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한민국 미디어 2.0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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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한민국 미디어 2.0의 미래는?
재벌과 조중동에게 방송진출이 허용되면
  • PD저널
  • 승인 2008.12.3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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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을 비롯한 언론관계 7대 법률개정안이 한나라당의 강행으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재벌과 조중동 신문에게 지상파 방송 진출이 허용됐을 때 과연 어떨 일이 펼쳐질까. 앞으로 4년뒤, 2012년 한국의 방송시장을 상상 해본다. <편집자주>

Prologue. 2008년 12월 미디어 악법 발동. 

2012년 겨울, KBS에서 십 수 년을 일했던 고봉순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달, 2TV 민영화 절차가 완결되면서 청춘을 바쳐 일해 왔던 공영방송에 사직서를 던지고 가족들과 이민 길에 나선 참이다. 2008년 겨울, 미디어 악법 통과 후 파죽지세로 단행된 미디어 시장 초토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통탄스런 지난 4년 이었다.


起. 신방겸영 - 초토화되는 PP시장


불경기 때문에 실제로는 방송에 뛰어드는 신문사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은 그야말로 ‘물 타기’였다. 신문광고 시장이 축소일변도인 상황에서 신문의 방송진출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특히 광고주들과 특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족벌 신문들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신방 겸영의 첫 번째 희생자들은 중소 PP들이었다. 콘텐츠의 질은 둘째 치고, 광고 영업 경쟁에서 어찌 상대가 되겠는가!

그러나 막상 뛰어든 신문사들에게도 봄날은 길지 않았다. 이미 PP 광고시장도 신문광고 시장 못지않게 포화상태에 이른지 오래였던 것이다. 대기업 계열의 MPP들 조차도 매년 엄청난 규모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결국 야심차게 방송에 진출했던 족벌 신문들은 과거 MPP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콘텐츠를 값싼 수입물로 때우면서 예상외로 만만치 않은 진입비용과 운영비용을 근근이 메워나갔다.   

承. MBC 민영화 - 방송의 공적기능 괴멸

보다 돈 많고 통 큰 자는 급행열차에 바로 올라탔다. 안 그래도 자빠뜨리려고 했는데 정권에 대들기까지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족벌신문들의 물샐틈없는 엄호와 언론사 최대의 머리수를 자랑하는 KBS의 무관심 속에서 방통위는 재허가권으로 경영진과 방문진을 압박해 MBC 지분을 재벌+족벌신문 컨소시엄에 넘겼다. 새로운 주인의 입장에서 막장까지 간 레드오션인 PP시장과는 달리 아직은 버틸만한 지상파 광고 시장은 짭짤한 착수금에 불과했다.

어찌 정경유착이나 총수비리 같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힘든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 할 수 있는 메리트에 비하랴! 진입 비용과 당분간의 적자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경영권을 인수 하면서 직원들 왕창 정리하고, 이미 파트너 관계인 해외 미디어 기업에서 고품질 콘텐츠를 값싸게 공급 받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심산 이었다. 더욱이 민영 미디어랩이 도입된 상황에서 정 안되겠다 싶으면 자사 광고 물량을 왕창 밀어 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국내 최대 광고주고 다른 광고주들도 다 친인척들인데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이참에 거치적거리는 경쟁사들은 방송으로 직접 손볼 수도 있다는 점은 차마 내놓고 말하기 힘든 보너스였으리라! 마지막으로 진정한 대박은 방송을 통해 자사 제품과 기업 이미지를 음으로 양으로 소비자들에게 마음껏 홍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홀로 남은 KBS가 이렇듯 막강한 재벌 방송에 대항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 이었다. 사실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에 입 다무는 조건으로 아주 적은 수중의 수신료를 인상 받았다. 하지만 일치감치 비판적 저널리즘을 포기한 해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은 데다, 수신료 인상만 철썩 같이 믿고 구조조정까지 했는데 그 인상폭이 오히려 바터로 받은 광고 축소분에 턱없이 모자라 경영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KBS에서 빠져나간 광고재원은 민영미디어랩을 통해 고스란히 새로운 민방에게 돌아갔고 이 돈으로 이들은 몇몇 스타급들의 전속 출연료에 베팅해 방송계는 또 다시 거품과 과당경쟁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이미 피폐해진 KBS가 이런 환경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길은 만무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가까스로 단행된 수신료 인상은 KBS의 공영성 강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 방송에 뛰어든 재벌과 족벌신문 커플을 위한 축의금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轉. 2TV 민영화 - 미디어 Slum의 완성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어디 남 잘되는 꼴을 두고 보았겠는가! 경쟁자의 기쁨은 언제나 나의 슬픔이라는 잔인한 훈련으로 무장된 또 다른 재벌은 PP시장에서 물먹고 있던 또 다른 족벌언론과 손을 잡고 2TV를 요구해왔다. 이번엔 MBC때 보다 훨씬 쉽게 일이 진행되었다. 일단 MBC만 내주면 자신들은 수신료로 편하게 먹고살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옆으로 비켜서 있던 KBS 구성원들에게 저항의 동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 PD저널 2008년 1월 23일 종합5면
더욱이 MBC 민영화와 KBS의 순치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도 지상파 방송을 “공적 미디어”로 여겨 지켜야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구성원들에게 닥친 칼바람은 MBC때의 경우보다 더욱 혹독한 것이었다. 일단 기존 KBS를 분할 해 인수하는 형식이 아니라, 아예 채널만 회수해가고 고용 승계 등의 문제는 시장에 맡기는 방식이었다. 오직 극소수의 스타급 연출자와 앵커들만이 개별적으로 스카우트되었다. 이미 PP사업을 운영해 오면서 웬만한 인적 물적 인프라는 갖춰 놓은 상태에서 고용승계는 낭비 중에 낭비였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집 한 채를 빼앗긴 KBS는 별안간 높아진 인구 밀도 때문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수신료 인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건 정말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결국 당장 채널이 줄었으니 수신료를 깎으라는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정권과 국회는 이러한 여론을 핑계로 수신료인상 요구를 쌩까버렸다. 결국 KBS에는 사상 초유의 구조조정이라는 슬픈 결말이 이어졌다.   

