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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40)]

▲ 고승우 박사
정치는 극한 상황에서도 TV를 의식한다. MB 악법의 하나로 지칭된 미디어 관련법의 국회 통과를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치권이 TV를 중심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 두어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국회 경위들이 야당 쪽 농성 현장을 향해 돌격, 야당 의원 등과 육탄전을 벌인 시간대는 지상파 TV 주요 뉴스 시간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악법 저지를 외치는 야당이나 관련 법안 통과를 주장한 여당의원들은 한결같이 TV 카메라 앞에서 유권자, 시민에게 호소하려 애를 썼다.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의식하고 미디어를 통해 국민에게 호소하려 하는 것은 일상적인 현상의 하나다. 미디어의 정치적 역할이 커진 것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현상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정치 선진국에서는 유권자들의 정치 무관심이 일반적이라 투표율 30%대 전후에서 당락이 결정된다. 이는 정치가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의미를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TV 등 미디어는 정치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강력한 기능을 하는 시스템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정치인들이 박 터지게 싸움을 하다가도 TV 카메라 앞에서는 정색을 하는 것이 유권자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유익한 현상이다.

정치의 미디어화(化)는 저널리즘이 시민사회의 대변자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정치의 권위와 그 힘에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정치 집단과 달리 대중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아직 미디어를 대체할 만한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의 현재와 같은 역할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우리 국회 의원들의 경우처럼 정치인의 성패는 TV와 인터넷을 통한 유권자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된다. 한나라당이 재벌과 족벌신문에게 방송사 소유의 길을 터주려 시도한 것은 이런 점을 감안해서 TV 방송사 신설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려 한 것과 같다. 민주주의를 전진시키기 위해서 재벌의 방송사 소유나 신문, 방송의 겸업 허용은 매우 부적절한데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억지를 부린 것은 정치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형성하자는 음험한 속셈이다.

권언유착은 독재정치 체제에서 언론이 정치에 예속되는 방향으로 간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경우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정치가 결국 언론에 종속되는 방향을 피할 수 없다. 정권은 유한하고 자본의 생명은 그 보다 길기 때문이다. 이런 간단한 이유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재벌과 족벌신문이 소유한 미디어는 중장기적으로 정치를 지배하게 된다. 비정상적인 미디어가 정치를 지배할 때의 비극적 상황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 국회 사무처가 지난 3일 오후 12시 47분께 경위 등 100여명을 동원해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농성중인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들에 대한 강제해산을 시도했다.
언론 악법은 청와대의 속도전이 실패하면서 향후 여야 합의 형식으로 국회심의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그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시민사회가 노력하면 저지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언론노조와 시민사회, 야당들이 지난 연말이래 국민을 향해 언론악법의 부당성을 널리 알렸고 향후 총파업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권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MBC를 비롯해 EBS, CBS, 지역 신문과 방송사들이 총파업을 통해 단합된 행동을 실천한 바 있고 KBS노조도 동참할 예정이어서 언론 악법 저지는 향후 더 용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사회는 여권의 언론악법 강행 추진과 좌절을 목격하면서 미디어와 민주주의 전반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는 정치로부터 독립한, 자율적 존재로 인식된다. 한 이탈리아 학자는 이를 정치 communication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일컬었다. 즉 과거 모든 것은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 반면 오늘날 모든 것은 언론을 중심으로, 또는 언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 언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는 사례를 보면, 정치인들은 정치관련 정보를 확산하기위해 자신이 출연하는 TV,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같으면 언론은 당연히 권력에 종속되어 그 하부 기구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정치가 언론의 영역 속으로 포섭되는 것은 야구, 농구,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가 방송 중계에 편리한 시간대에 맞게 경기 일정이 짜여지는 것과 유사하다.

오늘날 미디어의 다양화는 정치 관련 뉴스에 대한 다양한 형식의 보도를 촉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TV 등 방송매체와 인터넷 매체 등을 중심으로 정치 뉴스는 시청자들에게 쉽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형식으로 제작되면서 궁극적으로 시청자에게 부담 없이, 흥밋거리로 제공되는 추세다. 이의 대표적인 형태가 YTN이 시작했던 ‘돌발영상’이다. 이 프로는 정치인들이 전통사회 이래 기득권처럼 누리던 권위주의의 허상을 파괴한 파격적인 시도였다. 보통사람들 위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정치인들의 가공되지 않은 모습을 방영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정치의 진면목을 웃으면서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TV 정치관련 보도의 이 같은 추세 속에서 신문 등의 미디어에서도 정강, 정책 등 정치의 핵심적인 사항보다 정치인의 언행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의 보도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미디어의 정치 관련보도 변화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최고 지도자를 영웅시하거나 심지어 신격화하던 과거 독재시절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질적으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TV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내용에 대해 가공할 위력을 행사한다. 정치인들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TV 뉴스를 통해 자신들이 매우 활동적이며 유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전국 규모 정당이나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후보 등은 정계를 선도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강력히 행사하기 위해 여론의 주목을 받는 정치적 의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싶어 한다.

정치인은 미디어의 검증을 통과해야 정치를 계속할 수 있다. 선거에 출마하거나 공직에 임용된 정치인은 TV 공개토론이나 언론의 탐사보도를 통해 사생활, 재산 상태 등에서 만족할만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정치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다. TV 등의 미디어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인의 청렴성, 개혁성에 대한 검증 필요성을 앞세워 대통령과 국회의원, 정부 각료 후보자들이나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과거나 재산 증식 과정 등에 대한 집요한 탐사보도를 행한다. 문민정부 이래 수많은 공직자나 정치지망생 등이 언론의 검증 과정에서 부적격으로 판정이 되어 더 이상 상향 이동을 하지 못한 경우가 그치지 않는다. 그 결과 누구나 공직 진출을 희망할 경우 어렸을 때부터 언론의 검증에 대비해 경력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떠도는 정도가 되었다.

 현대 정치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치적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정치적 의제라 해도 TV 등의 미디어를 통한 전달에 적절치 않으면 그것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용이 매우 복잡한 정치적 사안은 TV와 같은 시각매체보다 인쇄매체가 더 적절하다. 일반 유권자들은 TV를 통해 복잡한 정치문제 등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TV로 전달할 메시지는 단순하게 가공되는 추세다.

현대사회에서 정부, 정당은 정책 관련 정보의 전달 확산을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정당조직 내에는 미디어 전문가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정치집단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미디어에 접근하고 활용할 방안과 기법을 전문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디어 권력이 정치권력의 상위에 위치한다는 평가가 제기되기도 한다.

미디어의 상업주의가 강화되면서 정치관련 보도는 스포츠 오락과 같은 흥미위주의 정보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정치 정보가 뉴스로 채택, 보도될 때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쪽으로 가공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관련 정보는 압축되고, 대중이 선호하지 않는 내용은 가급적 생략되면서 흥미위주 또는 희화화 되는 경향이 있다.

TV, 신문 등의 대중매체는 정치적 주요 문제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보도하기보다 특종 식으로 새로운 주제와 문제를 보도하는데 익숙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더 이상 뉴스로 대접받을 수 없다는 식이다. 언론은 이미 보도된 주요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그 후속보도를 소홀히 하거나 설령 다룬다 해도 매우 간략하게 취급해 전체 내용을 독자나 시청자가 파악키 어렵게 만든다. 언론인의 전문성 부족은 정치,경제문제에 대해 정확한 보도를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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