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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PD의 터닝포인트]

▲ 이채훈 MBC PD
얼마 전 아침방송을 보니 아들이 망보고 아버지가 훔치는 부자 절도단 얘기를 전하고 있었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가족이 생계형 범죄에 가담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 돈 없어 아이를 못 키우고 버리는 사람들 얘기가 이어졌다. 10년 전 ‘IMF 고아’가 발생하여 큰 우려를 낳았는데,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채플린의 영화 <키드>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화가에게 버림받고 생계가 막막해진 한 여인(에드나 퍼바이언스 분)이 아기를 자동차 안에 버린다. 꼬마 존(재키 쿠건 분)은 빈털터리 채플린의 보살핌으로 예쁘게 자라난다. 5년 뒤, 이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 꼬마가 돌을 던져서 이집 저집 유리창을 깨면 채플린이 따라다니며 유리를 갈아 끼워 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합작한 범죄인 것이다. 아침방송에서 본 내용과 똑같다.

채플린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생계가 어려운 어머니와 헤어져서 고아원에서 자랐다. 1921년 개봉한 이 영화는 채플린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자전적 영화로, 20세기 초 영국의 암울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첫 자막은 ‘미소, 그리고 아마도 눈물이 있는 영화’. 가진 것 하나 없어도 꼬마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채플린, 그리고 구김살 없이 자라나는 꼬마의 해맑은 모습이 시종일관 미소를 자아낸다. 꼬마가 유리를 깨고 채플린이 고치다가 발각되어 도망치는 장면에서는 폭소도 나온다. 그렇다면 눈물은?

어느 대목에서 몇 번이나 눈물이 나는지 세어보았다. 두 번째 자막, ‘여인, 그녀의 죄는 어머니라는 것’에서 벌써 울 준비가 된다. 그녀가 부잣집 자동차에 아이를 버리는 대목, 다른 집 아기를 보며 자기 아이를 떠올리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인기 배우가 된 어머니가 빈민가에 자선하러 왔다가 꼬마와 마주치는 대목에서는 결국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이 꼬마가 바로 자기 아이인데 여인은 알아차리지 못 하는 것. 이 장면들의 공통점은? 위대한 모성이 가난 때문에 상처입고 수난당하는 대목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찰리 채플린의 영화 <키드>
복지시설 사람들의 완력에 끌려가며 절규하는 꼬마의 모습에서 또 눈물이 쏟아진다. 이어서 채플린이 지붕 위를 달려서 차를 추격, 아이를 다시 찾는다. 채플린의 단호한 힘은 ‘키운 아버지’의 사랑을 넘어 ‘위대한 모성’ 그 자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다. 이윽고 눈물이 마르고 다시 미소를 짓는다. 몇 번 울게 되는지 세는데 실패했다. 아무렴 어떠랴…. 어머니는 결국 아이를 찾게 되고, 5년 동안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준 채플린을 부른다. 해피엔딩이다.

다시 우리나라. 복지 체계가 취약하고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숭숭 뚫린 이 나라, 100년 전 어린 채플린이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이 지금 이 땅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리고 가족이 함께 절도에 나선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계 불황으로 무역량이 줄어든 지금,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 서민 복지를 확대하는 게 시급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 정부는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고 건설기업만 키우려 한다. 이러한 정책이 지속되는 한 서민들의 좌절과 생계형 범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새해, 희망의 조건을 애써 찾으려는 동료 PD들의 회의가 한창이다. 바늘구멍 같은 희망의 씨앗을 찾는 일이 수월치 않아 보인다. 마음을 멍들게 하는 소식이 연일 이어진다. 우리 사회 6가구 중 한 집의 가장이 실직 상태다. 대학생들의 새해 꿈 ‘실업률 0% 사회’는 공허한 꿈일 뿐이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일제 단속 뒤 이들이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 TV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11월 24일, 미국 LA동포들 앞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지도자는 희망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이 희망을 얘기해도 냉소의 찬바람만 휑하니 불 뿐이다. 
 

▲ 겯향신문 12월17일자 10면
언론은 어떤가.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낙하산을 투하, 방송을 거의 장악했다. ‘7대 미디어 악법’은 이러한 불법 침탈에 합법의 외양을 씌우려는 술수일 뿐이다.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어야 할 언론계가 획일화된 장사판으로 전락할 위기다. 일부 노조는 이기적 생존욕구에 파묻혀 언론의 정도를 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새삼 자문해 본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있다. 미소 하나, 눈물 한 방울의 감동을 찾기 어려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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