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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PD의 터닝포인트]

▲ 이채훈 MBC PD
지구인과 외계인이 만난다면 그 장소는? 지구 근처, 또는 지구 위일 것이다. 문명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별들 중 가장 가까운 게 4만 광년 떨어져 있는데, 지구인은 그 별과 지구의 중간 지점까지 생존해서 날아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은 지구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지구까지 살아서 올 수 있었다.

그들은 장구한 역사 속에서 전쟁, 빈부 격차, 환경 파괴 등 재앙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평화와 공존의 지혜를 체득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남았겠는가? 지구 역사상 예수, 부처, 모차르트, 아인슈타인처럼 도덕과 지성이 탁월한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였다. 하지만 그 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상상이 가능하다. 

2,012년 12월 17일, 지구에서 4만 광년 떨어진 푸른 별에서 그들이 왔다. 그 별의 이름은 ‘에레혼’(erehwon). 지구인이 돌도끼를 들고 들소를 사냥하고 물고기를 낚을 때 그들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체를 타고 출발했다. 그들은 눈과 귀와 두뇌와 신경과 손가락 끝만 활동하도록 온몸을 냉동 처리한 채 4만년을 날아와 지구를 발견했다. 그들은 태양계 근처에 이르렀을 때 보이저 1호를 수거했다. 지구의 생명과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았고, 바흐 브란덴부르크협주곡 등 27곡의 음악을 감상했고, 55개 언어로 녹음한 인사말을 모두 알아들었다. 거기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도 들어 있었다. 그들의 가슴은 지구인들에 대한 사랑으로 넘쳤고, 반가운 마음에 설레었다.

파란빛의 비행체는 한반도 200Km 상공에서 멈췄다. 지구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이 유달리 이들의 흥미를 끈 것.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서울 거리에서 이들은 촛불을 든 수만 명의 시위대를 보았고,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와 노숙자들을 보았고, 며칠 뒤 외국으로 망명 떠나려고 준비를 서두르는 청와대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표정이 없었다. 보이저 1호에서 나온 사진, 음악, 인사말과는 느낌이 달랐다. 

시선을 돌려 북쪽을 보니 지도자 사망 후 극심한 소요사태가 일어났고, 군부가 분열하여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편에는 총 맞아 죽은 아이, 굶어죽은 아이들이 널려 있었다. 거리마다 여인네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 영화 < ET>의 한 장면.
다시 남쪽 TV를 보니 한국전쟁 당사자인 미군과 중국군이 함께 북측에 진주하여 치안을 회복할 계획이었다. 일정 기간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신탁통치를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었고, 러시아와 일본도 참여를 요구하고 있었다. 정작 남쪽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고, “때가 되면 저절로 통일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은 “북측의 핵무기를 2년 전에 폐기했기 때문에 다행히 최악의 파국은 없을 것”이라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남과 북의 풍경을 보고 에레혼 사람들은 5만 년 전 자신들이 겪었던 야만시대를 떠올렸다. 힘센 종족이 약한 종족을 무력으로 정복했고, 무자비하게 약탈했고, 권투와 격투기, 동물 살해를 즐겼다. 한쪽에서는 과식으로 배터져 죽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굶어서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약한 종족끼리 힘을 합쳐서 강한 종족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핵무기를 잘못 사용하여 양쪽 사람들 모두 재로 변했다. 생태계도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 같은 비행체가 있었다. 이것을 타고 가장 아름다운 한 쌍의 남녀가 살아남았다. 그들은 100년 동안 비행체를 타고 은하계를 떠돌다가 에레혼으로 돌아가 새로이 삶을 개척했다. 그들은 늘 서로 사랑했고, 성실히 일했고, 아름다운 춤과 음악을 즐겼고, 자녀가 생긴 뒤에는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살았다. 노아의 방주에 탈 때 조상신의 계시가 있었던 것. 그들의 다짐은 세대가 바뀌고 인구가 불어나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이들은 지구인들에게 자기들의 생존 비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란의 패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서로 핵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나사(NASA)에서 UFO를 제일 먼저 포착했다. 두 나라는 이 비상상황에서 일단 대립을 중단하고 연합 핵 공격대를 구성하여 지구 궤도를 향했다. 에레혼에서 온 비행체는 한반도 크기와 맞먹었다!! 그들은 이 거대한 UFO를 향해 100발의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영화 <아마겟돈>처럼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그러나 미사일들은 비행체를 뚫고 달을 지나, 화성을 지나, 목성을 지나 영원히 허공을 날아갔고 비행체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에레혼 사람들은 평화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양키와 로스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한 달 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의 백악관은 패닉에 빠졌다. 혼란을 우려해 비밀작전을 폈지만 이제 더 이상 진실을 숨길 수 없었다. 전세계 뉴스가 특보체제에 들어갔다. CNN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전쟁을 인류 최초로 생중계 한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청률 경쟁밖에 모르는 ‘무뇌아’로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가 된 미국 방송의 자화상이었다.

