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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PD의 터닝포인트] 조병옥 묘에서 생각함

▲ 이채훈 MBC PD
수유리에서 북한산 올라가는 길목, 냉골과 범골 갈라지는 곳에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의 묘가 있다. 잘 정리된 묘소 아래쪽, 관리인이 사는 집 앞에 작은 비석이 하나 있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

생전에 조 박사가 한 말을 새겨 넣은 이 에피타프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한 얘기인지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 건국의 일등 공신이라는 칭송부터 친일 경찰을 부활시켜 민족 분열을 악화시킨 장본인이라는 비난까지 다양하다. 그는 좌익세력을 반드시 제압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군정청 경무부장을 맡아 이 신념을 강력히 실천했다. 그는 우익 단체들을 조직, 좌익 세력을 물리력으로 제압했다. 남북합작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는 경계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결정되자 그는 선거 치안유지 총책임자가 됐다. 이 시점에서 제주 4.3의 비극이 일어났다.

조병옥은 제주도에 서북청년단을 대거 파견, 폭력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는 초기에 진압을 맡은 국방경비대 9연대장 김익렬이 빨치산 지도자 김달삼과 협상을 시도한 것을 맹렬히 비난했다. 결국 그는 미군정의 윌리엄 딘 소장을 설득, 강경진압 방침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이 전해진다.

“(빨갱이 잡으려면) 제주도 놈들 다 죽여도 좋아.”  

사건 당시 제주 현지를 직접 취재한 김기오 기자 - 이 분은 현재 MBC 소속 경제통 김 아무개 기자의 부친이기도 하다 - 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인터뷰 해 준 내용이다. “당시 무장봉기로 5.10 선거를 방해한 사람들을 섬멸하기 위해서라면 일부 무고한 도민들의 희생도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미군정은 그해 가을부터 초토화 작전을 펴게 되고, 수만 명에 달하는 제주도민이 목숨을 잃게 된다. 아무리 그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는 말과는 안 어울린다.

▲ 한겨레 12월18일자 4면.
조병옥 박사가 제주도의 대학살에 대해 마음속 깊은 곳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은폐하고 싶다는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러나 이 짐작이 옳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

김기오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꿩 잡는 게 매”라며 친일 경찰의 등용을 합리화했다. 이런 극우 성향의 그도 1952년 부산정치파동 이후 이승만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대통령의 미움을 사 ‘국제공산당 사건’에 연루될 뻔 하는 등 탄압에 노출되었다. 그는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이승만에 맞설 예정이었으나 미국에서 병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조병옥 박사에 대해 여기서 평가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망각을 강요하는 이 정부와 뉴라이트의 집요한 공작이다. 4.3 당시 조병옥 경무부장의 행적을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국민들은 그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차츰 잊어 갔다. 그러나 여러 학자와 언론인의 뒤늦은 노력으로 당시의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졌고,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다. 이제 진실의 토대에서 서로 화해하고 미래를 향해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3월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의 이른바 ‘대안 교과서’가 나온 뒤 최근까지 상공회의소, 국방부, 통일부, 교육과학부, 서울시교육감, 한나라당, 심지어 대통령까지 줄줄이 특정 검정 교과서의 개편을 요구했다. 필자들은 아직 반발하고 있지만, 출판사측은 생존을 위해 이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제 4.19는 민주혁명이 아니라 ‘데모’이고,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은 ‘없었던 일’이 될 판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위해 4.3항쟁은 다시 ‘공산폭동’이 되어야 할 판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는 말은 기억하고 “제주도 놈들 다 죽여도 좋아”란 말은 잊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일관성이라도 있었다. 자신들의 죄악이 세상에 알려지면 불리하니까 국가보안법, 연좌제, 레드 컴플렉스를 총동원해서 눈 감으라 했고 입 다물라 했다.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게 되기 전에 악착같이 감추는 것, 이건 일관성이라도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잊으라고 한다. 자기들이 직접 저지른 학살도 아닌데 말이다. 총칼로 짓밟은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망각을 강요하려면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집단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사람들을 뇌사시키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이 일정하게 성공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뒤에 어떻게 되겠는가. 처음부터 다시 진실을 밝히려는 움직임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이다. 증언을 해 줄 사람이 점점 줄어드니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면 이를 백지화하려는 캠페인이 또 벌어질 테고…. 알고 있는 사실을 잊으라 하는 이 정부의 ‘역사 망각 정책’은 어느 모로 보나 ‘실용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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