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 뭐하는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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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 뭐하는 곳인가?
[기고]
  • 승인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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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지방 방송사 라디오PD가 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의 내용은 올해 초 새롭게 출범한 방송위원회가 여전히 과거의 관행을 벗지 못하고 방송사에 각종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보고서 제출 내용이 너무나 형식적이라는 것이 이 PD의 지적이다. <편집자>어쨌든 통합 방송법에 따라 새로운 방송위원회가 출범했다.그 동안의 잡음이야 접어두고, 새로 출범하는 방송위원회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지켜 보았다. 그러나 방송현장의 현업인에게 다가온 변화의 바람은 엉뚱한 식으로 불어왔다.역시나 문서와 요식행위를 좋아하는 관료적인 행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내 책상에 제일 먼저 도착한 "새로운 방송위원회의 인사"는 바로 "월간 방송실적과 방송일지 보고"에 대한 공문이었다.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 동안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방송실적 보고서라는 게 요청하는 쪽이나 보고하는 쪽이나 서로 눈감고 뭐 하는 거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더구나 자체제작 비율도 얼마 되지 않는 지방의 라디오방송사에서 보고하는 방송실적 보고서라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가? 이 말을 방송이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해석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초까지 계산해서 올리라는 새로운 방송실적 보고서와 일지는, 만드는 이도 대충, 받는 이도 대충. 받아서 휴지통으로.언젠가 방송위원회에 "방송실적 보고서 양식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담당자의 말이 "그런 거 우리도 없고, 대충해서 보내라"고.아무튼 통합된 방송위원회가 케이블 방송사까지 포함해 매달 백여개의 방송사에서 올라오는 방송실적 보고서와 일지를 일일이 다 연구 검토해 이 나라 방송의 발전에 초석을 다지겠다고 요청하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보고서라는 게 보고를 위한 보고가 아닌가? 애초에 교양이니 오락이니 보도니 하는 억지스런 구분을 해서 비율을 낸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일 뿐 아니라 그걸 기준으로 방송 재허가를 고려하겠다는 공문의 머리말도 협박성이 엿보인다. 엉터리 기준의 엉터리 보고서로 엉터리 허가권을 행사하겠다는 건가?물론 받는 쪽에서야 정확하지 않은 보고서라도 뭔가 기준이 필요하니 없는 것보다야 있는게 낫다 싶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가, 특히 사환하나 없이 피디가 온갖 공문서 처리까지 해야하는 지방 라디오방송사의 실정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본 인사가 있다면 한 번 작성하는데 며칠을 계산기 두드려야 하는 보고서를 올리라는 것으로 첫 인사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방송사는 위원회의 하부조직이 아니잖은가? 위원회쪽에서 필요한 자료라면 보고를 받기보다 조사를 해가는 것이 옳지 않은가? 만일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굳이 보고서를 받아야 맛이라면 그 자료가 방송의 발전에 얼마나 철저히 쓰이는지 위원회에서도 방송사에 보고해야 한다.소문으로는 몇 년씩 보고하지 않은 방송사도 그저 가끔 한 번 독촉 전화나 받는 수준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보면 담당자가 매우 관대한 분이었던 모양이니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피 터지며 열심히 보고한 나로서는 다행이라 할 지 불행이라 할 지 모르겠다.아무튼 그렇게 관대하니 앞으로 월례적인 보고서 하나 잘 못 올렸다고 방송사 문을 닫게 하지는 않겠지만 첫 인상이 평생을 좌우하는 법인데 내게 다가온 방송위원회의 첫인상은 그렇다. 이게 개혁하자는 방송위원회인가? 뭐가 달라졌나? 도대체 방송위원회는 뭐하는 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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