사태 초기, 미국과 러시아는 거의 동시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한국 정부도 덩달아 계엄령을 선포했다. 대선에서 패색이 짙었던 여당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틀 앞으로 닥친 선거를 일단 사태 해결 이후로 연기했다. 4년 전 불어 닥친 경제 한파를 임기 말까지 해결 못해 서민들은 모두 극빈 상태가 됐고, 비정규직 1,500만 명 시대가 열렸고, 길거리에 실업자와 거지들이 넘쳐났다. 민심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체념과 냉소가 휑한 겨울바람처럼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여당은 ‘강남 좌파’를 후보로 세웠지만 이들의 부패에 넌더리가 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다.

지리멸렬하던 야당은 반MB 연합전선으로 뭉치면서 조금씩 활력을 회복했고, UN 사무총장을 역임한 인사를 후보로 내세우면서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았다. 안 그래도 북측 사태를 빌미로 계엄령 선포하고 선거 연기할까 말까 저울질하던 중이었는데 때마침 외계인이 와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말이다.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면 표가 우르르 올라가지 않겠냐 말이다. 뭐, 인류가 멸망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17일 밤, 서울 상공에는 달이 두 개 떠 있었다. 사람들은 뉴스특보를 보고 그 중 하나, 즉 파란 달이 외계 비행체라는 걸 깨달았다. 농담 잘하는 누리꾼들은 그 파랗고 둥그런 물체를 가리켜 ‘서울의 달’이라며 킥킥 웃었다. 종점집 술꾼 한명은 “이 더러운 세상, 차라리 다 망해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지” 한탄했다. 또 한 명이 “이 바보야, 뭘 새로 시작해? 지구가 멸망하는 거란 말야, 알어?” 맞장구쳤다. 관객 한명은 혼자 생각했다. 사흘만 살 수 있다면 뭘 해야 할까... 아니, 오늘밤이 마지막이라면 지금 뭘 해야 할까... 그러나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꾼 돈, 빌린 책 돌려줘야지... 애들 한번 안아줘야겠다... 하지만 외계인이 지구인을 공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흥미진진하군...

그 시각, 공항은 아비규환이 됐다. 아무래도 외계인들이 한반도를 제일 먼저 공격할 것 같다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일단 피신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쌀 직불금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정치인, 돈 내고 보석으로 풀려난 다복회 계주 아줌마들, 노동자 수십명이 죽어 나가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않아서 화제가 됐던 한국 타이어 회장과 아들 등 유명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청와대 사람들은 “어차피 미국으로 망명할 건데 며칠 빨리 갈까?”, “아니지, 그래도 국민들에게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해”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재림이었다. 여의도 고수부지에서는 말일성도교회와 순복음교회가 연합 부흥성회를 열었다. 최후 심판의 성스런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10만명이 넘는 성도들이 운집했다. 조영기 목사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깨어 있으라”고 자신이 늘 강조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의 열렬한 설교는 재림 예수께서 저 멀리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우렁찼다. 고수부지의 군중들은 예수께서 악한 자들을 파멸시키고 자기들을 구제해 주시리라 진심으로 기도했고, 믿었고, 울부짖었다.

에레혼 사람들은 자기들 때문에 이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지구인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들은 비행체에 스마일 무늬를 그려 넣었다. 서울의 여학생들이 문자 보낼 때 쓰는 아이콘을 봐 두었던 것. 여의도 고수부지에서는 웅장한 “할렐루야” 소리 때문에 한강물마저 출렁거렸다. 미소 짓는 ‘서울의 달’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았다.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윽고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건 위장 평화 전술일 거야”, “아니, 아니, ET도 지구인과 싸우지 않았잖아, 저건 친구가 되자는 뜻일 거야.”
      
이윽고 파란 달에서 은빛 광선이 한반도 땅을 향해 서서히 내려왔다. 빛은 빛인데 사람이 감촉할 수 있는 질량을 갖고 있었던 것. 물안개처럼 다가오는 은빛 광선은 너무나 부드럽고 따뜻하고 찬란했다. 사람들은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광선은 사실은 엄청나게 속도가 빨랐다. 먼 하늘에 있을 때는 서서히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광선은 초속 20Km의 엄청난 속도로 한반도 전체를 덮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고정된 채 유리 호박처럼 그 광선에 갇혔다. 

촛불 시위대도, 거지와 노숙자도, 청와대 사람들도, 고수부지의 예수 신자들도, 종점집 술꾼들도 모두 스톱 모션으로 얼어 붙었다. 북측의 군부 인사들, 죽은 아이들, 오열하는 아줌마들도 모두 멈췄다. 한반도 상황을 중계하던 CNN 팀도 얼떨결에 광선에 휩싸여 박제가 되고 말았다. 미국과 러시아 정부는 추가 공격 계획을 유보하고 한반도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위성 카메라로 한반도 상황을 전세계에 전하기 시작했다.        

