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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길화 MBC 대외협력팀장 (PD저널 자문위원)

▲ 정길화 MBC 대외협력팀장 (PD저널 자문위원)
그래도 설마 했다. 검찰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씨를 전격 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래도 법원의 판단은 다를 것을 기대했다. 현 정권 들어 권력에 경도되는 판결이 자주 등장해, 제도적 절차적 민주화의 가장 큰 결실로 여겼던 사법부 독립이 흔들리는 기미를 보여도 그래도 이번엔 다를 것을 기대했다. 미네르바 박씨의 글 중 논란이 되는 것은 극히 일부고 검찰이 내건 법적 근거 - 공익을 위해할 목적 - 의 위헌성이 지적되고 있음에서 최소한 법리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구속영장 발부로 나타났다. 2009년 1월 10일 미네르바 박씨는 구속, 감금되었다. 그를 보면서 2천80여년 전 인물인 스파르타쿠스를 떠올리게 된다.

스파르타쿠스는 BC73년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소위 제3의 노예전쟁 혹은 검투사의 전쟁이라 불리는 노예들의 반란을 주도한 검투사 출신의 노예 지도자다.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반란군은 수 차례에 걸쳐 막강 로마군단을 격파하였지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초반에는 승승장구했으나 BC 71년 함정에 빠진 스파르타쿠스는 6개 군단의 로마군에 패퇴하여 6천명의 포로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처형되었다(네이버 블로그 ‘뮤즈의 陋樓’ 정리). 그는 실존인물인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이 얘기를 영화로 만들었다(1960). 커크 다글러스와 로렌스 올리비에, 토니 커티스, 진 시몬즈가 주연한 이 영화는 장대한 스펙터클과 모브 신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로 기억에 선연하다. 로마 3두 정치 트로이카의 일원인 크라수스가 이끄는 주력군에 쫓긴 반란군은 페텔리아 산속에서 포위 공격을 받고 허물어지는데 때는 바야흐로 로마 시절. 그 막강한 로마군대도 정작 스파르타쿠스의 얼굴을 몰랐던 모양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정보력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 무리를 겁박해 놓고 이 중에 누가 반란군의 수괴(首魁) 스파르타쿠스인지를 묻는다.

모든 것이 끝난 이 때, 커크 다글러스가 처연히 일어서려는데 그때까지 그와 고락을 함께 한 토니 커티스가 분연히 나선다. 그리고 외친다. “I am Spartacus!” 이 때 로마군대가 스파르타쿠스의 얼굴을 모른다는 걸 눈치챈 검투사 출신 반란군들 사이에 이심전심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다투어 자신이 스파르타쿠스임을 주장한다. “I am Spartacus!”, “I am Spartacus!”, “I am Spartacus!”...   마침내 온 계곡이 “내가 스파르타쿠스”라는 외침으로 메아리친다. 어쩌겠는가. 다 자기가 스파르타쿠스라고 하는데... 만약 스파르타쿠스가 지목되었다면 혹독한 고문은 물론, 처형 이후 시신이 큰 능욕을 당했을 것이다. 동지들은 이를 막고 장렬하게 더불어 산화한 것이다. 크라수스는 포로  전원을 십자가형에 처한다. 길 양쪽에 끝도 없는 십자가가 즐비한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

▲ 중앙일보 1월9일자 3면
스파르타쿠스는 역사가들로부터 진정한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최초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반란은 노예해방을 넘어 인간해방을 위한 봉기였다. 헐리우드 영화 <스파르타쿠스>는 다분히 영웅주의와 남성주의적 서사구조로 그려지고 있지만 1960년이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종전의 <벤허>나 <모세>식의 상투적 구도는 벗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아마도 스파르타쿠스가 정사(正史)의 영웅이 아닌 실패한 영웅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계곡을 뒤흔드는 “I am Spartacus!”의 비극적이고도 장엄한 감동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스파르타쿠스> 영화 얘기가 길었다. 2009년 1월 10일 문득 왜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일까. 전술한 대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모씨의 구속 소식 때문이다. 다음 아고라에서 서브프라임 경제 위기를 예측하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적중시키는 등 비상한 식견을 보여 인터넷에서 이른바 '경제대통령'으로 떠오른 그가 검찰에 전격 체포되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수사 시작 나흘 만에 그를 체포하고 이틀 후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땅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보다 더 극명한 사례는 없을 것이다.

검찰의 체포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정부 여당의 행태는 한마디로 ‘잘 걸렸다’는 식이다. 미네르바 박씨에게 최근 경제 실정에 대한 책임을 거의 전가하느라 서슬이 시퍼렇다. 또 입법 단계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버모욕죄 도입의 근거로 삼는 등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연말연시 임시국회 직권상정 좌절 이후 국면전환의 호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비판론자들의 반발도, 외신의 우려도 오불관언이다. 미국의 한 웹사이트에서는 ‘한국의 불도저가 미디어의 견해차를 매장하다(S. Korea’s bulldozer buries media dissent)’라는 표현을 썼다. 로이터 통신은 미네르바 체포 뉴스를 '희한한 뉴스(oddly enough)' 항목에 편집했다고 하니 이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미네르바가 체포된 이후 <다음> 아고라에는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청원 10여개가 잇따라 개설됐다. '사이버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지키기' 서명운동에는11일 오전 현재 7천 여명이 넘게 서명을 했고 ‘미네르바를 석방시켜 주십시오’, ‘고구마장수 미네르바를 당장 석방하라!!’ 등 내용이 비슷한 청원에도 수천 개의 서명이 달렸다.  ‘허위사실 유포죄로 이명박 체포를 청원합니다’와 같은 사이버서명 운동도 나타났다. 주가 3,000을 공언하고 검증되지 않은 747 공약을 내건 MB정권이야말로 처벌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밤 사이 '미네르바 구속영장 발부한 판사를 탄핵합시다 '라는 청원도 새로 생겨났다.

▲ 경향신문 1월9일자 4면
마침내 인터넷에서는 “내가 미네르바”라는 주장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파이낸셜 뉴스의 곽모 논설위원이 자신이 미네르바임을 패러디해 ‘미네르바 자술서’를 쓴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블로거 국화와 칼, 블로거 세상의 불의에 맞서자, 블로거 External Foxism... 등이 그들이다. 블로거들은 당국의 처사에 분노하며 자신을 던지고 있다. 마치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I am Minerva”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대로 미네르바의 학력 논란, 백수 논란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이들 블로거들과 서명 청원에 답글을 올린 이들은 야만과 억압의 시대로 대한민국을 회귀시키려는 현 정권에 저항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대미는 장엄하고 비극적이다. 무릇 성공하지 못한 반란은 모두 그렇다. 그러나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결말은 어떠했는가. 시기가 문제일 뿐 거대한 제국 로마도 자기모순으로 붕괴되었다. 무릇 물리적 힘에 기반한 권력이 모두 그러했다. 이 정권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고 모든 국민을 스파르타쿠스로, 미네르바로 만들고자 강요하는가. 그리고 그 옛날 오만했던 로마처럼 스스로 허물어지고자 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 역시 말할 수밖에 없다. “I am Miner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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