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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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뻔뻔스러운 희망과 우리들의 바보스러운 절망
  • 승인 1997.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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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불행하게도 또 다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권력층이 거의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지만, 대학교수들로부터 시국선언을 당했다(?)는 것은 지금의 정부가 역대 집권층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국민들의 절망감도 끝에 다다랐는지, 이제 웬만해서는 정치판 돌아가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어디가 잘못 되었는가를 따져볼 수 없을 정도로 총체적이고도 뿌리 깊은 권력층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그들의 하염없는 무책임이 국민들을 절망으로 몰아가는 것이리라. 선거철인지라 tv에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 이야기를 시키는 가운데, 어떤 풍채 좋은 집권당 인사의 발언 한 대목이 예민한 내 귓구멍을 찔렀다. 나라꼴이 이 지경에 처한 원인을 따지는 도중에 그는,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 된 데는 국민들도 책임이 있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당당하게 하는 것이었다. 총체적 난국의 일단을 책임져야 할 집권층 인사의 발언으로서는 참으로 해괴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집권자들의 거짓말에 속고 위협당해 참정권을 올바로 행사하지 못한 것이 국민들의 죄라면, 막상 국민들을 어르고 뺨쳐 표를 거둬가고 참정권을 봉쇄한 자신들의 죄는 얼마란 말인가? 뻔뻔스럽게도 국민들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집권자들은 과연 망가지는 이 나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기나 한가?우리끼리 얘기하자면, 사실 국민들도 책임질 부분은 있다. 한 때 어디에선가 손가락 잘린 환자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병원이 마비되었더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누구누구를 찍어준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를 한 나머지 표 찍었던 손가락들을 마구 잘라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권력자들이 아닌 일반 국민들끼리의 얘기다. 설 국민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똑같이 한심한 국민들끼리 서로를 쳐다보며 ‘그런 놈들을 찍어준 우리가 잘못이지…’라며 쓴웃음을 짓거나, 좀 더 희망적인 사람들이라면 ‘이 놈들 어디 이 다음 선거 때 보자’고 이를 앙다무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권력자가 국민들을 향해 ‘너희들도 책임…’ 운운한다는 것은 그가 도덕불감증 환자이거나 치사한 책임회피자임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또 죽은 박정희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흔히 새로 온 상관이나 지도자를 평가하면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격언 비슷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부하의 총을 맞고 비명횡사한 독재자를 전설적인 영웅으로 환생시켜 떠받들고자 하는, 마치 사이비종교와도 같은 이 문화현상은, 일제시대를 겪은 어른들이 가끔 ‘그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과는 또 차원이 다른, 하나의 신드롬으로 불러 마땅할 만큼 해괴하다.박정희 시대 말기에 암흑같은 대학시절을 보낸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지식인들의 인생을 앗아간 희대의 독재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독재자라는 것이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존립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박정희에 대해서도 당연히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게다가 요즈음의 박정희 신드롬은 대통령으로서의 행적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아니라, 국가경제력 강화라는 일면만을 기준으로 하거나 함량미달의 후대 대통령들과 대비되는 그의 개인적 성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찬반 어느 한 편으로 결론이 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박정희에 대한 평가 따위보다는, 신드롬이라 표현될 만한 국민들의 바보같은 절망감이 더 걱정스럽다. 그 후의 대통령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부하에게 총맞아 간 독재자를 다시 그리워하게끔 되느냐는 것이며, 지도자에 대한 사람들의 절망감이 얼마나 사무치면 죽은 자를 마음속으로 되살리면서까지 강력한 지도자상을 그리게 될까 말이다. 하지만, 절망감의 표현이 옛 독재자의 망령을 환생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는 없다.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고 올 만한 지도자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며, 국민들의 노력과 희생없이 지도자의 힘만으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바에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그리움이란 특수한 시대상황에서 생겨날 수 있는 퇴행적인 군중심리일 뿐이다. 게다가, 높아진 국가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인간다운 조건에서 살고 있으며 얼마나 희망적인 미래상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자신있게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pd연합회장·본보발행인>|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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