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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물었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영애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심한 얼굴로 딴청을 하고 있으면 유지태가 그렇게 묻습니다. 그 영화가 좋아서 두 번이나 보았습니다. 참으로 낭만적인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낭만성으로는 날아오는 고통의 화살을 피할 수 없습니다. 11월의 어느 날, 사무실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고사를 지냈습니다. 축문도 거창하게 썼습니다. 우리가 하는 이 작업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촬영을 축원하는 자리였습니다.

미얀마의 새벽, 붉은 가사의 스님들이 길게 늘어서 마을을 돌며 밥과 반찬을 구하러 다니는 탁발 씬을 찍었습니다. 50여분의 스님들이 계셨는데 아무래도 더 좋은 그림을 위해서는 그 행렬을 멈추게도 해야 하고 기다리게도 해야 했습니다. 그분들은 아무 말 없이 촬영팀을 기다려주었고 마을사람들도 낯선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인레 호수에서는 주인공의 고기잡이를 찍다가 앵글의 빈 공간이 있어 지나가는 마을여자에게 뒤쪽에서 노를 저어 왔다 갔다 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만족할 만한 그림을 찍었고 카메라를 돌려 다른 쪽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다시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여전히 마을의 여인은 우리가 지정해준 장소에서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도 된다고 하니까 그제야 배를 돌려 가던 길을 갑니다. 특별히 바쁠 것도 없고 손해 볼 것도 없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 그러한 분위기속에서 내 욕심대로 일이 되어가니 기분이 좋았음은 물론입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투입한 노력과 돈이 얼마인데,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화도 나지 않고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말을 고르자면 ‘허망함’이었습니다. 더 좋은 그림을 얻으려는 나의 탐욕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습니다. 어떤 날은 맨발의 스님들을 뙤약볕아래 탑들 사이로 걷고 또 걷게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허망해서 맥이 탁 풀렸습니다.

회사가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장기 프로젝트가 갑자기 중단되는 것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으며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회사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때에 내 프로그램만은 중요하므로 손대지 말라는 것도 이기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변수, 종교적인 역학까지 거론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프로젝트를 살려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낭만적인 감상이나 공격적인 분노는 갖지 않으려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한가지입니다. 변하고 또 변합니다. 오직 변합니다. 변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고통을 가져올 뿐입니다.

▲ 최근영 〈KBS스페셜〉 PD

다시 사랑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랜 사랑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변하지 않으면 사랑은 지속되지 않으며 짜증과 권태와 분노와 의무만이 남는다는 것을. 이전의 감정이란 이미 가고 없으며 우리는 매순간 다른 사랑을 탄생시키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상대는 매번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나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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