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비판 언론사 임원 강제구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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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비판 언론사 임원 강제구인 논란
[글로벌] 프랑스 / 표광민 통신원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 승인 2008.12.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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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알권리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충돌할 때 언론은 보도에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정부권력이 사생활 보호에 손을 들어주면서 언론이 억압받는 일이 있었다. 문제가 복잡한 것은 프랑스 정부가 보호하고 있는 사생활은 소시민의 것이 아니라 거대 기업 회장의 것이었고, 억압받은 언론은 줄곧 정부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28일, 인터넷 업체인 프리(Free)의 창업자 자비에 닐(Xavier Niel)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의 임원인 필리피스가 강제구인됐다. 이 과정을 상세히 보도한 리베라시옹의 12월 1일자 기사에 따르면, 아침 6시 40분 집에 있던 필리피스는 두 아들이 보는 앞에서 4명의 경찰관에 의해 끌려갔다고 한다. 그는 친지나 변호사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수 없었으며 단지 14살인 첫째 아들에게 10살 난 동생을 학교에 바래다주라고 얘기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 프랑스 잡지 에 실린 필리피스 강제구인 사건 관련 기사. <사진제공=‘Le Point’>

그는 경찰서에 와서야 자신이 구인당한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됐다. 2006년 자신이 리베라시옹의 편집장이던 시절, 신문에 났던 닐의 소송에 관한 기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던 것이다. 그는 수사판사 앞에서 조사를 받은 뒤 11시 경 풀려나왔다. 곧이어 리베라시옹과 연락한 필리피스는 “경찰은 나를 범죄자처럼 대했다”고 말했다.

리베라시옹을 상대로 고소를 한 자비에 닐은 80년대부터 프랑스 정보통신 사업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업가로 현재 ‘프리’라는 인터넷 사업체의 대표다. 그러나 그는 각종 위법혐의로 조사를 받아오고 있었다. 2006년 10월에는 공금횡령 혐의를 받아 집행유예로 징역 2년과 25만 유로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이 재판 때부터 닐은 리베라시옹을 상대로 한 여러 번의 명예훼손 고소를 시작했다.

그러다 고소를 받은 지 2년 여 만인 지난 11월 28일 필리피스가 “대중매체를 이용해 특정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아침부터 자택에서 체포당한 것이다. 강제구인을 지시한 수사판사 뮤리엘 조지에(Muriel Josie)는 필리피스가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강제구인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주 우려가 없는 기자에 대한, 소송이 제기된 지 2년만의 강제구인은 당연히 프랑스 기자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리베라시옹을 비롯한 여러 언론사와 기자조합에서는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기자들의 반발이 거칠 것을 우려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12월 1일 필리피스의 강제구인 사건에 대해 자신도 유감스러워하고 있다며, 내년 초부터 명예훼손죄의 개정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에는 아랑곳없이 12월 3일 리베라시옹지에는 6개의 프랑스 기자조합이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에 수갑이 채워졌다”고  현재 상황을 비유했다. 그들은 “전체주의 사회를 다룬 영화를 웃기게 리메이크 한 것 같다”고 필리피스 강제구인 사건을 비꼬았다.

이 성명서에서 기자들은 필리피스 강제구인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취임 이후 취해진 정부의 언론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정부의 언론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을 표했다. 성명서는 프랑스에서 신문의 자유와 관련된 여건이, 정보부가 1974년 폐지되기 전까지 방송뉴스를 검토하는 시절과 같다고 비판했다.

필리피스에 대한 강제구인에 대해 법적인 측면에서도 논쟁이 번지고 있다. 프랑스 변호사 조합은 필리피스에 대한 지지 시위에 참가하면서 “필리피스의 경우와 같은 불필요한 강제구인이 프랑스에서는 매일 일어나고 있다”며 “필리피스 건은, 변호사와 시민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치안 과대화에 대해 경계해야 됨을 일깨워준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프랑스 고등교육원(EPHE) 제 5분과 정치철학 박사과정

언론사가 한 개인을 명예훼손하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지만, 한 언론사의 임원을 범죄자 취급할 만큼 심각한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명예훼손의근거가 거대기업 대표의 유죄판결에 대한 자세한 보도이고 강제 구인된 기자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 소속이라면, 문제는 개인과 언론사 사이가 아닌 뒤편에 있는 정부권력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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