지는 부작용 등이 발생한다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다. 거대 자본이 미디어를 소유할 경우 자본에 불리한 정보는 보도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정보의 다양성과 질적 향상은 감소되고 자본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에 대한 내부 검열은 늘어난다.

미디어 소유 집중과 자본의 미디어 지배는 지역 방송과 신문을 황폐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 제공 사업자인 KT가 얼마전 업계 최초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수도권에만 실시간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해 지역방송이 반발이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언론은 영세한 자본, 소수의 시청자, 구독자 문제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지역언론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지역언론이 지닌 문제와 무관치 않다. 거대 자본력을 지닌 미디어가 지역 언론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지역 정부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견제보다 자본 이익을 더 우선시 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국내 신문사 가운데 방송 겸업을 강력 주장하는 신문은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다. <중앙일보>는 관련법이 아직 국회 통과 전인데도 방송사 발족을 위한 인력을 고용하는 등 채비를 갖추고 있다. <조선일보>는 일부 위성방송과 제휴해서 방송프로를 제작하는 일을 상당기간 해왔다. 그러면 이들 신문 가운데 삼성과 밀접한 관계인 <중앙일보>의 삼성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대자본의 언론 소유가 얼마나 부적절한지 뚜렷이 드러난다. 이 신문은 삼성 총수와 관련한 검찰 수사 등은 언제나 외면, 축소했다. <중앙일보>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보다 물적 토대인 삼성 재벌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는 자본에 예속된 미디어가 사회적 책무를 어떻게 저버리는지를 명확히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중앙일보, 자본에 예속된 미디어의 ‘병폐’ 보여준 대표적 사례

방송통신위원회는 수 개월전부터 청와대 업무 보고를 통해 신문·방송 겸영 금지와 방송사업에 대한 대기업 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의 미디어 정책 추진을 공식화했다. 한나라당이 ‘신문 방송 겸업 허용이 세계적 추세’라면서 MBC, KBS2, YTN 같은 공영방송사에 대한 단계적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들 방송의 민영화는 결국 거대 자본에 의한 소유를 의미한다. 이는 앞서 살핀 미디어 소유집중과 거대 자본의 미디어 산업 장악이 갖는 부작용을 살필 때 선진화를 입에 달고 다니는 거대 여당이 발설해서는 안 될 소리다. 거대 자본의 방송 소유는 자본 자체의 선진화조차 뒷걸음질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이명박 정부가 취하는 미디어 정책은 오바마 당선자 쪽과는 방향이 다르다. 오바마는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 초래할 부작용을 고려해 허용 금지의 원위치를 고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경제 선진화 등을 자본의 논리로 추진한다면서 미디어 산업의 거대 기업화가 초래할 부작용은 외면하는 후진적 시각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적 자본 논리에 집착하다가 미국 경제를 파탄내고 일방적 외교로 미국이 세계적으로 고립되어 실패한 정치인으로 대통령을 마치는 것을 청와대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