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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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
[리뷰]16일 종영한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 김고은 기자
  • 승인 2008.12.24 0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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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의 첫 방송을 보름쯤 앞두고 노희경 작가를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드라마가 인기 있으려면 내용이 한 마디로 설명이 돼야 한대. 〈에덴의 동쪽〉을 봐,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잖아. 그런데 내 드라마는 그렇지가 않대.”

지난 16일 〈그들이 사는 세상〉의 종영을 지켜보면서 그 말을 떠올렸다. 〈에덴의 동쪽〉은 ‘두 집안과 형제의 엇갈린 운명과 복수’ 정도로 대충 요약된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세상〉은 아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아니면 드라마 PD가 연애하는 드라마?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각 인물의 캐릭터와 관계를 단순화 시키지 않기에 노 작가의 드라마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되 일면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사는 세상〉 또한 그랬다. 돌이켜보니 이것이 〈그들이 사는 세상〉의 한계, 아니 장점이었다.

▲ '그들이 사는 세상' 지오 역의 현빈(왼쪽)과 준영 역의 송혜교 ⓒKBS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던 〈그들이 사는 세상〉이 16부로 막을 내렸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노희경 작가가 애초부터 시청률을 노린데다가 송혜교와 현빈 등 톱스타들이 출연해 흥행을 점쳤던 작품이다. 하지만 시청률은 끝내 6~7%대에서 머물렀다. 팬들은 ‘VOD와 다운로드 이용자까지 합하면 1위’라며 애써 위로했지만, 결과를 뒤집진 못했다. 결국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번에도 ‘저주받은 걸작’ ‘마니아 드라마’란 꼬리표가 붙었다.

일견 의외의 결과다. 많은 시청자들은 그동안 ‘미드’ 같은 작품을 요구하며 국내 드라마 PD와 작가들을 꾸짖었다. 출생의 비밀, 불륜 코드를 힐난하고 〈CSI〉와 같은 전문직 드라마를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들이 사는 세상〉은 ‘미드’식 전문직 드라마를 요구해온 시청자들의 취향을 오랜만에 충족시킨 드라마였다. 기존에 방송가를 배경으로 했던 〈온에어〉나 〈스포트라이트〉 같은 작품과 비교해도 첫 손에 꼽힐만하다.

그런데 세련된 ‘전문직 드라마’였던 〈그들이 사는 세상〉을 시청자들은 외면했다. 아이러니다. 그토록 전문직 드라마를 요구해놓고 보지는 않는다? 시청자의 책임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 너무나 ‘전문’적이었다는데 있다. 누군가의 지적대로 ‘관계자용 드라마’였던 것이다. 방송가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시청자가 아닌 이상 연출과 조감독의 역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또 편성시간을 70분에서 80분으로 늘리는 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외주제작사와 방송사의 관계가 어떠한지도 눈치 채기 힘들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세상〉은 너무 많은 대목을 생략했고, 시청자들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사건도 없다. 지오(현빈)가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대형사건’은 크게 ‘한 방’을 터뜨리기보다 작은 갈등들을 유발하고, 부자라는 준영(송혜교)의 집안 배경은 서서히 극복해간다. 지오와 준영이 갑작스럽게 이별하는 순간에도 이해 못할 상황들은 벌어지지 않고, 초라함과 한계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유가 개입한다.

▲ '그들이 사는 세상' 준영 역의 송혜교와 표민수 PD(오른쪽) ⓒKBS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의 매력이다. 준영과 지오, 민철(김갑수)과 윤영(배종옥)이 사랑하고 일하는 순간들은 때론 진지하면서도 유치한 삶의 단면들을 꺼내 보인다. 판타지는 없고, 일상이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통속적인데, 드라마는 통속적이지 않다. 사유적이고 관조적이란 지적도 있었던 내레이션은 시청자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고, 생각 뒤엔 수긍하게 했다. 바로 이것이 나머지 단점들을 덮고도 남을만한 드라마적 성과이자, 시청자들이 “재미있다”가 아닌 “감사하다”는 말로 소감을 전하는 이유다.

우리 드라마는 매우 발전했지만 다양성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하다. 시청자들은 출생의 비밀과 불륜을 힐난하면서도 그런 드라마를 찾고, 선과 악의 대립처럼 단순한 드라마들을 즐겨 본다.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과 같은 드라마는 더욱 중요하다. ‘사람’을 단순화 하지 않고, 관계를 고민하며, 인물의 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시청자들이 인생 자체를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가 다양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시청률 참패라는 멍에 때문에 이 같은 시도 자체가 봉쇄되고 드라마가 획일적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데뷔 10년이 훌쩍 넘었고,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노희경 작가 같은 사람이 꾸준히 공부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더 반갑고 고맙다. 노 작가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 끝난 뒤, 반성하고 숙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반성을 마치고 숙제를 해결한 뒤 선보일 작품은 또 얼마나 나아져 있을까. 그의 다음 드라마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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