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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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였느냐?
[언론과 인권] 김학웅 (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장)
  • 김학웅 변호사
  • 승인 2008.12.15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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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튀어나온 마음

도대체 말씀이 무엇일까?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라는 표현만으로는 아무래도 2% 부족하다. 말씀을 의미하는 言을 풀어보면 아음(心)과 입(口)로 이루어져 있다. 말씀이란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마음인 것이다. 따라서 원래 튀어나옴으로써 외화된 마음은 내면의 마음과 일치하는 것이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란 사전적 정의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믿음을 의미하는 信은 사람(人)과 말씀(言)의 합성어이다. 믿음이란 사람 사이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마음들이 일치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결국 바벨의 혼돈은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를 믿을 수 없음으로 인한 혼돈이었다.

▲ 경향신문 12월15일자 1면
독일인 게오르크, 영국의 왕이 되다

청교도 혁명으로 공화정이 성립되었던 영국은 올리버 크롬웰 사후 왕정복고로 스튜어트 왕조가 부활했지만, 1714년 메리 여왕의 죽음으로 대가 끊기게 되자 독일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가 왕위에 올라 조지 1세가 된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54세라는 고령의 게오르크가 독일 출신이어서 영어를 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영국은 관료들이 작성한 문서를 결제하기는커녕 커뮤니케이션조차 되지 않는 게오르크를 빼고 정무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밀실(密室)로 불리던 장관회의를 개혁해 내각(內閣) 으로 만들어 행정을 맡기고, 다수당의 당수를 수상으로 선출함으로써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의원내각제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정치 체제마저도 바뀔 수 있음을 알려 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게오르크에 얽힌 일화 한 가지. 게오르크는 하노버 선제후이던 1710년 헨델에게 하노버 궁정 악장으로 취임해 줄 것을 요청했고, 헨델은 하노버로 가기 전 1년간 영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여 1711년에야 하노버 궁정 악장으로 취임하였다가 1712년 영국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1714년 게오르크가 조지 1세가 되자 영국에 체류중이던 헨델은 하노버에 재직한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 미안했던지라 게오르크의 영국 국왕 취임을 축하하기위해 템즈 강변의 선상(船上)파티에서 연주될 ‘수상음악’을 작곡했고 게오르크는 헨델의 월급을 두 배로 올려주었다. 그럴 만도 했겠지. 유명한 음악가가 자신의 취임을 축하하는 음악을 선사한 것도 기쁜데다가, 무엇보다도 그는 낯선 이국땅에서 모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 까짓 두 배가 문제였을까?

조삼모사(朝三暮四)

너무도 유명한 고사(故事)라서 그 내용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독자들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는 꼴이라 내용은 생략!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숭이들이 어리석다느니, 저공(狙公)이 협잡꾼이니 흉을 보지만,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원숭이들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저녁보다는 아침을 더 먹어두어야 했고, 저공은 이러한 사정을 이해했기에 결정을 번복했던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사실 조삼모사의 교훈은 주면 주는 대로 받고 때리면 맞아야 하는 원숭이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당당하게 어필(appeal)했다는 점과 자신의 결정의 불합리성을 간파하고 이를 번복했던 저공(狙公)의 합리적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치자(被治者)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는 치자(治者)의 자세에 있는 것이다.

통하라!

글쓴이가 군복무를 하던 부대의 통신대 구호가 ‘통하라!’였다. 통한다는 건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마음인 말씀이 통한다는 것이고, 서로 간에 말씀이 통할 때 비로소 신뢰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피치자(被治者)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2MB 정권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를 계기로 과학과 법학의 전문지식을 습득한, 그래서 원숭이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우리 국민들의 말씀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을까? 2MB는 국민들과 통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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