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노가리 노가리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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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노가리 노가리 비추!
  • 김기슭 SBS 편성기획팀 PD
  • 승인 2008.12.17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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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새끼는 왜 노가리라 부를까? 난 노가리란 안주를 처음 시켜본 게 서울 와서다. 온 돈 주고 아무리 새끼라도 명태 말린 걸 술안주로 사 먹을 줄 어떻게 알았으랴. 하긴 대학 합격해 서울 오기 전까지는 동성로라도 진출해 (민증 검사 피해 다니면서) 생맥 한잔 마실라치면 안주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메뉴판 상단을 점하는 저렴하고 양 많은 감자튀김이나 멕사(멕시칸 샐러드), 쏘야(소시지 야채볶음) 중 돈 낼 놈의 낙점이었다. 양 적고 배 안 부른 마른오징어라도 시키면 친구들의 뜨거운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 행여 그랬다면 손톱 신공으로 오징어를 하얀 실로 미분(微分)해서 수북이라도 쌓아야 용서가 됐다.

그러다 서울 와 처음 본 노가리 안주는 내 기준으로 보면 양 적고 배 안 부른 ‘뒤질래’ 안주였다. 하지만 대나무 꼬챙이에 줄줄이 꽂힌 노가리 하나를 쑥 빼서 배나 등짝을 능숙하게 벌리고 뼈를 뜯어낸 다음 세로로 북북 찢어, 마요네즈 섞은 고추장을 한번 쿡 찍어 입에 집어넣는다. 뭐 먹을 만은 하다. “노가리는 갈기갈기 찢어서 자근자근 씹어 돌려야 돼!” 짐작하다시피 당시 현직 대통령은 거의 모든 대학생들에 의해 노가리라 불리고 있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시키는 맥주 안주 중 하나가 노가리였다. 조금 있으면 남은 뼈마저 오도독 씹고 있는 헝그리-영-맨이 꼭 있었다.

마치 군생활의 그것처럼 지나간 시대의 우울은 그저 술안주 웃음거리가 될 뿐이고, 그 동안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려 다시 부르르 떨 만큼 애써 정신적으로 부지런할 여유도 없었다. 많은 기억들이 노가리와 함께 한참을 뇌세포 저편에 쳐 박혀 있었다. 최근 어느 개그우먼의 재기 발랄한 ‘강추’ 퍼포먼스로 노가리가 다시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기실 검색 단어 ‘노가리’가 뜨기 전에 참으로 노가리스러운 기억들을 떠올릴 사건들이 그 사이 줄줄이 벌어진 터였다. 애써 아니라고, 지금 시대에 그럴 리가라고 외면하다가도 탁치니 억하며 떠오르는 기억들, 다시 ‘노가리’와 ‘0대갈’스러운 시절의 일들이, 인간들이 좀비처럼 살아 꾸물거리는 환영들.

선배세대들은 더 몸서리치게 겪었을, 비교육적 교육으로 점철되고 까불면(?) 학교 밖으로 쫓아 버린 시대, 맞는 말 한다고 국가가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방송카메라위의 알파벳은 손가락질 받던 시대, 정의사회구현을 외치며 정의 밟는 사회를 구현하고 위대한 보통사람들 2%만을 위하던 시대, 경찰과 정보부에는 덜덜 떨고 그저 술 한 잔에 노가리 씹어 돌리며 울분 토하다 소주 섞은 생맥주에 취해 투미해진 눈동자, 그 앞에 어른거리는 누런 노가리스런 환영들. 보기 싫어, 떠올리기 싫어, 다시 나타나지마, 노가리 노가리 비추! 네네 됐거든요, 그렇게 좋으면 부디 느네들만 즐드셈!

▲ 김기슭 SBS 편성기획팀 PD

그런데 가만, 이제는 맥줏집 노가리가 죄다 러시아산, 땅콩은 중국산이다. 아놔, 그 사이 피폐해진 농어촌이여, 스러져간 농어민들이여. 투재~앵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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