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부자 되세요’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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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부자 되세요’와 행복
[고승우의 미디어리터러시(41)]
  • 고승우 박사 (전 한성대 겸임교수)
  • 승인 2009.01.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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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우 박사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 700회 특집 2부작 ‘돈 나라 사람 나라’는 눈길을 끈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전세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돈과 행복 등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기획이 돋보인다. 우리 경제는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양산 등의 구조적 문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쓰나미에 강타 당했다. SBS의 이번 특집은 현 경제난 등을 고려할 때 주목을 끄는 프로다.

TV는 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의 하나다. TV는 경제 관련 뉴스와 함께 드라마, 공개 쇼 프로 등의 방영을 통해 경제 실상을 일상적으로 전파한다. 경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은 TV 뉴스의 맨 첫부분이 증시와 외환 시세로 시작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TV 드라마는 빈부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며 그로 인한 파급력이 크다. 드라마에서는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출연진의 경제적 신분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이 동원된다.

예를 들어 부유층의 거주지는 보통 사람들이 놀랄만한 사치스런 가구 등으로 꾸며진다. 일상적인 의상도 빈부의 차이가 한 눈에 드러나게 차이를 둔다. TV 드라마 속의 부유층의 언행은 일반 시청자에게 부담스러울만큼 과장되기도 한다. ‘대박’을 친 드라마 인기 출연진의 헤어 스타일, 의상과 말투가 유행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극중에서 묘사된 빈부의 문제가 시청자의 뇌리에 큰 자극을 주는 것도 일상적인 현상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쇼나 큰 시상식 공개 프로 참가진은 고가의 의상 등으로 부와 인기의 위력을 과시한다. TV로 생중계되는 국내 행사에서의 화려하고 풍성한 모습은 서구의 그것에 못지 않다. 부와 풍요가 전제된 아름다움을 중계하는 TV의 전달 기능은 전 사회에 경제적 신분 상승 욕구를 솟구치게 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부의 소유와 만족도, 부가 개인에게 주는 의미 등을 다뤘다. 이 프로는 선진국과 후진국 또는 원시 부족 등의 부와 관련한 만족도, 돈을 얼마나 소유하면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일부 학자의 연구 결과 등을 소개했다. SBS의 프로 내용과 관련해 외국 전문가들의 부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관련 연구 결과를 정리해 본다.

