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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식PD의 미국 리포트 (8)]

MBC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이 연일 감동을 자아내며 장안의 화제를 몰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풀을 뜯어먹는 곰을 보며 인간이 저지른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과 환경보호의 중요함을  동시에 느꼈을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각에서는 CO2에 의한 ‘지구온난화’ 주장이 사기라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고, 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나와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의 원인은 거대한  지구 역사속의 한 과정일 뿐이지, CO2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입니다. 필자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주장이 더 타당한지 판가름하기는 불가능합니다.

▲ MBC 창사47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MBC
그러나 최근 ‘지구온난화’에 대한 반박과 부정이 순수한 과학적 업적이라기보다는 미국 석유사업자의 음모로 인해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음모는 용어싸움에서 시작됩니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같은 현상에 대해 인간의 책임이 있나 없나를 놓고, 용어는 갈라집니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을  선호하는 쪽에서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Warming’은 화석연료로 지구를 달군다는 함의가 들어 있습니다. 이 용어는 1980년대부터 ‘온실가스(Greenhouse gas)’에 주목한 학자들에 의해서 널리 쓰여 왔습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도 너무 온건한 용어라고 해서 더욱 강력한 용어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 지구 과열(Global overheating)’, ‘기후 혼돈(Climate Chaos)’, ‘기후 붕괴 (climate Meltdown)’ 등의  용어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책임이 없다는 쪽에서는 ‘기후 변화(Climate Change)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최근의 현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그냥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입니다. UN은 절충안을 택했습니다. 지구가 더워지는데 대해 인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용어는 ‘기후 변화’를 택했습니다.  ‘기후변화협약’ 같은 예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UN의 이러한 용어채택은 석유사업자들의 치열한 로비의 산물이었음이 각종 문건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UN의 공식적인  용어에서 ‘지구 온난화’라는 말을 빼고, ‘기후 변화’라는 말을 대신 집어넣는 것이었는데, 결국 성공했습니다. 덧붙여 말하면, ‘온실 가스’가 국제적인 용어가 된 것도 ‘이산화탄소(Carbon Dioxide)'라는 용어를 배제하려는 사우디 등의 산유국의 로비의 산물입니다.

석유사업자들은 UN의 공식 용어 채택에 그치지 않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본격적인 반박에 나섭니다. 석유사업자들을  가장 크게 위협한 것은 1997년 12월 온실가스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에 클린턴 정부가 가입한 것이었습니다. 

1998년초부터 액슨 모빌(ExxonMobil) 등은 이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미국석유연구소와 함께 ‘ 지구 기후 과학 팀(Global Climate Science Team)’을 비밀리에 만들어 끊임없이 ‘지구 온난화’에 주장에 대해  의심이 들게 하는 작업을 합니다. 이들의 음모를 파헤친 언론은 바로 뉴욕타임스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지구 기후 과학 커뮤니케이션 행동(Global Climate Science Communications Action Plan)’이라는 문건을 입수하여 이들의 음모를 폭로했는데, 이 문건에 따르면 이들은 기후 과학에 대해 산업론적 관점을 공유하는 과학자들을 모집하여 이들을 집중 훈련시킨 뒤 미국 언론, 정치인들에게 접촉시켜 ‘지구 온난화’ 주장의 근거가 대단히 불확실하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 공화당도 가세했습니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이론가 프랭크 룬츠(Frank Luntz)는 ‘지구 온난화 토론에서 이기는 법’이라는 선거전략 문건에서 “대선토론에서 ‘지구온난화’ 주장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불완전한 주장인지를 끊임없이 주장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대신 덜 충격적인 ‘기후변화’ 용어를 쓰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 백악관 고위 관료가 조작한 '지구 온난화'보고서 와 조작 필체
부시 정권하의 백악관은 한술 더 떴습니다. 백악관의 ‘환경의 질 위원회(Council on Environmental Quality)의 고위 관료인 필립 쿠니(Philip A. Cooney)는 미국 행정부와 과학자들이 제출한 문서를  뜯어 고쳤습니다. 사소하게는 ‘불확실성’이라는 말 앞에 ‘중대하고 근본적인’이라는 말을 붙여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일에서부터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인 주장을 모두 삭제해버리는 중대한 조작까지 저지릅니다.

▲ 박건식 MBC PD
더욱 놀라운 것은  백악관의 ‘환경의 질 위원회’  고위 관료 필립 쿠니(Philip A. Cooney)가 사실은 석유사업자들이 비밀리에 만든 ‘지구 기후 과학 팀(Global Climate Science Team)’의 책임자이자 석유사업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 석유 연구소’의 로비스트였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시 정권과 석유사업자들의 커넥션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논쟁은 당연히 충분히 벌일 수 있고,  주장의 근거를 따져보는 것은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처럼, 석유사업자들의 이해를 위해 과학과 방송이 도구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북극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곰을 살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1996년 ‘에스키모의 365일’이 방영된 지 13여년 만에  다시 그 현장을 찾아간  다큐멘터리팀이 발견한 것은 바로 ‘북극의 눈물’이었고 ‘북극의 절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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