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방송] EBS ‘세계의 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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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방송] EBS ‘세계의 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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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2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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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세계의 명화’ ⓒ EBS
방송 : 2008년12월20일  23:35:00
담당 : 글로벌팀 이협희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 나카다이 다츠야, 테라오 아키라, 네즈 진파치, 류 다이스케, 유이 마사유키
제작 : 일본, 프랑스 / 1985년
방송길이 : 160분
나이등급 : 15세

줄거리

16세기 일본 전국시대, 손님들과 함께 멧돼지 사냥을 끝낸 성주 이치몬지 히데토라(나카다이 다츠야)는 일흔의 나이로 자신의 권력을 아들들에게 넘겨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사냥을 함께 한 다른 영주는 자신의 딸을 그의 아들과 혼인시키려 한다. 아들들을 따로 불러 모은 그는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라며 장남인 타로(테라오 아키라)가 자신의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 것이라 선언한다. 그리고 둘째, 셋째 아들인 지로(네즈 진파치)와 사부로(류 다이스케)에게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성과 그에 딸린 영토를 주겠다고 한다. 자신은 난세에 외곽에서 호위대를 거느리고 자식들에게 기대어 안락하게 여생을 보낼 생각이라는 것. 하지만 막내인 사부로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망령이 들었다고 비난하게 되고 이에 분개한 히데토라는 사부로와 절연한다. 충직한 탄고(유이 마사유키)가 사부로를 감싸지만 그는 들은 채 만 채다. 사부로는 형제들 사이의 권력투쟁을 예견했던 것. 그 과정을 지켜본 후지마키는 사부로를 자신의 영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처음에는 권력에 별로 욕심이 없었던 장남 타로가 ‘모든 권력과 호칭을 넘겨받지 못하면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아내 카에데(하라다 미에코)의 부추김에 차츰 히데토라의 권력을 완전히 차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 히데토라가 타로의 부하를 화살로 쏴 죽이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갈등이 점점 고조된다. 분개한 히데토라는 본성을 나와 지로의 성으로 가게 되나 미리 타로의 급전을 받은 지로의 태도에 히데토라는 지로의 성마저 나와 헤매다 결국 3번째 성에 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이었고 바로 다음날 타로와 지로의 연합군이 성을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장남 타로가 전사하게 되고 지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결국 성이 함락되고 히데토라는 거의 미친 사람이 된다. 그러면서 사부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주제

<란>은 셰익스피어 작품인 <리어왕>을 일본 시대극으로 옮긴 작품이다. 한 영주가 3명의 아들에게 자신의 영토를 나누어 주자, 막내아들이 형제들끼리의 우애를 믿지 말하며 충언 한다. 결국 막내아들의 우려 섞인 예언은 현실이 되고 아버지와 형제들 간에 유혈이 낭자한 싸움이 계속된다. ‘문학의 셰익스피어’처럼 ‘영화의 셰익스피어’가 되고 싶었던 구로사와 아키라는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란>을 만들었다. 형제들간의 다툼과 광인이 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조소하고 있다. <카게무샤>(1980)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후 5년 뒤 만든 <란>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마지막 시대극이라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자신의 장기와 주제의식이 깊게 발현된 영화다. 더불어 그의 영화들 중 가장 염세적이고 비극적인 정서의 영화라 할 수 있다.

감상 포인트

영화 속에서 타로는 노란색, 지로는 빨간색, 사부로는 파란색 옷을 걸치고 있다. 그것은 굉장히 인상적이고 상징적이지만 일본 전국시대의 사실적인 고증과는 거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원작이 <리어왕>인 만큼 동양과 서양이 혼재된 이미지, 어디에도 없는 ‘포스트모던’한 이미지들의 연속이다. 노년의 구로사와 아키라가 시도한 판타지라고나 할까. 그만큼 <란>의 이미지는 초현실적이며 탐미적이다. 특히 집단 군무가 만들어내는 잔혹한 전투장면의 광활한 스펙터클은 백미라 할 수 있으며, 불타는 성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넋을 잃고 계단을 내려오는 히데토라의 모습은 영화사를 빛낸 명장면들 중 하나로 늘 회고되는 이미지다. 이후 <란>을 뛰어넘는 스펙터클을 만들어낸 아시아 영화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

191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등의 책을 탐독하고 미술에 관심을 기울인 사춘기를 보내며 24살 때 도호영화사에 취직했다. 그러다 드디어 <스가타 산시로>(1943)로 데뷔했고 <들개>(1949) 등 일련의 현대 장르영화들로 주목받았다. <라쇼몽>(1951)은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그를 국제적인 거장 반열에 올려준 작품이다. 초반부에 나무꾼이 숲속으로 나무하러 가는 장면에서 라벨의 음악 ‘볼레로’를 깐 것 등 그는 분명 일본 시대극을 만들면서도 서구적 감각을 덧씌웠다. <7인의 사무라이>(1954)는 세계적으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사무라이 활극의 걸작이며,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은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만드는 데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한 작품이다. 특히 <7인의 사무라이>는 산적들의 습격을 견디다 못해 농민들이 사무라이들을 고용해 산적들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 존 포드의 서부극을 빼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서구양식과 일본양식을 버무리는 데 천재였으며 가부키와 노 등 전통적인 일본 예술은 그의 영화를 통해 서구에 효과적으로 알려졌다. 조지 루카스는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등의 현대 미국감독들이 경배해마지 않는 감독이 바로 그다. 더불어 그는 ‘영화의 셰익스피어’가 되길 꿈꿨는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일본식으로 옮긴 <거미의 성>(1957)에서 절정에 달했다. <요짐보>(1961) 와 <쓰바키 산주로>(1962)도 도시로 미후네와 함께 그의 변함없는 인기를 보여줬지만 그의 전성기는 <붉은 수염>(1965)을 기점으로 하강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일본영화산업이 기울면서 그의 높은 제작비는 부담이 됐던 것. 심지어 <도라, 도라, 도라>의 감독직에서 해임되고 <도데스카덴>(1970)마저 흥행에 실패하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 합작의 <카게무샤>(1980), 프랑스 자본의 <란>(1985), 마틴 스콜세지가 우정출연한 미국 자본의 <꿈>(1990) 등은 구로사와 특유의 연출력과 스타일을 확인하게 해준 작품들이다. 이후 리차드 기어 주연의 <8월의 광시곡>(1991), <마다다요>(1993)를 끝으로 1998년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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