結. 남겨진 자들의 절망

결국 지난 10년간 어렵게 쌓아온 방송의 공적(公的) 구조는 단 4년 만에 사적(私的) 독과점 구조로 변질 되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가장 먼저 당황한 이들은 의외로 규제기관 공무원들과 방송시장에 뛰어들지 못한 광고주들 이었다. 적어도 공적 구조속의 방송사들은 비록 까칠하고 뻣뻣해 규제하는 맛은 안 났지만 교묘한 로비와 압력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집단은 아니었다. 코바코 체제가 답답하긴 했어도 적어도 기회의 균등성은 보장해 주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기업과 정부가 통째로 재벌과 족벌 신문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었다. 

또한 한류 부흥과 같은 콘텐츠 산업육성의 희망도 사라졌다. 90년대 영화산업에 뛰어 들어 헛물을 켰던 과거가 말해 주듯이, 문화산업은 주가에 흔들리는 상장기업이나 표준화에 익숙한 대기업에게 적합하지 않은 분야였다. 장기화된 불황과 맞물려 사영화(私營化) 된 방송환경에서는 그 옛날에 그러했듯이 광고가 잘 팔리는 주 시청시간대에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스타스키와 허치”와 같은 외화들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자국 콘텐츠가 국내외적으로 경쟁력 떨치는 나라가 공영방송 체제가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국이라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다. 이것이 초과 수익을 주주와 사업자에게 돌리지 않고 창의적 기반에 전액 재투자 하게 하는 “건전한 공적 독과점의 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우울한 시나리오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국민과 시청자였다.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대한 제대로 된 견제와 다양한 계층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기능을 상실했을 때, 그 피해는 전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재벌과 권력에 대한 고발과 문제제기는 기대하기 힘들어 졌다. 억울한 소비자의 피해는 지리한 행정절차나 소송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수자의 몫으로 배당된 것은 구색 맞추기용 모금 방송이 전부이지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지적은 기대하기 어려워 졌다.    그리고 이 우울한 결말의 가장 큰 책임은 치열하게 맞붙어야 할 때 방관으로 일관하다가 초라하게 내몰린 고봉순에게 있었다.

Epilogue. 2012 American Media 2.0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현 정권이 그토록 닮고자 노력했던 미국의 변화였다.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 이후 출범한 오바마 정권은 다른 거시경제 정책과 마찬 가지로 미디어 정책에 있어서도 시장주의를 포기하고 “매체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정책들을 펴나갔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오바마가 거대 기업의 미디어 교차 소유에 의한 여론 독과점 현상을 민주사회의 가장 큰 위해 요소로 여긴 점이다.

오바마는 이미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2008년 5월, ‘도건, 로트, 오바마 법’을 통과 시켜 FCC의 미디어 교차 소유 허용 기도를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그 후 오바마는 집권초의 미디어 관련 공약들을 꾸준히 추진하고 안착시켰다. 결국, 2012년 현재 극심한 불황을 겪고도 미국사회가 분열하지 않고 안정 속에 경제를 회복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오바마가 미디어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사회를 통합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유통기한이 10년씩 뒤떨어진 미국의 실패한 정책들만 골라서 수입해 실패 사례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정부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과 그 국민들에게 경제 회복의 길은 멀기만 한 현실이었다.

"I strongly favor diversity of ownership of outlets and protection against the excessive concentration of power in the hands of any one corporation, interest or small group. I strongly believe that all citizens should be able to receive information from the broadest range of sources. I feel that media consolidation during the Bush administration has had the effect of eliminating a lot of the diversity of information sources available to persons who have to rely on more traditional information sources, such as radio and television broadcasts and newspapers."

“나는 채널 소유주체가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특정 기업이나 이익집단에게 힘이 집중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력히 지지한다. 나는 모든 시민 대중들이 보다 다양한 소스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 진행된 미디어 기업들 간의 합병은 라디오, TV, 신문 등과 같이 보다 전통적인 매체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소스로부터 정보를 얻을 기회를 상실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8. 6. 오바마 언론 인터뷰에서 발췌


※ 이 글은 KBS PD협회보 171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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