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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세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그런데 어느 한 시점에서 국민이 한 선택을 근거로 4,5년 동안 어느 일방의 가치와 이익을 전국민에게 강요하는 현 정치구조와 선거제도는 반드시 바뀔 때가 되었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가치와 이익을 서로 나누어 가지자. 서로 나누지 않는 한 우리에게 참 평화는 없겠다. 이 세밑에 좌고 우고 진보고 보수고 서산에 해 넘어가는 걸 보거든 ‘나 진다!’고 통 크게 한번 읊조리면 어떠리.”

김형태 변호사가 <한겨레> 12월 16일자에 기고한 ‘좌우가 더불어 살 수는 있는 걸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신문칼럼에서 무슨 감동을 찾느냐고 비웃는 분들이 있겠지만, ‘신문칼럼에서 감동찾기’는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인 걸 어이하랴. 위 칼럼의 내용에 공감하고 감동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성찰을 위해 ‘생산적인 딴지’를 걸어보련다. 김 변호사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라마지 않는다.

▲ 한겨레 12월16일자 26면
김 변호사는 이런 칼럼을 노무현 정권 시절에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절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왜? 이념적․심정적으로 김 변호사는 노 정권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김 변호사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들어 <한겨레>에 이른바 ‘승자 독식주의’를 비판하고 개탄하는 글들이 많이 실리지만, 노 정권 시절 <한겨레>엔 그런 글이 거의 없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승자 독식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자 함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승자 독식주의’를 비판하고 개탄하는 분들이 왜 노 정권 시절엔 그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노 정권 시절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했던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2004년 12월 노 정권의 ‘코드 인사’가 비판을 받을 때, 정 수석은 “220V에다 110V 코드를 꽂으면 타버린다는 점에서 코드와 철학은 맞아야 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철학이 안 맞으면 같이 못 간다”며 “코드 인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럴듯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승자 독식주의’를 정당화하는 비유의 함정이 있다. 정치를 하는 세력중 한쪽은 220V요 다른 한쪽은 110V라고 보는 발상을 고수하는 한 가치와 이익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독식은 ‘정의(正義)’ 또는 ‘국익(國益)’의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미화된다. 지금 정 수석은 이명박 정권의 ‘코드 인사’에 대해선 무어라고 말할까? 모든 공직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옳은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을 무조건 따르는 게 옳다고 주장할까?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즐겨 하지만, 그건 우리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할 때가 많다. 지방 문제만 해도 그렇다. 서울에 사는 언론인․지식인들이 지방을 한번 돌아보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게다. 이들이 지방을 위한 발언을 해주면 안되는 걸까? 반대로 지방에 사는 언론인․지식인들은 지방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는 데에 전념하면 안되는 걸까?

지금 당장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긴 그렇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런 식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다. 이미 1964년에 이 메시지를 던진 <회전의자>(신봉승 작사, 하기송 작곡, 김용만 노래)야말로 한국의 영원한 국민가요가 아닐까?

지방을 위한 발언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만 나온다. 서울 사람들은 점잖은 자리에선 맞장구를 쳐주지만 속으론 “뭘 그렇게 핏대 올리니? 억울하면 서울로 이사오렴. 그게 다 능력 차이 아니겠니?”라고 생각하는 게 공식화되었다. 지금 이명박 정권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게다.

▲ 강준만 교수 (전북대 신문방송학)
“억울하니? 억울하면 정권 잡으려무나. 220V에다 110V 코드를 꽂으면 타버린다는데 코드와 철학은 맞아야 하지 않겠니? 방송쟁이들이 말을 잘 안 들어서 큰 일이지만, 조금만 더 있어 봐. 다 말 듣게 돼 있어. 서산에 해 넘어가려면 아직 4년이나 남았는데, 지들이 무슨 수로 버티겠니?”

‘승자 독식주의’는 조선조 이래 한국사회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각개약진(各個躍進) 체제의 산물이다. ‘승자 독식주의’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더 심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한국의 ‘1극 소용돌이’ 구조를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최근의 드라마 파동에서 불거진 스타 독식 현상도 바로 그런 구조의 산물이다. 이게 정녕 우리가 참고 견뎌야만 할 우리의 숙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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