박제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순간 냉동으로 ‘죽을 틈’도 없었던 것. 그들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 외계인들은 지구인의 얼굴을 읽을 줄 알았다. 얼굴을 잠시 바라보면 그 사람이 살아 온 역사와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사람이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며 살았는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왔는지, 아름다운 춤과 음악을 즐길 줄 아는지,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살 자세가 되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에레혼 사람들은 박제된 사람들에게 자기별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지구에서 들을 수 없었던 오색찬란하고 선하디 선한 음악이었다. 이 음악은 온 몸으로 진동하며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그들은 이어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들려주었다. 에레혼 사람들이 볼 때 지금까지 지구에서 울려 퍼진 음악 중 가장 선한 음악이었다. 그들은 지구인과 소통하기 위해 음악을 선택했던 것이다. 외계의 음악과 지구의 음악이 몇 차례 교차했다. 에레혼 음악은 전혀 어렵지 않았고, 한없이 즐거움이 샘솟았다. 지구 음악은 바흐, 모차르트, 쇼팽, 메시앙, 피아졸라가 이어졌다. 고정된 사람들 중 일부는 이윽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평화롭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윽고 에레혼의 메시지가 불꽃놀이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한국말로 번역되어 있었다.


늘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
아름다운 춤과 음악을 즐기는 사람,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우리는 이런 지구인들의 친구입니다.
                     ”

박제된 사람들은 모두 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부처, 솔로몬, 예수 등 선각자들이 말했던 공통된 가르침 아닌가. 모차르트가 음악으로 말했던 ‘집착 없는 사랑’이 바로 그것 아닌가. 누구나 알지만 결코 실천하기 쉽지 않았던 지혜, 누구나 말로는 동감하지만 대다수 교회와 사찰에서 오해받고 무시당한 가르침 아닌가. 

에레혼 사람들은 박제된 사람들 얼굴을 하나씩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실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한명씩, 한명씩 은빛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얼굴이 모두 맑았고 빛이 났다. 그들은 모두 어린이 같았다. 그들은 비로소 에레혼 사람들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오바마의 미국 정부와 세계 언론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이 놀라운 일에 개입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일주일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이 다시 자유롭게 됐고, 에레혼의 친구가 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하고 사랑하며 살게 됐다. 남과 북의 사람들은 증오, 편견, 차별 없이 어울렸고 곧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 한국은 세계 평화의 허브(hub)가 됐고, 모든 구성원이 열심히 일하고 평화롭게 나누는 모범국가가 됐다. 국제 사회도 한국을 존경했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과 중국 등 여러 나라가 한국을 찾아와 이 놀라운 변화를 보고 배워갔다.

에레혼 사람들은 한국 전역에 생중계된 모차르트 <마술피리>를 관람한 뒤 지구를 떠났다. 그들의 맑은 눈에 작별의 눈물이 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반도는 야만과 파렴치와 몰상식의 시대가 영원히 가고 평화와 공존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사람들은 에레혼의 사랑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박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수십만 명 남았다. 이들의 이름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귀가 있어도 들을 줄 모르고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은빛 케이스 채로 한 군데에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었다. 은빛 케이스는 이 박제 인간들의 악취가 새어나지 않도록 잘 밀봉되어 있었다. 구시대의 천연기념물 전시장은 전세계의 관광객으로 늘 붐볐다.    

한반도의 사람들은 에레혼 사람들의 메시지를 영원히 잊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고 에레혼 사람들이 준 충격과 감동도 차차 흐려져 갔다. 에레혼에 돌아가는 4만년의 긴 장정, 그 5천분의 1도 못 갔을 8년 후, 그러니까 2020년, 미국 서해안에 사상 초유의 대해일이 일어나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30년에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덮칠 거라는 불길한 예측이 떠돌았다. 그런데 2024년, 미국인들은 결국 영국,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침공했고, 이에 반발한 러시아가 개입했고, 러시아의 실수로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가고 말았다. 미국은 러시아의 대륙간 탄도탄을 요격한 뒤 잠수함으로 18발의 핵미사일을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 퍼부었다. 

통일 한국은 단결해서 국제 사회에 전쟁 중지를 호소했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비극을 막을 힘이 없었다. 러시아의 대도시는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유럽 주민의 절반 이상이 핵폭발 당일 사망했다. 미국도 안전할 수 없었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렸고 5미터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 괴질이 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갈색 액체를 토하며 쓰러져 갔다. 재앙은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체르노빌 참사 때의 1,000배가 넘는 방사능 낙진이 한반도를 덮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에레혼 사람들과 교신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급전을 받은 에레혼 사람들은 비행체의 방향을 돌려 다시 지구를 향했다. (다음호에 계속)

나의 상상은 여기까지다. 어려울 때 판타지가 유행한다고 했던가? ET의 구원을 기다릴 필요가 없도록 우리 스스로 좀 더 인간적인, 따스한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하겠다.

이 글은 90년대 월간 <말>에 실린 조유식 기자의 <지구인과 외계인이 만난다면?>의 기본 아이디어에 내 상상력을 얹어서 썼다. 밀레니엄 특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은 더 어려울 것이다. 제작비가 만만찮게 들어갈 테니까... 불행히 다큐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소설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레혼’(erehwon)이라는 별 이름은 사뮤엘 버틀러가 풍자소설 제목으로 썼는데, ‘nowhere’를 거꾸로 쓴 단어라고 한다. 외우 정길화가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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