돈은 가난한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듯  부유층에게도 매우 유용하다. 돈은 생존을 넘어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데 절대 필요하다. 그러면 돈을 많이 벌수록 만족감을 증대시키는 도깨비 방망이인가? 그렇지 않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인당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돈을 더 벌어도 만족감의 상승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지난 50년간 사람들이 부유해졌고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건강 해졌다.그러나 그들은 50년 전 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부와 행복의 연관성에 대해 1970년도부터 조사하고 있지만 덴마크와 이탈리아를 제외한 나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1950년 이후 40여 년 동안 소득이 6배가 늘었지만 행복 지수는 1950년 이전과 변화가 없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700회 특집 2부작 ‘돈 나라 사람 나라’ ⓒ SBS
국가 단위의 공동체에서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는 돈을 많이 벌수록 행복하다. 그러나 절대적 빈곤이 해소되고 물질적 풍요가 대중화 되면서 돈이 행복을 증대시키는 역할이 줄어든다. 돈의 효용체감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까? 돈이 행복 지수를 산술적으로 증대시키지 않는 국가 경제의 수준을 보면 영국의 경우 국민 1인당 연소득이 1,800만원(2006년 8월 기준) 대였다. 우리나라 1인당 GNP가 2만 달러 수준이니 우리도 돈의 행복에 대한 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은 통계적으로 볼 때 중진국 수준을 넘어섰지만 양극화와 분배문제가 심각하다. 1인당 GNP가 2만 달러 수준이라면 가구당 평균 소득을 4인 가족 기준, 환률 달러당 1.300원으로 계산해 볼 때 연간 1억원이 넘는다. 월별 가계 수입이 9백만 원에 가깝다. 전국 대부분의 가정이 이 정도 수입이면 부의 수입이 증대해도 이전보다 행복감을 증대시키지 않는 수준을 상회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가운데 월수입이 9백만 원에 근접한 가구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우리 경제는 일부 대재벌이 몽땅 벌고 그것이 중소기업이나 일반인에게 거의 분배되지 않는 막힌 경제구조다. 어디 그 뿐인가, 청년실업, 신용불량자가 넘쳐나고 소매 업소가 대형 마트 공세 때문에 거의 다 문을 닫는 판이다. 음식점에 손을 댄 창업주는 1년 정도 버티다가 손을 털고 폐업을 한다. 이런 현실이니 월 9백만 대의 가계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경제의 기형적인 분배 구조로 인한 소득 수준은 국민 대다수가 생존을 위해 돈 벌이를 해야 하는 상태다. 우리나라는 세계 상위권의 경제 대국이라 하니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대단할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웬만큼 달성되었다 해도 경제, 복지 민주화가 달성되지 않으면 사회적 긴장감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올해는 실물경제 불황이 닥쳐오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해져 그로 인한 사회불안이 클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SBS의 이번 프로는 물질적 풍요와 만족감, 또는 행복에 대한 과학적 지식 등을 안방에 전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 사회에서 지난 수년간 온갖 광고에 가장 널리 쓰이고 일반인이 많이 기억하는  말이 아마도 ‘부자 되세요’일 것이다. 몇 년 전 광고문에 나온 이 말은 대중사회를 지배하는 부의 축적 욕구와 딱 맞아떨어져 경제적 욕구가 강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이 말은 TV 등에서도 너무 흔히 등장하면서 정치인들도 공개 발언에서 덕담처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다른 의미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즉 거기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라는 적극적인 측면과 함께 각박한 현실에서 영악하게, 어쩌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손에 넣어 챙기라는 바램도 담겨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8백만의 빈곤층과 수백만의 신용불량자가 존재하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불행은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으니 각자 알아서 하라는 절박감도 배어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700회 특집 2부작 ‘돈 나라 사람 나라’ ⓒ SBS
TV 등 각종 미디어 속에서 등장하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의 하나는 돈이다. 그런 탓일까, 우리 사회가 크게 변했다. 그 변화는 고귀하고 따뜻한 전통적 가치들이 사라진 상실의 변화다. 사람의 정이 넘치는 사회, 어린이의 천진난만함이 어른의 얼굴에서도 남아있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잃어버렸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수십년 전에는 보통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염치도 알고 예의도 지키는 순박성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사회의 60 ~70년대 모습을 담은 TV 등의 영상기록을 보면 그 속의 일반 사람들의 표정이 오늘날과 확연히 다르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정겹고 순박한 얼굴들이 거기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얼굴들은 과거와 크게 다르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데 그악스럽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뻔뻔한 표정들이 주로 설친다고 할까?

돈이, 물질이 우리의 얼굴을 변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3~4배 높은 나라의 국민 표정은 물질적 욕망에 더 푹 찌든 그런 모습인가?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TV 등을 통해서 보면 3만~4만 달러 이상 고소득 수준의 서구인 얼굴 가운데 인간미가 풍기는 표정이 우리보다 많은 것 같다. 우리가 못 산다고 깔보는 개도국 주민들의 순박함이 고소득 국가의 보통사람 얼굴에서 많이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버림받는 고아나 지체부자유아, 지진아를 입양하는 외국인의 얼굴이 대표적인 그런 얼굴이다. 서구 수준의 풍요로운 사회가 되면서 돈의 노예들이 풍기던 그악스러움이 사라지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실업과 빈곤에 대처한다는 삽질을 독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SBS의 이번 프로를 계기로 대중매체가 돈과 인간의 문제를 더 심도있게 살피면서 진짜 행복의 문제를 시청자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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